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 거버넌스와 전주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의 미래

by 센터 posted Feb 2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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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윤희만 전주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장


민관 거버넌스라는 말이 이제는 익숙한 단어로 생각이 되지만 모범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행정의 관료적 한계를 극복하는 주요한 대안으로 제시되었지만 행정의 단순 위탁 수준으로, 행정의 하위 개념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지역에서 그나마 복지나 환경, 경제 분야에 민관 거버넌스가 여러 가지 형태로 이야기 되고 추진되고 있지만 노동에 대한 민관 거버넌스는 생소하기까지 하다.

최근 몇 년 동안 노동문제에 대한 지방 행정의 대책과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비정규직지원센터가 운영되는 지역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지역의 노동 분야에서도 민관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는 형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행정의 간섭을 받는 민간 기관이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지자체의 보여주기 식 행정에 동원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데 이는 충분히 숙고해야 할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된장 못 담그랴’라는 속담처럼 한계를 두려워해서 그동안 노동운동이 거둔 성과들과 노동문제가 지역 행정에 과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소중한 결과를 쉽게 내팽개쳐서는 안 될 것이다.



2014년의 서막을 열다, 초등학교 스포츠 강사 해고 투쟁 


전주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이하 ‘센터’)는 올해로 설립된 지 5년이 되었고 내년이면 3번 째 위탁을 받는 과정을 밟게 된다.

2014년은 지난 4년간 잔잔한 호숫가에서 지내다가 느닷없이 지각의 거대한 융기로 인해 큰 파도가 치는 바다로 나가 큰 경험을 한 시기이다. 지난 1년의 짧고 굵은 경험이지만 비정규직운동에 커다란 고민을 던져준 시기이니 이 지면을 빌어 소개하는 것으로 지역에서 비정규직운동의 전망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2014년 1월, 생소한 비정규직인 초등학교 스포츠 강사 분들이 파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센터가 이에 대한 지지 논평을 내자 이 분들이 찾아왔다. 300명이라는 학교 비정규직이 집단 해고될 위기에 처해 있었고, 교육청에서 파업농성을 하고 있음에도 지역의 노동 진영이 별다른 연대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의지할 곳 없는 분들이 센터로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센터는 상반기 내내 초등학교 스포츠 강사 300명의 해고를 막기 위해 외로운 투쟁을 전개해야 했다.

2014년 말, 결론적으로 투쟁의 승패는 없었다. 이미 2013년 300여 명 중 160명이 해고되었고 남은 150명도 몇 명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확답할 수 없었기 때문에, 2015년에 150명 현원을 유지한다는 정도의 결론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했다. 그나마 11개월 계약이라서 매년 신규채용 형식으로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니 딱히 성과를 내었다고 말하기 힘들다. 다만 교육청의 대규모 인원 축소라는 완강한 태도와 중앙정부의 초등 스포츠 강사 제도를 폐지할 수도 있다는 내부 방침이 있었음에도 전북에서 150명의 고용 수준을 유지한 것은 최악의 상황에서 지켜낸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센터는 이 과정에서 소중한 실험을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 내 비정규직운동에 대한 자신감과 민관 거버넌스 방향에 대한 구상의 단초를 마련한 것이 센터의 자체적인 성과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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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3일 전북 초등 스포츠 강사의 대량해고에 관한 합리적 해결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 결과 발표 기자회견


중앙정부가 해결해야 할 비정규직 문제를 지역에서 어떻게 풀 수 있을까


학교 비정규직처럼 중앙정부의 정책 방향으로 결정이 되는 문제를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고용 주체인 교육청도 ‘중앙정부의 정책이 결정되면’이라는 단서를 달기 때문에 교육청을 상대로 하는 투쟁 동력이 만들어지는 것이 쉽지 않다. 결국 국회나 행정부 앞에서 집회를 해야 한다는 건데···.

