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진단 프로젝트에 쉼표를 찍으며

by 센터 posted Oct 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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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철 센터 정책연구위원



9월 20일부터 23일까지 이어진 ‘2017 한국비정규노동박람회-숨겨진 노동을 만나다’가 기획단과 자원봉사단의 열정적인 준비와 진행, 각지에서 귀한 시간을 내서 올라온 활동가들의 결합, 그리고 시민들의 참여가 함께 어우러져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지난 2013년 울산, 2015년 아산, 그리고 이번에 서울 박람회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비정규센터 운동의 양적·질적 성장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아울러 이러한 성장을 이뤄낸 전국 비정규노동센터 활동가들의 열정과 노력에 새삼 경외감을 갖게 되었다. 


2014년부터 ‘한비네 조직 진단 프로젝트’에 결합해서 이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 일종의 특권이었다.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을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 위치한 비정규센터를 다니면서 지역 노동 활동가들의 살아온 얘기를 듣는 것은 개인적으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인생 공부였다. 가는 곳마다 후한 인심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은 덤이었다. 이번 호에는 이 인터뷰들과 최근 상근활동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9월 22일에 열렸던 ‘지방노동단체,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갈 것인가 : 노동센터의 역할과 상근자 인식’ 토론회에서 나온 얘기들을 갈무리하기로 했다. 먼저 설문조사 내용 중 흥미로웠던 지점들을 간단히 요약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네 개 팀으로 나누어 진행된 토론 내용, 그리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느낀 소회를 정리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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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활동가 분임토론


상근자 정체성-의식 설문조사 결과


이번 비정규노동박람회에 맞춰 지난 8월부터 실시한 설문조사에 107명의상근활동가들이 응답해주었다. 응답자 중 센터 대표자가 39명, 그리고 상근자는 68명이었다. 시민-지역-인권 운동에 거쳐 과거에 면접조사를 통한 상근자 의식 및 실태조사가 있었던 적은 있지만, 이러한 규모의 설문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거의 처음이라는 얘기를 다른 연구자로부터 들었다. 수많은 정책사업을 진행하는 상근활동가들이지만 정작 그들의 노동 실태 및 노동 조건 개선에 대한 공론화는 최근에서야 시작되었다는 것을 반영한다. 설문조사 결과도 결과지만 그 과정도 흥미로웠다. 함께 설문조사를 진행한 정흥준, 이철 박사님 모두 셀 수 없는 조사를 해왔지만 설문조사 문항의 적합성과 유효성에 대해 이번처럼 많은 문의가 들어온 적은 처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상근활동가들의 높은 인권·노동·젠더 감수성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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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결과 중 첫 번째 눈에 들어온 것은 지자체 위탁 방식의 비정규센터 운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2015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면접조사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언급했던 ‘공무원들이랑 일하는 것에 지쳤다’라고 얘기했던 것과 맥을 같이 하는 지점이다. 대표자들보다 일상적으로 관과 관계 맺기를 해야 하는 상근자들의 부정적 인식이 20퍼센트 정도 높은 점도 눈여겨 볼만한 결과였다. 위탁센터 모델의 장점이라고 평가받았던 점들, 즉 시민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고, 안정적인 활동가를 양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되며, 취약계층을 위한 지역의 정책 싱크탱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들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은 모두 줄어든 반면, 부정적인 면들–공무원 개입으로 인한 사업 영역 제한,장기 전망 수립 어려움, 센터 구성원들의 정체성 혼란–은 모두 크게 증가했다.이 중 정체성 혼란에 대한 우려가 눈에 띄게 증가했는데, 활동가와 실무자 정체성 사이 갈등이 지자체와의 관계 속에서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면접조사 결과와 결을 같이 하는 부분이었다.    


