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은 '변화'를 품은 씨앗

by 센터 posted Jul 0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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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조광복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



노동상담은 청주노동인권센터의 뿌리

원래는 지역의 소개할만한 사례를 주제로 원고 요청을 받았는데 특정 사례보다는 노동상담자체를 가지고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휴대폰이 울린다. 노동조합 설립을 준비하는 곳이다. 산별노조 관계자를 연결해 드렸는데 아마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는 모양이다. 이 사업장은 센터가 3년 동안 인연을 맺은 곳이다. 겨울잠을 자던 씨앗 한 톨이 이제 막 움을 틔우고 있다.

청주노동인권센터는 노동상담을 하는 단체다.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금으로 운영하는 비영리민간단체이기도 하다. 센터가 살아가는 방식은 상담을 통해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상담을 기반으로 다양한 노동인권 활동을 확장해 가는 일이다.

노동상담을 대하는 우리 센터의 확고한 태도가 하나 있다. “상담은 변화를 품은 씨앗이라는 생각이다. 노동상담을 하는 이들이라면 이 태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뼛속까지, 자잘한 실근육 속까지 상담은 변화를 품은 씨앗이라는 자각이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변화란 고정된 것일 수 없다. 해고를 당한 사람이 복직하는 것도, 노동조합이 조직되는 것도, 억울한 일이 사회에 알려져 널리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다 변화의 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딱히 해결된 것은 없지만 고통스러웠던 마음이 좀 편안해 졌다면 그것 역시 변화.

지금 당장 바뀐 것이 없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것으로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면 그것도 변화의 한 측면이다. 왜냐하면 변화라는 것은 당장 내일 찾아올 수도 있지만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야 모습을 내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가늠할 수 없다는 점, 그러나 반드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는 점이 상담의 매력이요, 역동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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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과 노동인권 활동

2011년 이른 봄이었다. kt 관리자로 근무하다 명예퇴직한 반기룡 씨가 찾아 왔다. 본인이 팀장으로 일하면서 kt 본사에서 기획하여 내려 보낸 인력퇴출 프르그램을 실행했다고 말한다. 인력퇴출프로그램은 kt가 정규직 노동자들을 내쫓기 위해 미리 기획한 시나리오대로 고통을 반복해서 가하는 학대 프로그램이다. 많은 피해자들이 고통을 호소하였지만 kt는 계속 그 실체를 부인했다.

그때 반 씨가 찾아온 것이다. 반 씨는 인력퇴출 프로그램을 부하 직원에게 실행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고통을 겪어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고 호소한다. 그 후 한 달 동안 반 씨를 만났다. 마침내 반 씨는 기자회견장에서 kt가 만든 퇴출시나리오 문건을 공개하며 자신이 퇴출 프로그램을 실행했노라고, kt로부터 지시 받았노라고 양심고백을 했다. 반인륜적인 kt인력퇴출 프로그램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2013년도에는 충북 지역의 한 버스회사 관리자가 양심 고백을 했다. 역시 상담을 통해서 만났다. 어용노조위원장과 유착관계를 맺은 일, 노동자를 해고하기 위해 대표이사와 노조위원장이 공모하여 주요 문서를 위조한 일, 차량 cctv로 특정 기사들을 감시한 일, 불법녹음장치를 설치해서 기사들의 대화를 몰래 엿들은 일 등 추악한 버스 회사의 실태가 공개되었다. 이 양심 고백은 지역 사회의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뒤에 설명하겠지만 노동조합을 바로 세우는 모임이 주관하는 천막농성으로 이어진다.

상담을 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양심고백과 맞닥뜨리게 된다. 양심고백은 자신의 이름 내지 얼굴을 사회에 공개하는 일이므로 익명을 앞세운 제보와는 그 무게를 비교할 수 없다.

청주 지역 택시회사의 일이다.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에 회사가 미는 사람이 당선되었다. 곧바로 임금협약을 맺어 사납금을 올렸다. 조합원들이 반발하자 이번엔 단체협약을 변경해서 정년 61세를 55세로 낮춰버렸다. 회사는 정년을 이유로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그리고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도급 택시 기사들을 대거 채용했다. 당시 지역에서는 법인택시 기사의 절반 이상이 도급제로 일을 하고 있었다.

