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한비네 활동가 워크숍 두 번째 이야기_활동가와 노동자 사이

by 센터 posted Dec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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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철 센터 정책연구위원



바다 건너에 살고 있는 물리적 제약으로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이하 한비네) 또는 각 지역 비정규센터 정책 토론회나 실태조사 발표 같은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게 늘 아쉬웠던 만큼, 활동가 워크숍에 대한 기대가 컸다. 전국 비정규노동센터 상근 활동가들이 한 공간에 모여서 활동 경험과 개인적인 고민을 나누는 자리는 처음이라 들었고, 한비네가 계속 외연을 확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활동의 지향점을 재확인하고 연대감을 다지는 행위가 센터장·소장 수준에서 뿐만 아니라 일선 활동가들에게도 중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기존 활동가들과는 살짝 다른 가치관과 경력을 가진 젊은 활동가들이 비정규 노동 운동 영역에 들어오게 된 동기와 센터 업무 및 비정규 노동 운동에 부여하는 의미, 보다 근본적으로는 센터에서의 개인적 성장, 나이듦,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상근 활동가들의 ‘사회적 정체성’이 센터 활동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변하거나 또는 강화되는지 부담 없이 오가는 대화 속에서 짚어내고 싶었다. 이러한 질문들은 개별 활동가 수준에서도 중요하지만 센터가 내부적으로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고 생각한다. 


갈수록 퇴화하는 기억력으로 인해 격이 없어야 하는 뒤풀이 대화 중에 뜬금없이 녹음기를 꺼내 들이댔음에도 불구하고, 너그러이 이해해주고 선배 활동가나, 센터 운영, 기타 개인적인 사안에 대해서 솔직담백한 얘기를 들려준 정이 넘치는 활동가 분들께 이 기회를 빌어서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아울러 녹취한 내용은 일본에 있는 필자의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 안에만 영원히 머물러 있을 것임을 다시 한 번 약속드리는 바이다.


신입 활동가가 바라본 활동가와 노동자 정체성


지난 호 《비정규노동》에 실은 글에서는 한비네 워크숍  공식 프로그램 중에서 ‘중견활동가-신입활동가의 대화’에서 오고 갔던 질문과 대답에 대해서 간단하게 정리했다. 이번 호에서는 뒤풀이 시간에 일종의 알코올 포커스 그룹 형식으로, 또는 쉬는 시간에 틈나는 대로 개별적으로 나눴던 대화들을 중심으로 엮어 보았다. 대화 내용은 자연스럽게 토크 콘서트 내용의 연장선상에서 활동가-노동자 정체성, 활동과 노동 사이의 공존, 긴장, 갈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소외된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와 권리 구제가 주 업무인 비정규노동센터의 특성상, 젊은 활동가일수록 두 정체성 간의 관계를 모순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한 20대 활동가는 아래와 같이 얘기했다. 


“시민강사단양성과정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니 인권단체에서 많이 와요. 노동법 기본적인 거 알려주면서, 노동자들이라면 근로 계약서 쓰고 이거저거 해야 한다, 이렇게 알려주거든요. 그러면 교육 끝나고 와서 저희 지금 100만 원 받고 있는데. 그러면 최저임금법 위반 아니냐? 이렇게 물어봐요. 거기가 인권 단체잖아요? 노동에 대한 개념이 없으면서 인권이니 뭐니 얘기하는 게 너무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입 활동가 A)


노동자-활동가 정체성 사이 관계를 논의의 편의성을 위해 아래 그림과 같이 단순하게 유형화해 보았다. 아래의 네 가지 이념형(ideal type)들은 자신의 정체성 경험에 대해서 논의했을 때뿐만 아니라 선배나 동료 활동가들에 대한 생각을 얘기할 때도 자주 호출되었다. 여기부터는 편의상 활동 경력을 기준으로 1~5년은 ‘신입’ 활동가, 5~20년 ‘중견’ 활동가, 20년 이상 ‘고참’ 활동가로 구분하기로 한다.


그림.jpg


예를 들어, 앞서 소개한 인용구와 비슷한 맥락에서 여러 젊은 상근 활동가들은 센터 활동을 통해 접하는 센터 내외의 고참 노동 운동가들의 삶을 노동자와 활동가의 영역이 분리된, 그러나 활동가의 영역이 절대적으로 큰 부분을 차지하는 A형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귀감이 되는’ 활동가로서의 삶에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였다. 이는 또 다른 신입 활동가의 다음과 같은 생각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가 아는 어떤 활동가 분은 학원 강사도 뛰면서, 그러니까 상근 활동을 하기 위해서 주말 알바를 하는 거예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그런 분들이 노동자성을 벗어난 정말 순수한 활동가라고 볼 수 있죠. 그런 분들 보면 괜히 미안해져요.” (신입 활동가 B)