이와 연결해서 상근자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떻게 보는지 물어본 문항의 응답 결과는 왼쪽 그래프와 같이 나타났다. 활동가 정체성이 41.9퍼센트로 가장 높게 나왔지만, 실무자 또는 직장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답한 이들을 합치면 46.7퍼센트에 달했다. 면접조사에서 상근자들은 직장인은 활동가와 정확히 반대편에 서 있는 정체성으로, 위탁센터에 있으면서 급여는 급여대로 정기적으로 받으면서 운동성을 찾을 수 없는 업무에만 매몰된 상황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 호출해 낸 정체성이었다. 실무자 역시 직장인 정체성만큼은 비정규 운동과 관련해서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상황과 연결된 정체성으로 위탁센터-민간센터 모두에서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끝으로 설문조사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센터 상근자들의 구성이었다. 아래 그래프가 보여주는 것처럼 비정규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상근자들은 다양한 경력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일반기업체에서 바로 센터로 합류한 상근자 비율이 27퍼센트에 달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다양성은 노동 운동에 창의성 불어넣을 수 있는 비정규센터만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조직화 모델의 실험이 비정규센터로부터 일어나고 있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센터 내에서 다양성을 어떻게 생산적인 방법으로 조율할지 숙제를 남겨놓고 있다. 자연스럽게 토론회 내용도 그 부분에 초점이 맞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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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대표자 분임토론


결과 발표는 짧게, 토론은 길게 


‘설문 및 면접조사 결과는 짧게, 참석한 상근자들 사이의 토론은 길게’ 가져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앞서 몇 차례의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와 서울노동복지네트워크 활동가 워크숍에서 정작 상근자들(특히 젊은 상근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각종 행사 기획 및 진행에 일가견이 있는 김성호 성동근로자복지센터 사무국장의 능수능란한 사회로, 현장에 있었던 40여 명의 상근자들이 네 개로 조를 나눠 분임토의를 하고, 거기서 나온 내용들을 서로 공유하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전체토론을 진행했다.   


내부 문제들에 대해서 세대와 상관없이 모두 공감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20~30대 중반 젊은 활동가 테이블 하나, 각 센터의 사무국장들이 포진한 중견 활동가 테이블 둘, 마지막으로 결코 처음부터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공간의 제약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논의를 활성화 한다는 차원에서 토론장 밖에 마련된 공간에서 논의를 이어간 대표자 그룹까지 네 개조로 나누어서 분임토의에 들어갔다. 분임토의 주제는 1부 결과 발표 내용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내용에 대해서 함께 얘기해보고, 자신이 경험한 센터 내외 문제를 드러낸 후 해결책을 고민해 보는 것이었다. 


약 30분 동안 토론 이후 테이블 별로 비정규센터들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그 이유와 함께 발표했다. 이들을 아래 표의 왼쪽 칸에 정리했다. 이후 상근자 전체가 참여하는 즉석 온라인 설문1)을 열어서 공감하는 과제 다섯 개를 뽑아서 선택하도록 했다. 그 결과가 아래 표 오른쪽 칸에 정리한 공감비율이다.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센터 대표자를 향한 오묘한 감정이다. 대표자들이 상근자를 바라보는 눈높이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소통하고 싶어 하지만 그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는 대표자들을 향한 연민(?)이 느껴지는 ‘대표자들을 우쭈쭈해주자’라는 과제도 있었다. 한편 표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상근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대표자 분임 토론에서 나왔다.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과제들로는 많은 이들이 정책 역량 강화, 상근자 교육, 그리고 처우 개선을 뽑았다.

지역-표.jpg


즐거운 전염이 되길


토론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것은 상근자들이 세대별로 바라보는 지점이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센터 내부 문제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요한 것은 사회를 본 김성호 활동가가 계속해서 강조했던 것처럼 이런 토론의 장을 한비네와 서로넷 수준에서, 그리고 각 센터 조직 내에서 계속해서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계속 인터뷰를 통해 상근자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2년 후의 정책박람회를 준비하고 싶은 더 큰 욕심이 생겼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계몽이 아니라 전염이다’라는 멋있는 문장이 들어가 있는 신문 칼럼2)을 최근에 읽으면서 지난 9월 22일의 열띤 토론회 분위기가 다시 생각났다. 그런 즐거운 전염이 일어나는 기회가 더 많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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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설문은 아직도 열려있고 다음의 웹주소 들어가서 참여할 수 있다. 

설문참여: https://goo.gl/forms/9AB3QhEOOyoeflFL2 


2) 한겨레신문. 2017.10.13. 은유. ‘닉네임이 더치페이를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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