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시선

by 센터 posted Aug 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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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철 센터 정책연구위원



평소에 흠모해마지 않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인 P박사님이 《비정규노동》 칼럼은 미담 소개 형식도 좋지만 모름지기 생각할 거리·토론거리를 정리해서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영혼 충만한 조언을 해주었다. 사실 그동안 지역 비정규센터들을 실명으로 소개하는 글을 쓰다 보니, 방문 인터뷰를 하면서 “이 얘기 위험하지만 재밌어!”라고 탄성을 자아냈던 부분을 아쉽지만 들어내야 했다. 이런 취지에서 센터의 정체성이나 운영,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 맺기, 외부 관계자들과의 관계 설정 등에 있어서 센터들 사이에 드러난 차이를 위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센터의 정체성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센터 상근자들 대부분이 비정규 노동 운동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비정규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는 조직화를 꼽았다. 물론 조직화의 구체적인 결과물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따라서는 노동조합에서의 활동 여부 및 기간, 센터에서의 활동 기간, 경력 경로 등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확연한 차이가 나타난 지점은 그 목표를 성취해내는데 비정규센터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관한 부분이었다. 즉, 센터가 조직화를 할 수 있는 (또는 해야 하는) 조직이냐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각기 다른 위탁센터에서 일하는 세 명의 상근 활동가는 아래와 같이 센터와 조직화의 관계를 정리해서 얘기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화 하는 것은 기존 노조로는 힘들어요. 조직이 너무 크고 무겁잖아요? 의사결정도 오래 걸리고. 비정규 노동 운동에는 3S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슬림(Slim), 소프트(Soft), 스피드(Speedy). 비정규직센터가 거기에 딱 맞는 조직이죠. 작고, 유연하고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활동가A)


“비정규센터, 특히 위탁센터에 너무 큰 기대를 걸면 안 될 것 같아요. 지자체가 원하는 것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거든요. 그런데도 조직화에 대해 센터에 거는 기대가 크니까 갈등이 발생하는 거 같아요. 현실은 그 기대와 너무 다르니까. 조직화에 뜻이 있다면 센터 말고 노조로 가야죠.” (활동가B) 


“비정규센터는 이제 비정규 노동 운동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예요. 센터와 노조와의 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센터는 접근성이 좋잖아요. 사람들이 부담 없이 올 수 있고. 조직화의 씨앗을 키워서 노조에게 넘겨주는 거죠. 민주노총은 지역 활동가와 센터한테 그 역할을 맡겨야 해요. 직접 운영하고 관여하려 한다면 결국 센터가 자기 색깔을 잃고, 미조직-비정규직 전략조직화 사업처럼 다 망하게 되는 거예요.” (센터장C)  


위의 인터뷰 인용구들은 ‘조직화’로부터 상대적 거리를 기준으로 센터의 정체성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을 하나의 스펙트럼 위에 놓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스펙트럼의 한쪽에는 B활동가와 같이 비정규센터를 비정규 노동자들의 복리 후생 증진을 위한 공적서비스 제공 업무를 위탁 받는 준행정기관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준행정기관이라는 한계로 인해 조직화를 목표로 하는 사회운동단체로서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스펙트럼의 반대편 끝에는 A활동가의 코멘트가 보여주는 것처럼 비정규센터를 기존 노동조합의 대안적인 비정규 조직화 주체로 보는 인식이 있다. 인터뷰를 하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A와 B활동가 모두 센터의 업무시간 이후에 조직화를 위한 활동에 개인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A활동가는 법률학교나 상담과 같은 센터 사업을 통해 만난 시민과 노동자들과의 스터디 모임을 이어가고 있고, B활동가는 퇴근 이후에, 그리고 주말에 지역 노조 일을 돕고 있었다. C센터장의 의견은 A, B 두 지점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그 관점들과 각각 공유하는 영역이 있는 가장 보편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지자체와의 관계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위에서 나타난 것처럼 센터의 정체성을 얘기하는 데는 지자체와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비정규 노동 운동에 있어 센터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높게 평가한 활동가 A조차도 지자체로부터 재위탁을 1~3년마다 받아야 하는 사실을 가장 큰 제도적 제약으로 지적했다. 이런 제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고 있는지 질문했을 때 세 가지 유형의 답변들이 돌아왔다.   