센터가 상담을 시작한 후 공공운수노조, 충북참여연대 등 여러 단체들이 함께 나섰다. 토론회와 불법도급택시 근절을 위한 공동대책위 구성, 시청 앞 천막농성이 이어졌다. 한 택시회사에서 시작된 문제가 지역의 가장 큰 이슈로 확산된 것이다. 결국 그 회사의 대표이사는 정년을 원상회복시키고 해고자들을 복직시켰고 청주시는 불법도급택시 근절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였다.

20대의 한 여성이 찾아왔다. 지역 내 반도체 공장의 파견업체에서 해고되었다. 원청회사 내에는 90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는데 전부 불법파견으로 채용되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면 정직원으로 전환한다. 이 여성 역시 1년이 다 되었는데 덜컥(?) 임신을 했고 그 때문에 해고되었다. 다행히도 해고되기 전에 상담을 했던 터라 적나라한 녹취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런 불법파견 고용 방식이 지역의 전자, 반도체 업종에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이다. 센터는 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불법파견·임신여성 해고 반도체 사업주 고발장 접수기자회견을 가졌다. 고용노동부에도 지역 내 불법파견 실태를 조사할 것을 요구했다.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회사에서 직접 센터를 찾아와 합의서를 작성했다. 노동자들은 전원 직접 고용되었고 피해 여성은 복직을 원치 않았으므로 그에 따른 보상을 받았다. 아쉬운 점은 지역 사업장 전반의 문제로 확산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불법파견 상담이 끊이질 않아 다시 이 문제를 다룰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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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과 조직화

요양보호사 조직화 사례다. 노동조합과 상담 기관인 센터가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어 조직을 한 경우다. 사전 활동으로 노동조합은 한동안 요양보호사의 노동실태를 지역 사회에 알리는 데 주력했다. 지역 방송사에서도 여러 차례 방영을 할 만큼 관심이 높아갔다. 거기에다 두세 건의 노동부 진정 사건을 처리하고 나서 요양시설 노동 문제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에 노동조합이 한 일은 인맥 카드를 만든 것이었다. , 요양보호사의 이직이 심하기 때문에 지역 차원에서 조직할 필요가 있는데 연락 가능한 요양보호사들의 수를 계속 확대하는 일이다. 짧은 시간 동안 상담과 법률지원 요청이 밀려들었고, 400여 명의 요양보호사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그리고 노동조합은 요양보호사 집단 진정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요지는 하루 24시간 환자를 돌보며 그에 따른 법정수당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청주시노인전문병원의 요양보호사 투쟁이 이어졌고 그 결과 위탁사업자가 변경되었다.

위 사례가 노동조합과 센터가 협력하여 조직을 한 경우라면 아래는 센터에서 직접 조직을 한 사례이다.

베이비시터(가정방문 보육사) 100여 명을 고용하고 있는 곳이 있다. 단체이면서 사회적 기업이다. 퇴직자 4명이 찾아왔다. 오로지 퇴직금을 받기 위한 목적이다. 그런데 얘기를 나누다보니 내부 운영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더욱이 몇 달이 지나면 지자체 지원금이 끊기게 되는데 대책이 없어 근무 중인 구성원들은 심각한 고용불안에 놓일 처지였다.

센터 입장에서는 퇴직자의 일회성 상담으로 끝나지 않고 재직자 내부로 들어가고 싶었다. 상담을 매개로 4개월 동안 이들을 만났다. 운영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이것을 개선시킬 수 있고 재직자들이 좀 더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겠는지 이런 것이 주제였다. 4개월 지나 재직자를 대표하는 구역별 팀장 회합이 꾸려졌다. 노동조합을 추진하기로 하고 바로 노동조합 설명회를 가졌다.

센터는 이 설명회를 주관하는 데까지 역할을 했다.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횡령 의혹이 공론화되었는데 그때 대표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생겼다. 상담을 하는 입장에서는 한번이라도 이 대표자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봤어야 한다는 자책감을 가진다. 지금은 노동조합이 주도하여 이 사업장을 스스로 운영하고 있다. 경영 여건도 제법 개선된 상태다. 앞으로 협동조합으로 나아갈지 혹은 어떤 모습으로 갈지는 이들의 몫이다.

