버텨 온 7년,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때

by 센터 posted Jan 0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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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남정수 평택비정규노동센터 소장




10월 27일 원고청탁을 받고 11월 13일, 이제야 글을 쓰기 시작한다. 사실 못 쓴다, 안 쓴다, 쓸 내용이 없다 했지만 강요에 못 이겨 엉겁결에 수락해 놓고 미적대고 있었다. 딱히 내세울 것도, 내놓을 것도 없는데다가 집중도 되지 않아 마냥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아마도 쌍용차 정리해고 소송 대법원 판결 날이 11월 13일로 잡혔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일단 13일은 지나고 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13일 오후 2시. 졌다. 예상은 했지만 그 예상이 빗나가길 바라는 심정으로 기다렸는데…. 평택비정규노동센터를 소개하면서 쌍용차 현실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사실상 창립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 왔기 때문이다. 평택비정규노동센터는 사실상 쌍용차와 함께 해 온 7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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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비정규지회 결성 직후의 모습




센터 창립과 함께 처음 시작한 쌍용차 비정규직지회
2008년 3월에 평택비정규노동센터를 창립했다. 당시 몇몇 지역에 비정규센터가 전략적으로 건설되던 시기였다. 평택은 전략적 지원은 없었지만 그동안 지역 운동을 함께 해 왔던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조합과 현장조직, 개별 활동가, 진보정당들이 함께 비정규센터의 필요성에 대해 함께 공감하면서 센터를 창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쌍용차에서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추진되면서 비정규직 노조 결성이 추진되었다. 당시 정규직 노조 집행부가 오히려 비정규직에 대한 구조조정에 동의하고 노골적으로 추진하던 시기였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쌍용차 비정규직에 대한 구조조정이 있었다. 이에 대항하여 노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는데, 정규직 현장활동가들의 지원과 연대로 기어이 노조가 결성되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비정규직 구조조정에 대한 투쟁으로 시작된 노조 결성이 이듬해 정규직 정리해고와 77일간의 파업, 6년간의 투쟁 그리고 불법파견 소송으로까지 이어질 거라곤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아니 상상이라도 했다면 비정규직 노조는 시작조차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파리 목숨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결심했을 때 감당해야 할 부담감이 얼마나 컸겠는가? 노조 설립을 알리는 유인물을 뿌리기로 한 전날, 밤늦게까지 원청 관리자와 업체 사장, 관리자들의 노골적인 협박과 회유는 끊이질 않았다. 포기 직전까지 갔던 그날의 결심과 결정이 6년이 지난 오늘, 당당히 정규직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을 가능케 했다. 인연은 그렇게 질기다. 쌍용차 비정규직지회는 늘 센터의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비정규직지회 설립 당시 함께 했던 정규직 현장활동가들은 대부분 77일 정리해고 파업을 이끌었던 지도부들이었으며, 지금 길거리 투쟁을 하고 있는 동지들이다.



정규직 대공장 노조에 대한 탄압의 유탄을 피해가지 못하고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가 터지지 않았다면 평택비정규노동센터는 지금 어떤 모습일지 가끔 상상해 본다. 지역의 특성상 쌍용차, 만도와 같은 정규직 대공장 현장활동가들의 후원과 참여, 지지가 비정규센터의 든든한 출발점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또 정규직 현장활동가들이 지역에서 중소영세사업장 노조 조직화와 지역 운동을 함께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센터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쌍용차 정리해고와 투쟁이 2009년도에 시작되었고, 핑계 아닌 핑계일 수 있지만 센터도 자체 사업과 활동을 하기가 어려워 졌다. 그리고 센터 사업에 함께 하거나 후원을 하거나 회원이었던 많은 현장활동가와 동지들이 대부분 해고되었거나 희망퇴직을 하기도 했다. 2012년엔 만도에서도 민주노조 탄압을 위한 직장폐쇄와 용역 투입으로 결국 어용 복수노조가 들어섰다. 많은 동지들이 센터에 직간접적으로 함께 해 온 사업장인데 더욱 어려운 상태가 된 것이다.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정규직 노조에 대한 구조조정과 노조 탄압으로 정규직 현장활동가들과 함께 지역 운동을 해 보고자 했던 비정규센터는 그 유탄을 비껴갈 수 없었다. 쌍용차 정규직, 비정규직 해고 동지들이 가끔 ‘복직’만 하면 비정규센터를 적극 후원하고 함께 활동을 하겠다는 공언을 한다.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그런데 언제까지 거기에만 목맬 수는 없지 않은가?



