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적 위탁센터 모델과 지역 운동에서 한비네 역할_전주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by 센터 posted Apr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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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철| 센터 정책연구위원



지난 해 7월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이하 한비네) 수련회와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본 전주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이하 전주센터) 윤희만 센터장의 첫인상을 솔직히 말하자면, 변혁적 운동가라기보다는 주어진 구조적 조건에서 최대의 성과를 거두는 데 초점을 두는 실리추구형 전술가에 가까웠다. 특히 많은 위탁센터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 지자체와의 원만한 관계 설정 및 위탁 계약 갱신과 관련해 울산 수련회에서 그가 들려준 담당 공무원 및 시의원들을 어르면서 압박하고, 달래면서 뜯어내는 경험담들은 신선하고 흥미진진했다. 노동조합 출신 노동 운동가 또는 노무사들이 다수인 한비네 구성원 중에서 그는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그래서 그이의 개인적인 배경, 전주센터를 맡게 된 과정, 전주센터의 운영 방향 등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고, 작년 9월 21일 전주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디테일에 강한 윤 센터장은 인터뷰 며칠 전에 연락을 해서 전주센터 현황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담당 공무원 및 민주노총 지역본부와도 만나봐야 하지 않겠냐며 일정을 잡아주었다. 인터뷰 이틀 전에는 공무원들은 질문 내용을 미리 아는 걸 좋아한다며, 질문지 만드는 걸 도와주는 꼼꼼함을 보여주었다.


윤 센터장과의 인터뷰 전반부는 그이의 개인적인 이력, 그리고 전주 비정규 운동의 지역적 특색 등에 초점을 맞춰 전주센터의 특수성에 대해 주로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후반부는 비정규 운동에 있어서 위탁센터, 민간센터 그리고 한비네의 역할에 대해 논의했다.


위탁센터로서의 유연성과 경계성


해당 지역에서 오랜 운동 경험과 그 과정을 통해 형성된 인적 연결망을 기반으로 자연스레 비정규센터를 열거나 맡게 된 다른 센터장들과는 달리, 윤 센터장은 서울에서 직장 생활 이후 당 활동을 했다. 그러다 비정규센터에서 일해 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2년 전에 전주센터 사무국장으로 일을 시작했다. 이러한 출발 조건으로 인해 활동 초반에 지역의 다양한 정치 세력 및 운동 조직들로부터 인정받고 특정 사안들에 있어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반대로 지역의 특정 조직이나 정파의 이해관계에 얽매이거나,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다 정작 어떤 사업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오류를 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면에서 지난 2014년에 벌인 초등학교 스포츠 강사 해고 반대 투쟁은 전주센터의 귀중한 경험이자 자산이 되었다. 스포츠 강사 제도를 MB의 실패한 교육 정책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고, 대규모 인력 삭감을 발표한 전라북도 교육청의 수장이 지역 진보 및 노동세력의 적극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된 진보교육감이었던 점 등 여러 가지 미묘한 정치적 이유로 스포츠 강사들의 해고에 대해서 적극적인 반대 움직임이 없었다. 그때 전주센터가 중심이 돼 반대 투쟁을 조직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 내 협의체를 이끌어내는 데까지 성공했다. 이러한 초기 활동과 경험들에 대한 얘기는 자연스럽게 기존의 시민단체나 노동조합과는 다른 전주센터의, 더 넓게는 지역위탁센터들만의 정체성은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그 정체성을 어떻게 정립해 나갈지, 지역 단체들과 지자체 사이에서 그러한 정체성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 수 있는가에 대한 대화로 이어졌다. 가장 많이 언급된 두 단어는 ‘유연성’과 ‘경계성’이었다.


위탁센터를 운영하는 이상 노동 운동이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시각 차이가 크더라도 지자체 의원들과 공무원들을 설득하고 타협하면서 함께 가야 할 이해 당사자라는 현실을 인정한다는 것, 더 나아가 그들이 원하는 바를 센터 활동을 통해 어느 정도는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비정규 노동 운동에 헌신해 온 센터 활동가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명제인 게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운동성이 행방불명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사실은 한비네 수련회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되어 왔다.


전주센터.jpg

2015년 1월, 한비네는 전북교육청에서 영어회화 전문 강사 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지지 방문했다.(@전주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


 전주센터 역시 초기에 내부에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새로운 지역비정규센터의 정체성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실험을 하는 센터 중의 하나가 되었고, 이는 앞서 진행한 전주시 지역경제과 공무원과의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났다. 공무원은 전주센터가 지역에 노동 관련 이슈가 발생했을 때 상담 창구, 또는 민주노총이나 전교조 등 시가 직접 협상을 진행하기에 껄끄러운 노동 단체들과의 협상 채널 역할을 해주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유연성의 증가가 곧 일방적인 운동성의 포기가 되는 걸 경계라도 하듯이, 교육청을 상대로 학교 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전주시를 상대로 생활임금제 도입 등의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한편 지자체가 위탁센터를 관리하는 수단 중 하나인 상담건수를 기준으로 한 정량적 평가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해 그 비중을 크게 낮춰 진행 중인 사업들에 더 많은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앞서 언급한, 전주센터의 지역 내 역할에 대한 지자체 측의 인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관련 논의를 정리하면서 윤 센터장은 말을 덧붙였다.

