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에 대한 무감각

by 센터 posted Oct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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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희 학생


모처럼의 여유를 갖게 된 어느 주말, 우연히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영국드라마 〈킬링 이브Killing Eve〉를 보게 되었다. “매력적인 사이코패스 킬러 ‘빌라넬’과 평범해 보이는 영국 정보부 요원 ‘이브’의 추격 스릴러”라는 드라마의 소개만 보면 우리가 흔히 접해왔던 첩보물을 떠올릴 법하지만, 〈킬링 이브〉는 자신을 쫓는 수사관에 첫눈에 반한 사이코패스와 상대인 비밀요원 역시 그를 쫓으며 거부할 수 없는 호기심과 성적 끌림을 느낀다는 파격적인 줄거리이다. 그리고 두 주인공이 모두 여성이라는 설정을 통해 전형적인 범죄 수사물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현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임에도 내밀한 심리 묘사와 섬세한 대사, 두 주연 배우의 호연이 이야기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어느새 시청자들은 이브의 관심에 매달리며 눈물을 흘리는 킬러 빌라넬과 그를 수사하며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던 충동에 혼란을 느끼는 이브의 묘한 관계에 몰입해 둘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나 역시 극에 푹 빠져 금방 마지막 화까지 정주행했다. 특히 빌라넬이라는 인물을 지켜보면서 시청자들 역시 다채로운 감정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드라마 초반, 사이코패스 성향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잔혹한 살인을 즐기며 죽음 앞에서 더 독한 살인 유머를 구사하는 빌라넬에게 심리적 거리감을 둔 상태로 극을 지켜본다. 그러나 회를 거듭하며 빌라넬의 행동과 화법에 익숙해지다 보면 피가 난무하는 살인 장면에 눈살을 찌푸리던 모습은 어디가고 어느새 빌라넬의 살인 유머에 함께 웃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빌라넬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등골이 오싹한 서늘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빌라넬에 동조하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도덕성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는 감상평도 여럿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는 드라마 속 인물에 몰입해 있다가도, 순간 사이코패스를 심정적으로 응원하고 있는 자신으로부터 서늘한 거리감을 체험하며 몇 편 안되는 드라마를 보는 짧은 시간 동안 상식 수준의 도덕마저 잊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여느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빌라넬의 모습을 스스럼없이 관조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약간의 배신감마저 들었다. 빌라넬의 모습을 어느새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놀라움도 있었지만, 어쩌면 더 많은 비극들을 현실에서 마주하면서도 드라마를 시청할 때보다 더욱 아무렇지 않게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지난 10년간 국내에서 산업 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수가 평균 1,900여 명에 달한다는 기사를 보고 ‘위험의 외주화’란 용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너무 많이 읽고 듣다 보니,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때 가졌던 무게감이나 말에 함축된 문제적 현실을 곱씹어 보는 일이 점점 줄어들어 무뎌졌다.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위험한 작업 환경이 만연한 노동 현실 가운데서도 가장 취약한 지위에 있는 하청 노동자가 가장 쉽게 위험에 노출되는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나왔던 ‘위험의 외주화’란 용어는 그 용어가 가진 무게가 무색할 만큼 자주 사용된 탓에 이제는 일상용어가 되어버렸다. 달리 말하면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과 반복되는 죽음이 일상이 되어버렸다는 뜻이겠다.


근로복지공단이 발표한 산업 재해 현황 분석 결과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집계된 산업 재해 사망자는 1,115명이다. 사망 사고의 몇 십 배에 달하는 일하다 다치는 노동자의 숫자를 제외하고 자신이 일하는 일터에서 죽음을 맞이한 노동자만 6개월 동안 천 명이 넘는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한 해 평균 1,903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했다고 한다. 이는 산재요양급여 승인자에 한한 것이기 때문에 근로복지공단에 공식 집계되지 않은 경우까지 고려하면 실제 산재 사망자는 더 많을 것이다. 1,2,3··· 하나씩 세어보면 1,903이라는 숫자를 감히 헤아릴 자신이 없어진다. 


현대 사회에서 일하면 일할수록 행복해지고 원하는 삶을 꾸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순진한 희망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적어도 일터가 자신의 죽음의 장소가 되는 일 만은 없어야 할 텐데, 우리는 반복되는 죽음에 무뎌져버렸기 때문일까. 이렇게 많은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는데 세상이 너무 조용하다. 우리는 매일 벌어지는 죽음에, 고통 받는 몸과 마음에 얼마나 무뎌져 버렸는지. 그리고 우리가 무뎌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조차 얼마나 무감해졌는지.


열악한 노동 조건에 처한 노동자들의 아픔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창구도 갖지 못해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쉽사리 닿지 못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고통도 함께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직업보건 과학자인 캐런 메싱의 회고록의 제목 《보이지 않는 고통》처럼 보이지 않고, 또 보지 않을 뿐. 위험의 외주화, 만연한 안전 불감증과 약한 처벌 강도, 소홀한 관리·감독···. 반복되는 죽음에 작동하는 공통된 원리가 존재함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음에도 잇따르는 노동자 사망 사고에 대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무감각 속에서 위험은 아래로 흐르며 또 다른 죽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드라마를 보며, 익숙해져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익숙해진 나머지 우리가 그것들에 무관심해졌다는 사실에 대한 감각조차 상실하게 되는 순간을 상상했다. 무관심은 손쉽다. 불평등과 부정의에 분노하다가도 우리는 금방 무관심해진다. 


제작자 피비 윌러-브릿지는 〈킬링 이브〉를 “살인과 외로움에 관한 명상이자 양심이 부재하는 세상으로 제시되는 가능성이다.”라고 소개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행동-가차 없이 사람을 죽이는 빌라넬과 그에게 매번 살인을 지시하는 배후의 조직, 그들을 수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배후의 조직과 결탁하고 있는 정보국 요원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양심이 부재하는 세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바로 진정으로 양심이 ‘부재’한 세상으로 제시되는 가능성이란, 그러한 세상에 무관심한 우리들 각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 김용균 씨 사망 사고 후에도 여전히 공공기관 안전 업무의 직접고용 전환은 더디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위험에 내몰리는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이미 많은 부분이 양심을 잃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더 끈질긴 관심을 가지는 것만이 바뀌지 않는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아닐까. 언제나 감각을 곤두세우고 살아가는 것은 어렵지만, 드라마를 시청할 때처럼 무관심에 대해 무감각해진 자신에 대해 어김없이 놀라고, 무관심해졌다는 사실에 대한 감각만은 잃지 않기를, 무감각해지지 않도록 애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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