그래서 고민했다.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지역은 동네다. 마을이다. 마을은 법보다는 의리와 소통이 먼저다. 마을이라도 돈이 중요하지만 정(情)도 그만큼 중요하다. 비정규직 투쟁도 마찬가지로 법과 제도, 원칙을 치밀하게 따져봐야 하지만 지역에서는 역시 정과 의리, 소통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서 지역사회의 지혜를 모아보자고 제안했다. 소통으로 문제를 풀어보자고 제안했다. 어차피 중앙정부를 움직여야겠지만 일단 지역사회에서 해고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어떻게든 구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그런 움직임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이에 ‘전북 초등 스포츠 강사 대량 해고에 대한 합리적 해결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적극 받아들여 시작해 보았다.

처음에는 응해주는 단체도, 개인도 없더니 계속되는 설득에 전교조가 움직이고 지역 노동시민단체가 움직였다. 다행히 사회적 논의기구는 전북 초등 스포츠 강사 전원의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교육청을 압박하고 설득했다. 진행 과정에서 노사정위원회를 움직여보자는 제안이 들어오기도 했다.

당시의 사회적 논의기구는 민관 거버넌스의 성과라고 하기 힘들다. 구성에 민관이 아니라 민(民)밖에 없었고, 그나마 범위도 매우 제한되어 몇몇 단체 중심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규모 비정규직 사업장 문제를 지역 차원에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단초를 제공했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센터 입장에서도 사회적 논의기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노사 갈등에 개입하고 민과 관을 엮어서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흐름을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경험하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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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0일 아파트 경비노동자 근로조건 긴급 실태조사 기자회견


주민이 힘 모아 해결해야 하는 지역 노동 이슈, 아파트 경비직 문제


2014년 12월 센터는 아파트 경비직 최저임금 적용에 따른 긴급 실태조사를 하고 기자회견을 하였다. ‘월 800원 두부 한 모 값으로 아파트 경비 분들의 고용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당시 센터에서 제시한 아파트 입주민 부담금 월 800원은 애초에 2,700원 커피 값 정도 부담해야 아파트 경비원 최저임금 지급이 가능하다는 주장과 금액에서 차이가 많아 대다수의 지역 언론과 몇몇 중앙 언론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 2014년 말 아파트의 경비직의 최저임금 적용과 관련해서 당시 이야기 되었던 것은 2,700원 커피 값으로 최저임금이 보장될 수 있다는 것과 최저임금 적용 시 해고 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센터가 조사한 결과 해고 대신 대부분 1시간 노동시간을 줄여 최저임금을 주지 않기로 했단다. 좀 더 들여다봤더니 노동시간을 1시간 줄여서 입주민은 한 가구당 800원밖에 이득을 보지 않는데, 경비원은 근로시간을 줄이지 않는 경우보다 월 8만 원 임금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왔다. 주변에 물어봤다. 800원 아껴서 경비원 8만 원 임금 깎아 버리는 것과 800원을 더 부담하여 제대로 임금 주고 경비원에게 좀 더 열심히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지혜로운 것인지···.

아파트 경비직문제는 지역민이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하는 대표적인 지역 비정규직 문제이다. 대부분의 사업주가 아파트 입주민이고 이들이 곧 지역민이기 때문이다. 지갑에서 돈 천 원을 꺼내는 것이 쉽지 않은 지역 주민들의 이해를 구해 아파트 경비직 처우 개선이 지속적으로 가능하도록 센터는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전주시, 의회, 언론 등과 민관의 협력 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 더욱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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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6일 전주공고 앞에서 진행한 근로계약서 홍보 캠페인


함께 할 동료들이 있어 든든하다


사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지역이라는 것은 한정된 자원을 함께 나눠 상생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느끼고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어떤 기준으로 상생할 것인가 인데 노동을 보호하고 존중하면서 상생 할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의 문제다.

구체적으로는 민간 위탁 기관이 갖는 장점을 어떻게 극대화하고 위상을 강화해서 노동권을 보호하고, 노동을 중심에 놓고 상생하는 지역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 필요하다. 센터는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고민을 함께 할 동료를 많이 알고 있다. 함께 할 수 있고 비슷한 고민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하고 힘이 되는지 인생에 찐한 외로움을 느껴본 이들은 알 수 있을 터이다.한비네(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의 이름으로 비정규직 센터를 만들어온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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