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벗, 줄여서 ‘노벗’

by 센터 posted Apr 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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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인 수습 공인노무사 



인터넷에 ‘공인노무사’를 검색해봤다. 백과사전에서는 공인노무사를 노동법률 전문가라고 소개하고 있고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는 노사 관계 전문가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저마다의 꿈과 탈출구를 찾겠다며 공인노무사 시험에 도전했고, 노무사라 불리는 게 아직은 어색하기만 한 신입 노무사다. 2017년 11월 11일, ‘노벗’ 설명회가 있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회의실에는 20여 명의 합격자가 모였다. 1년 전 신입 노무사로 노벗 활동을 했던 선배 노무사들은 활동에 대한 설명에 앞서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돼 백혈병, 다발성골수증과 같은 희귀병에 걸린 노동자들의 영상을 보여줬다. ‘노벗’이라는 명칭으로 추측할 수 있듯이 노벗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사용자보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현실을 공부하고 개선방안을 고민해보는 모임이다. 노동자의 벗, 줄여서 ‘노벗’. 


노벗.jpg

수습 공인노무사들의 모임인 ‘노동자의 벗’ 회원들


2017년 11월 30일, 17기 노벗 준비팀이 꾸려졌다. 노벗은 자발적인 모임이기 때문에 기획과 조직, 프로그램 운영까지 준비팀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다. 선배 노무사들의 지원과 후원이 있지만 준비팀에 따라 해마다 활동 분위기가 다르다고 한다. 노벗 설명회에 참석했던 8명이 준비팀으로 꾸려졌다. 준비팀 인원은 운영팀으로 전환이 됐고, 점차 늘어나 지금은 14명이다. 12월 8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매주 한 차례씩 회의를 했다. 


프로그램 기획에 앞서 노벗 준비팀에 결합하게 된 계기와 노벗 활동을 통해 기대하는 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 산업재해로 죽은 선배 때문에 노무사 시험을 봤고 노동자를 위한 활동을 하고 싶다는 사람, 기업에서 일하다 정리해고를 겪었고 하나둘씩 사람들이 떠나가는 상황이 마치 배 위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남아있는 것 같아 돌고 돌아 이 자리에 오게 됐다는 사람, 미성숙한 존재의 한계를 이야기하며 어떤 유혹에 쉽게 흔들리지 않기 위한 토대를 쌓고 싶다는 사람, 다르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본격적인 작당모의를 시작했다. 


2018년 1월 16일, 26기 신입노무사 250명을 대상으로 노벗 회원가입을 위한 설명회를 했다. 약 3주간 회원가입 신청서를 받았고, 무려 110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역대 최대 가입 인원이라고 한다. 가입 신청서에 있는 지원동기 칸에는 노동권이나 사회정의를 위한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글이 여럿 보였다. 부디 노벗 활동을 통해 추상적인 기대가 구체적으로 인식되길 바랐다. 노무사는 자신의 전문성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의 방향이 달라진다. 창조컨설팅으로 노동조합을 파괴한 노무사가 있는가 하면, 송곳의 구고신처럼 노동자의 방패가 되어 그들의 자존감을 일깨워주는 노무사가 있다. 우리는 구고신이 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노동자의 삶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전문성을 쌓기 위해 모였다. 


그렇기 때문에 격주 주말마다 노동 인권 감수성을 높일만한 교양교육을 듣고, 노동자를 위한 노동법을 공부한다. ‘노동법은 민법과 다른 사회법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국가가 사적 영역에 개입하는 법이다. 때문에 노동법은 노동자에게 유리한 법이다.’라고 수험서에 적혀있었던 것 같다. 모두 알다시피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단적인 예로 노동3권을 구체화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벌칙조항은 대부분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을 규율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짜’ 노동자를 위한 노동법을 공부하기 위해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노동조합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2017년 11월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택배 노동자는 대형 택배사와 도급 계약을 맺은 위탁대리점으로부터 배송 1건 당 얼마의 수수료를 받는 이른바 특수고용노동자다. 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자와 자영인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어려운 복잡한 고용형태를 특징으로 한다. 때문에 노동부는 특수고용노동자가 노조법 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설립신고를 반려하기도 한다. 다행이도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설립됐고, 근로 조건을 개선할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대형 택배사에게 교섭을 요구했다. 대형 택배사는 이에 응하지 않았고 조합원과 계약을 해지하거나 대리점을 폐쇄하겠다는 위협을 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로 일관하고 있다. 노벗은 점점 늘어나는 특수고용노동자 문제에 주목하며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과 함께 부당노동행위에 대응하고 택배 노동자의 표준계약서를 마련하는 등의 활동을 할 예정이다. 


특정 이슈를 공부하는 기획프로그램도 많다. ILO협약을 읽으며 국제노동 기준과 한국의 상황을 비교해보고 노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공부하는 노동 영어 스터디, 반도체 산업의 특징을 통해 반도체 공장에서 희귀병이 발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공부하는 반올림 활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노동 인권 교육을 하기 위한 강사 양성 교육, 대학 내 비정규직의 이야기를 알리는데 동참하는 빗소리(비정규직고용개선을위한학생모임), 혼자 보기 어려운 산업안전보건법을 함께 공부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세미나 등. 


2018년 2월 10일, 노벗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입교식을 했고, 7월 초 수료식을 앞두고 있다. 2월과 7월의 가운데 4월 어느 날 이 글을 쓰며 노벗 활동이 한창인 지금, 고민하고 성장하는 시간을 노벗 동기들과 함께 보내고 있어서 즐겁다. 한 사람의 인생을 통틀어 6개월이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6개월 이후의 방향 잡이를 하기에 부족한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6개월간의 노벗 활동으로 우리는 일하는 사람을 위해 힘쓰는 노무사가 될 수 있을까. 노벗 활동으로 6개월의 시간이 기계적인 지식 쌓기를 넘어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과 함께하는 배움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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