즉, 운동에 대한 헌신으로 삶을 규정하면서도 활동비나 후원금이 아닌 자신의 노동을 통해 경제적인 부분을 지탱해 나가려고 노력하는 몇몇 선배 활동가들의 삶이 경외감의 대상으로 회자됨과 동시에 그에 대한 일종의 부채감과 같은 감정 또한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귀감이 되고 존경스러운 만큼 아득히 멀어 보여서 도달할 수는 있을지, 자신이 그렇게 헌신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이 되는 사람인지 의구심을 느낀다는 답변도 있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특히 회사 생활 경험이 있는 신입 활동가들이, 활동 경험이 많은 중견 활동가들을 C형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2년간 센터 활동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에 대해 묻자 한 상근 활동가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상근 노무사 분이 계신데, 그 분이 일하는 거 보면서 솔직히 놀랐어요. 상담뿐만 아니라 자기가 사업을 찾아서 해요. 솔직히 저 같으면 그냥 있는 틀 안에서 상담하고 전화 받고 하는데 그분은 자기가 직접 사업을 만들어서 몇 개월 계획을 짜서 하시고, 그러세요.(···)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여기(센터)는 제가 생각하는 방향이 아닌 거예요. 더 적극적이어야 하고, 더 알아서 해야 하고. 제가 생각하는 범위를 벗어난 거죠.” (신입 활동가 C)


일반 사기업과는 달리 ‘상담국장’, ‘조직국장’, ‘교육국장’ 등의 직함과 상관없이 주체적으로 업무를 기획하고 제안하고 실행해 내는 팔방미인이 신입 활동가의 눈에 비친 중견 활동가의 이미지였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그러한 주체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권한을 위임하고, 언제나 자유롭게 회의 안건을 내고 소통하는 민주적 조직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두 팔 걷고 나서는 선배들의 배려에 고마워하면서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자신이 센터에 맞는 퍼즐인가, 활동가에 맞는 자질과 성격을 갖고 있는가 등 자신과 활동의 궁합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보통 고참-중견-신입 활동가 3~4인의 상근인력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이런 고민들을 부담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인 만큼, 신입 활동가 워크숍 또는 친목회를 1년에 최소한두 번은 갖고 온라인상에 따로 모임도 만들자는 등의 제안도 쌓이는 빈 병의 개수만큼 쏟아졌다.


중견 활동가의 활동가 정체성


한편 1990년대~2000년대 초반 학번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중견 활동가들의 경우, 신입 활동가들이 바라보는 이미지와는 달리, 자신을 ‘실무자’로서의 상근자(D)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정체성은 자신이 생각하는 활동가로서의 이상이 여러 가지 구조적 한계로 일시적으로 가로막힌, 그래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주로 묘사되었다. 최근 통계청이 발간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6-정치 태도와 행위와 세대 간 차이〉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대 생이 사회 비판적-진보적 성향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세대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실려서 지인들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한 노동 운동 단체에서 ‘열정적인’ 상근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지인은 다음과 같은 소회를 남겼다.  


 “1970년대 생이 가장 진보적일지는 모르지만 그 진보성을 외화할 만한 정치적 기획 혹은 대표성은 부재하다. 386들은 화려하게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고, 2000년대 이후 학번들은 88만 원 세대로 호명되지만, 92~97학번들은 진보정당에도 기존 야당에도 노조와 시민사회에도 실무자는 있어도 리더는 없다. 이 세대는 잘못을 크게 저지른 것일까, 능력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공유하는 시대정신이 정치가 아니라 X세대 소비문화여서 그런 것일까?”


실무자 또는 활동가 사이의 정체성에 대한 세대적 측면에서의 딜레마는 ‘노동 운동의 명품조연’이라는 지자체 센터들, 또는 한비네의 노동 운동에서의 주변성과 맞물려 아래와 같은 구체적인 고민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었다. 다른 민간단체에서 상근 활동가로 일하다가 최근 지자체 센터에 합류한 한 중견 활동가의 얘기이다.


“제 인생을 통틀어서 월급을 이렇게 많이 받는 건 처음이에요. 항상 100만 원 안되게 받았는데 이게 되게 유혹이 있는 거예요. 활동가에게 센터는 제가 다른 데서 활동했던 거보다 노동 강도가 엄청나게 세지는 않아요. 웬만하면 이 일이 괜찮아요, 직업적으로. 그런데 저는 활동가니까. 활동가라는 걸 잊으면 안되잖아요.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고, 공무원 같은 삶이 되는 거죠. 그러면 나중에 잘못하다가는 편한 거만 찾게 될 것 같아요. 센터는 이런 유혹이 있어요.” (중견 활동가 D)


이런 배경의 중견 활동가 중 상당수는 지자체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활동이나 취약 노동자 계층을 위한 노동 상담 등의 일상적 사업, 협동조합이나 마을 만들기와 같은 대안적 운동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업무들이 궁극적으로는 노조 조직화로 이어질 때 센터와 자신 모두에게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요컨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지역 비정규센터, 그리고 그 안에서 일하는 상근자들 모두 아직은 정체성의 실험 단계를 거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많은 분들이 지적했듯, 중요한 것은 당위적으로 위 그림의 B모형과 같은 기계적 균형을 맞추려고 무리하기 보다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두고 끊임없는 토론과 논쟁을 통해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자화자찬일지 모르겠지만 그런 과정에 있어 촉매 같은 역할을 한 지난여름 활동가 워크숍 같은 프로그램이 계속 기획되고 높은 참가율 속에 열리는 것은 한비네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표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현실적인 제약으로 지자체 위탁센터에 비해 민간센터 상근 활동가들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이다. 다소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향후에는 다양한 화상회의 플랫폼 중 하나를 골라잡아서 불가피하게 참가하지 못하는 활동가들도 기획단이 고생해서 꾸린 알찬 프로그램에 온라인상으로나마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그런 콘텐츠를 아카이브화 한다면, 부족한 필자의 글보다 훨씬 생생하고 좋은 기록이 될 것 같다. 이름하여 ‘한비네 마리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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