다음은 정말 특이한 사례다. 어쩌면 조직 확대가 주요 과제인 산별노조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다. 청주 지역의 6개 버스회사에서 한 군데를 빼고는 모두 한국노총 전국자동차노조연맹이 장악하고 있다. 사업주와 어용노조들의 검은 유착관계는 수십 년 동안 요지부동이었다. 한 버스회사 노동자들이 찾아왔다. 회사에 찍혀서 고정차량을 뺏기고 이 차량 저 차량 소위 땜빵을 타는 중이었다.

이렇게 인연을 맺었는데 조직화의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의견을 나눈 끝에 복수노조를 만들지 않고 센터 회원을 조직하기로 했다. 3개월 동안 160여 조합원 중 40여 명이 센터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러자 사업주가 센터 회원 명부를 확보하여 감시, 차별, 징계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탄압했다. 그 와중에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관리자 양심고백이라는 폭탄이 터진 것인데 바로 이 버스회사의 관리자다.

양심고백 며칠 전부터 이미 4명의 노동자들이 회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는데 양심고백 후에는 노동조합을 바로 세우는 모임의 명의로 천막농성이 확대되었다. 얼마 후에는 40여 명이 순번을 정해 천막을 지키고 점차 이 천막이 버스노동자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99일 간의 천막농성 끝에 대표이사와 천막 농성자들의 명의로 불법행위를 시정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하였다.

사실 노동조합이 투쟁을 주관하지 않은 탓에 어설픈 일도 많았지만 한편으로 노동조합이 아닌 모임이 천막농성을 하고 회사와 합의서를 작성한 경우도 근래에 없었던 일이다. 다행히도 노동조합을 바로 세우는 모임은 지역 연대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매월 정기모임을 갖는 등 온전하게 천막농성의 역량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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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과 지역 노동실태의 조사

상담 사례들이 축적되면 혹은 하나의 상담 사례를 통해서도 궁금증이 확대될 수 있다. 우리 지역의 실태는 어떠한가? 이런 실태를 어떻게 지역 사회에 알릴 것인가?

센터도 이런 욕구를 갖고 있다. 그동안 여러 영역에서 지역의 노동실태를 조사하고 발표하거나 토론회를 가졌는데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충북 지역 장애인 활동보조인 노동실태 조사 발표 및 토론회(이 토론회 직후 활동보조인 200여 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 노동실태 조사 발표 및 충북도 간담회,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들의 노동실태 조사 발표 및 토론회, 청주시 위수탁 사업장 고용 실태 조사 발표, 충북 지역 장애인의무고용률 위반 실태 분석 결과 발표, 충북 지역 여성노동자의 고용 실태 발표 등.

센터는 해마다 51일 노동절을 맞아 그동안의 상담 통계와 충북 지역 노동인권의 현황을 발표하고 있다. 지금은 지역 산모도우미 고용 및 노동실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센터 내의 연구모임이 위와 같은 조사, 연구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풀씨가 바위에 꽃을 틔우듯, 바위가 여린 속내를 풀씨에 내어주듯

두서없이 센터의 활동 사례들을 소개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얘기지만 센터는 노동상담을 활동의 뿌리로 두고 있다.

잠시 감성적인 얘기를 해 보겠다. 산을 오르다 보면 바위를 만나게 된다. 그 바위를 관심을 갖고 쳐다보면 도저히 생명이 자리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아주 여린 풀이 저의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풀이지만 생명력이 참 강하구나.’

맞는 말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면 풀씨 하나의 생명이 보기보다 강인한 것처럼 그토록 완강해 보이는 바위도 여린 속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바위는 저의 여린 속내를 풀씨에게 내주었던 것이고 풀씨는 그 여린 속내를 더듬어서 풀꽃을 틔운 것이다.

노동상담이란 이런 것이다. 풀씨 하나가 바위의 여린 속내를 더듬듯, 바위가 저의 여린 속내를 풀씨에게 내어주듯 변화를 품어야 한다. 이 생명의 원리를 잊어버리면 그때부터 상담이란 것은 기계적인 반복 작업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매일 매일 바로잡아 주시는 센터 대표이신 김인국 신부님, 운영위원님, 사랑하는 회원들, 그리고 센터를 믿고 찾아주는 바위와 풀씨 같은 노동자들에게 한없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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