“사실 재위탁 받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상관없이 결정되는 거잖아요? 우리랑 직접 연락하는 일자리 경제과 담당 공무원이 결정하는 것도 아니에요. 결국 지자체장이 결정하는 거예요. 정치적 이해관계 등에 따라서. 다르게 말하면 센터가 어떻게 활동하느냐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는 거죠. 저희는 그래서 하고 싶은 거 해요. 담당자는 싫어하죠. 특히 지자체 일자리 정책이나 비정규 정책 비판하는 성명서 같은데 이름 올리고 산하 단체 비정규 노동자들 조직화할 때.” (센터장D)


“지자체는 사실 우리에게는 큰 자원이에요. 그렇게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쪽에서 원하는 거 조금만 해주면 돌아오는 게 몇 배인 거죠. 그런 측면에서 센터장에게 중요한 능력이 협상력과 정치력인 거예요. 얼마나 시의원, 구의원들을 잘 구워삶느냐, 우리 편이 되게 하느냐.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냐, 이걸 알아내는 게 중요해요.” (센터장E) 


“대부분 지자체에 일자리경제과만 있지 노동 전담 부서가 없잖아요? 난 센터나 한비네가 함께 일하는 공무원들이 노동 감수성과 전문성을 가질 수 있도록 일정 부분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진정한 의미에서 지역의 노동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한 초석이 되는 거죠.” (센터장F)  


센터장D의 의견은 많은 위탁센터들이 지난, 그리고 지지난 지방선거에서 야당들과 민주노총의 정책 공조를 통해 탄생한 사실상의 정치적 산물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특히 노동계를 파트너로 생각하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상황에서, 위탁센터들이 오히려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는 현재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상근 활동가들을 대신할 만한 비정규 노동 운동가나 전문가가 없는 지역에서 두드러졌다. 한편, 센터장E의 시각 역시 이와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지자체와의 관계를 정치적이라기보다는 거래 관계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시장(구청장)과 시의원(구의원)과의 관계는 투자한 것 이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종의 큰 사회적 자본이기 때문에 비정규센터들이 운신의 폭을 넓히고 지역 내에서 연속성을 가지고 활동하기 위해서라도 지자체의 주요 의사 결정권자들과 상호 이해관계를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끝으로 센터장F의 시선은 지자체의 노동 행정 실무자들을 향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노동 전담 부서가 생기면서 위탁센터-지역 커뮤니티-노동 행정 담당자들을 잇는 지역 노동 거버넌스를 구성하는데 있어 지자체 실무자들과의 파트너십 관계를 키워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점에서 앞에 언급한 두 가지 시선과 차이가 있다.   


시선의 다양성과 유연성


지난 2014년 말부터 한비네(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워크숍이나 전국의 비정규센터를 돌아다니며 센터장, 그리고 상근 활동가들과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귀한 경험 속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센터를 바라보는 시선의 다양성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자체와 힘의 불균형 속에서 운동성을 잃어버리고 하향평준화 된 공공분야의 다른 위탁사업 사례를 생각해 봤을 때, 각 지역 특성을 반영한 다양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한비네와 비정규센터들의 건강함의 징표라고 생각한다. 


이번 글에서는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차이점들을 나열하는데 그쳤을 뿐, 깜냥 부족으로 이러한 다양성을 한비네나 서로넷(서울노동인권복지네트워크) 차원에서 상승효과를 만들어 내는 자원으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다양성과 유연성을 유지하면서도 비정규 노동 운동의 맥락에서 센터들을 하나로 묶는 핵심적인 정체성은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등에 대해서 논의를 전개하지 못했다. 곧 다가오는 제3회 노동박람회에는 위의 질문들 뿐만 아니라 센터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 변화, 내부 운영 문제, 활동가들의 재생산 등 다양한 주제들에 걸친 토론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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