 “기관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굉장히 유연하게 가줘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의 원칙을 지켜야 해요. 이 두 가지 경계를 어떻게 끝까지 가져갈 수 있을지, 눈을 부릅뜨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합치는 집중력을 가져가야 합니다.  왜냐면 거기서 ‘우리가 이거 안 되겠어, 이 쪽을 버려야겠어. 원칙만 가지고 가’라고 하면 이쪽을 털어버릴 거 아니에요. 그러면 그 순간부터 이쪽과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문제가 막 발생하는 거예요. 반대로 운동 쪽을 털어버리면, ‘우리가 뭘 하고 있지?’ 하는 자괴감이 드는 거죠. 이 긴장을 끝까지 가져가야 해요.”


조직 이론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렇게 두 가지 상반되는 힘이 조직 내부에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 조직의 사업이나 다른 이해 당사자들과의 관계를 규정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지역비정규센터들이 노사 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행위자(New actor)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한비네 내부에서도 열띤 논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위탁센터에 국한해서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일종의 경계조직(boundary organization)으로서의 정체성이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윤 센터장은 위탁센터들 내의 그러한 건강한 긴장을 계속 유지시키고, 새로운 행위자로서의 가능성을 실현시키기 위한 촉매로서 한비네의 역할을 강조했다. 


압력 단체, 그리고 자기학습조직으로서 한비네 역할


과거 이주 노동자나 결혼 이주 여성의 권리 보호를 위한 운동에서 나타난 위탁센터 모델에 대해서는 운동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데 기여했다기 보다는 자발적 운동의 동력을 감소시키고 당사자들이 중심이 된 운동으로 발전시키는데 실패했다는 평가가 더 많았다. 그러한 것을 방지하기 위해, 특히 위탁센터들이 지자체와의 관계라는 제약 속에서 운동성이 높은 사업들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전국 조직으로서의 한비네 역할이 중요하고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물적·상징적 자원을 한비네가 이미 충분히 축적했다는 것이 윤 센터장의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지난 해 1월 한비네 수련회에 참가하기 위해 전주에 내려온 30여 명의 전국 센터 대표자 및 상근자들이 전북교육청으로 학교비정규직 대량해고 반대 연대 방문 및 투쟁을 진행했는데, 전국의 비정규 운동가들이 이 문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상징적 메시지만으로도 후에 협상을 이끌어 나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윤 센터장은 한비네 수련회, 정책회의 그리고 이번 인터뷰에서도 일관되게 한비네가 중앙에 자체 상근자를 두고 더 적극적으로 외부 활동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결과적으로는 지역의 각 센터들에게도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러한 맥락에서, 운동의 외부로 향한 압력 단체로서의 역할 만큼이나, 비정규 운동의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공론화시키고 그것을 외부 활동을 위한 동력원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내부 토론과 의사소통의 장으로서 한비네의 역할이 부각되었다.


한비네는 위탁센터와 민간센터들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리 및 인권 보장이라는 목표를 중심으로 공유 결합하는 구조라는 측면에서 앞서 언급한 운동성과 유연성의 긴장을 체현하고 있는 네트워크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한비네 수련회나 그 뒤풀이에서 펼쳐지는 관에 대한 의존성, 운동성, 운동의 재생산 등에 대한 열띤 토론은 참가자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신들이 속한 센터의 정체성에 대해 되돌아보고 되묻는 계기로 작동하는 한편, 한비네가 몇몇 센터들이 중심에 서서 이끌어 가는 조직이 아닌 토론을 통해 함께 만들어 가는 조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윤 센터장 역시 민간센터인 청주나 음성센터의 사업 방식을 적극 벤치마킹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지역비정규센터, 특히 신규 위탁센터들이 꾸준히 설립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을 계속 한비네의 틀 안으로 끌어당기는 확장성과 유연성은 더욱 중요해지는 것 같다.


한옥마을의 한 막걸리 집에서 두 시간 넘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윤 센터장과 얘기를 나눴다. 위탁센터 운영에 있어 실리주의-실용주의적 관점을 강조하는 이면에 기존 비정규 노동 운동에 대한 고민, 그리고 한비네의 역할과 나아갈 방향에 대한 화두가 녹아 있어서 많은 얘기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미 세 번 위탁 계약을 갱신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전주센터는 시와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했고, 지역 노동 및 시민단체들의 네트워크에도 뿌리를 굳건히 내린 것 같았다. 이런 자산을 바탕으로 전주센터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운동을 해나가고 조직을 더욱 다져 나갈지 기대되고, 연구자로서 계속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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