실패 또는 미완의 과제 버스공영제 실시와 버스 노동자 조직화
중소사업장 중 큰 틀에서 조직화 사업을 시도한 대상이 버스 노동자이다. 전국적으로 버스 노동자들은 대체로 한국노총 어용노조 소속이다. 평택의 3개 버스여객 운수업체도 그렇다. 심지어 30년 가까이 한 명의 노조위원장이 독재를 해온 곳도 있고, 이번에 18년 장기 집권 끝에 위원장 교체를 한 곳도 있다. 그만큼 버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조합원이지만 사측의 2중대, 아니 1중대 역할을 하는 어용노조로 인해 개밥의 도토리 같은 처지에서 일하고 있고, 스스로 그것을 개선할 의지조차 가지지 못하고 일을 해왔다. 그 이유는 하나다. 자신의 모가지, 즉 생사여탈권을 회사도 가지고 있지만 더 가깝게는 노조위원장이 가지고 있어 노조에 밉보이면 운전대 놓기 십상이기 때문에 불만은 있어도 내놓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버스 노동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센터를 열기 전부터 인연은 시작되었다. 체불임금과 같은 소소한 노동상담부터 시작하여 노조의 비민주적 운영, 심지어는 개인적인 민원소송 지원까지 하면서 이어져 온 인연이다. 버스 노동자의 특성상 지역을 떠나지 않는 이상 버스 업체를 떠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떠난다고 해도 택시, 화물, 관광버스로 간다. 요즘은 한 업체에서 찍히면 다른 업체에서 받아주질 않아 이직도 쉽지 않다. 또 버스 노동자들이 한국노총 소속이다 보니 민주노총이 공식적으로 조직적 지원과 결합을 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어용노조에 반대한다고 해서 단번에 한국노총을 탈퇴하고 민주노총으로 복수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일단 수가 적거나 확고한 의지가 없으면 소수 복수노조를 말리는 편이다.2012년 말부터 버스 노동자들은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노조와 별개로 버스3사 모임으로 확대되었다. 월별로 버스3사 단합대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버스 노동자들의 문제는 버스공영제로 풀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버스공영제 실현을 위한 평택시민모임까지 구성했다. 미약하지만 버스 노동자와 민주노총, 지역제단체, 진보정당이 함께 한 버스공영제대책위는 선전전, 설문조사, 버스사고 등 현안대처, 시 집행부 면담과 공영제실시 요구 등의 활동을 진행했다. 버스 노동자들은 버스공영제를 무조건 지지한다. 그러나 현실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노조 집행부는 나서지 않는다. 결국 현장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화되어 움직여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버스공영제대책위는 버스 노동자들의 조직적 참가와 의지가 약화되면서 용두사미 꼴이 되어 버렸다. 물론 센터를 비롯한 지역에서 적극 활동을 할 수도 있지만 주체가 없는 상태에서 지속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버스공영제 활동을 통해 여러 버스 노동자들이 센터를 후원하게 되었지만 여러 단위들을 묶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버스 노동자들의 처지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또 한 번의 계기가 조만간 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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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노예(?)다 -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
2011년부터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을 지역에서 준비하고 시작했다. 학생들이 갖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생각에 깨달음을 주어야 한다는 판단 하에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동인권 교육 진행 교안 중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추려내었다. 우선 학생들이 갖고 있는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생각이 무엇인지 확인부터 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진행한 것이 ‘노동자는 (  )다’라는 프로그램이다. 지금은 노동인권 교육할 때 꼭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결과는 경향신문, OBS 등 여러 곳에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아이들이 노동자에 대해 평소 생각한대로, 느낌 그대로 적어보라고 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것 중의 하나가 ‘힘들다’이다. 이 밖에 ‘거지’, ‘장애인’, ‘못 배운 자들’이라는 답변도 있었고, ‘일개미’, ‘돈 버는 기계’, ‘강철 인간’, ‘득이 없다’는 응답도 있었다. 물론 ‘우리 아빠다’, ‘나의 미래다’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러한 응답의 경향은 학교마다 큰 차이가 없다. 여기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학생들이 적어 놓은 그 느낌과 생각 그대로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에 대한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것은 단순히 교육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사회를 바꾸어야 가능하겠지만 우선 거창한 담론 이전에 노동의 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르치는 것이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의 맥락이다.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구구절절한 답변이 필요한가? 이 결과를 보면 그대로 확인된다.



무면허 노동상담 18년, 다시 길을 찾아야 할 때
공인된 노무사는 아니지만 도움이 꼭 필요한 노동자들이 편하게 전화하고 속에 있는 이야기하는 걸 들어줄 수 있는 상담 일이 좋았다. 꼭 목적을 갖는 상담이 아니라 하더라도. 1997년 노동단체 활동을 할 때부터 시작한 노동상담을 비정규센터에 이르기까지 계속하고 있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쳤을 때 상담에 대한 두려움과 비용 문제로 걱정하는 노동자들이 편하게 전화 한 통 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랄뿐이다. 꼭 노무사를 선임해야 할 사건이라면 그렇게 안내하고, 직접 소송을 해야 할 경우라면 최선을 다해 지원하고, 앞뒤 판단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잘 판단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 의지를 갖고 버티고 싸워야 할 상황이라면 그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정도다.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상담은 노동자들과 만나는 계기이자 기본일 수밖에 없다. 가능만 하다면 계속 하고 싶다. 그런데 노무사는 너무 어려울 것 같아 시험 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사실, 평택비정규노동센터는 어려운 상황이 몇 년째 지속되고 있다. 평택에 꼭 필요한 노동단체임은 분명하나 자력으로 상근 활동력을 확보하고 함께 활동할 운영 시스템을 아직까지 만들지 못하고 있다. 2015년은 이 문제를 종결짓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 해다. 답은 없지만 모델은 청주노동인권센터라고나 할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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