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없는 공동체의 가능성일지라도

by 센터 posted Jun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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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희 학생



사회 현상을 진단하고 문제 해결 실마리를 찾아보려는 노력이 담긴 글들에서 ‘연대’는 심심치 않게, 아니 거의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연대連帶의 사전적 뜻풀이는 “여럿이 어떤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지는 것이며,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정의된다. 연대를 내세우는 주장이 많다는 것은 현실의 많은 문제들이 연대 의식이 사라진 사회에서 나타나는 병리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만큼 연대하기 어려운 사회 현실에 대한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연대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나는데도 실상 주변을 돌아보면 많은 이들이 연대라는 단어가 불러들이는 역사적 의미가 무색하게 연대를 제 분수에 넘치는 일로 생각하고 있다. 연대 의식이 사라진 사회 현실을 지적하고 연대 필요성을 환기하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는 것과 달리 날로 황폐해져 가는 우리 사회 면면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거리두기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반응이기도 하다. 청년 세대에 한정지어보면 사회적 연대 경험보다 각자도생에 적합한 경쟁력을 기르고 경쟁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논리에 훨씬 익숙하다. 우리 세대가 연대를 낯설게 느끼는 것이 어쩌면 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연대 요청에 대한 냉담한 반응을 넘어 반감이 가감 없이 표출되며 또 다른 갈등으로 이어지는 일이 더 문제다. 


학생인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공동체에서도 이런 일들을 심심치 않게 맞닥뜨린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느낀 문제의식은 도덕적 당위를 끌어들이지 않고 연대 필요성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 반문하게 된다는 점이다. 양극화된 사회 내에서도 더 심한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는 청년들이 이들 세대를 관통하는 ‘삶과 미래의 총체적 불안정성’의 감각을 공유하고 연대할 수 있는가? 우리는 연대를 희망할 수 있을까? 연대를 찾을 수 없는(것으로 보이는) 공동체에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되는가 혹은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린 시절부터 신자유주의적 주체로 생산·훈련된 청년 세대는 경쟁 논리를 내면화하고 자본이 강요하는 위계질서에 편입되는 것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임을 습득해왔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나 기존의 불합리한 차별을 받아왔던 이들을 구제하려는 적극적 차별 조치에 대한 수용도가 낮아지는 배경에도 이들이 체화한 생존 불안과 탈락 공포, 능력주의(로 번역되는 형식적 평등)가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된다.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를 파괴하고 개인 일상을 피폐하게 만드는 극도의 경쟁주의는 미래에 대한 전망 부재와 체념적 태도를 갖게 만든다. 이 생존게임에 탈출구란 없다는 (무)의식적 감각은 속물적 삶을 살아도 된다는 동의가 이뤄지는 토대가 되며, 자기생존에 대한 절박함이 강해질수록 그 외의 것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태도가 암묵적으로 정당화된다. 자발적인(것으로 포장된) ‘궁금하지 않음’, ‘질문하지 않음’은 생존 논리가 정당화한 이 세계에 대한 무관심의 한 발로이다. 또한 속물적 삶에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한 개인들이 이러한 체제가 우리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고 있는지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한다.


각자가 겪는 고통에 눌려 구조 앞에서 무기력해진 개인들은 치유될 수 없는 무력함에 침잠하거나, 반대로 끝없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의 불안을 연료로 스스로를 소진하며 오늘도 쉼 없이 페달을 밟을 뿐 그 바깥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등바등 살아낼수록 이 경쟁체제를 영속화하는데 기여하게 된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그 너머를 상상하기 위한 출발점 역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경쟁 시스템의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식에 균열을 내는 것은 ‘이미 판단이 끝난’ 현실 변화의 불가능성과 미래 없음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되묻는 데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1차적 욕구인 휴식이나 관계적 욕구인 친밀함과 애정, 연애에 이르기까지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것들을 극한의 경쟁 앞에 무기한 유예시키는 것처럼 각자가 느끼는 삶의 감각들을 제대로 의식하거나 이를 다른 개인들과 나눌 기회 역시 마련되기 어렵다. 안정성에 대한 강박이 수세적인 방어나 자기 보호적 태도를 취하기 쉽게 만들다보니 현재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불안한 미래를 준비하는데 온 힘을 쏟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빈곤하다. 


본인의 삶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든, 변혁의 불가능성에 대해서든, 차라리 연대 없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의견이든, 지금 이곳의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좀 더 많이 떠들 필요가 있다. 단지 현재의 질서가, 그 질서에 순응하는 삶의 비인간적 면모들을 공유하는데 그치게 되더라도 탈락과 밀려남, 그것에서 기인하는 불안과 피로가 넘실대는 각자의 삶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듣는 것은 철저히 개인화되었던 경험들로부터 공통의 인식을 길어 올리는 토양이 될 것이다. 현실에 대한 공통의 인식이 기존시스템과 문화에 누적되어온 문제들을 개선해나가려는 의지를 모아내고, 그러한 인식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통해 사회적 연대 가능성을 탐구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까. 


시스템에서 탈락한 존재를 구제하기 위한 논의든,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한 제도에 가까워져버린 시스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든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적절한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결국은 우리 삶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은 개별의 인간들, 그들이 풀어내는 이야기, 그 관계들에 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기에 설령 우리 이야기가 공동체의 불가능성에 대한 확증만을 남길 뿐이라 해도 그 불안정성과 불가능성에 대해 지워지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소망하고 꿈꾸는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신이 발 딛고 선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연대와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가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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