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스러운 세상에 고함_20대를 위한 언론 ‘고함20’을 만나다

by 센터 posted Apr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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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기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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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정기 운영회의 중인 ‘고함20’ 구성원들(@고함20)


2015년 겨울, ‘고함20’에는 ‘나의 스무 살, 나의 씨발 스무 살’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글쓴이는 ‘씨발로 시작해서 씨발로 끝’난 자신의 스무 살 한 해를 회상한다. 그는 탄식한다. ‘나는 얼마나 많은 씨발들을 뱉어냈을까.’ 서로를 향해 ‘너도 진짜 불쌍하다 씨발’이라는 위로를 건네고, ‘해야지 뭐, 씨발’ 자조 섞인 답을 한다. 이 기사에 달린 답글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해결되고 마무리된 것 하나 없지만 읽고 나니 뭔가 속이 시원하네요 씨발. 감사.’2015년 겨울,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며 생각했다. 해결되고 마무리된 것 하나 없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마치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들이 어딘가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밀려들던 그 안도감이란! 주류 언론은 이런 고요한 비명들을 받아쓰지 않는다. 잘 팔리는 기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런 목소리들은 들리지 않는다. 익사한다. 마치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하지만 이 씨발스러운 세상을 견디고 있는 존재들의 비명을 수면 위로 올리는 언론이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함20’의 정체


만난 이들은 ‘고함20’의 전 대표 선기 씨와 현 대표 지원 씨, 편집장 명근 씨. 세간의 기준에 따라 이름과 직함을 붙여 스스로들을 소개했지만 ‘고함’ 내에서는 그 직함이 각자 일을 나누어맡는 것일 뿐, 권력이나 권위의 상징은 아니라고 그들은 설명했다. 수평적 구조를 지향한다는 말이었다. 듣고 보니 ‘고함20’의 출발부터가 그랬다.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상근자를 정해두고 그를 중심으로 일을 하는 구조는 애초부터 되도록 지양했다. 일은 나누어 맡고 결과물보다는 관계가 생기는 것에 집중했다.


‘고함20’은 언론사다. ‘20대가 만드는 20대 언론’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한다. 30대로 넘어가는 순간 ‘고함’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은 소멸된다고 그들은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20대 당사자들이 모여 만든 언론이지만 또한 당사자주의를 경계하고 있다고 선기 씨는 말했다.

“당사자니까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적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해요. 우리가 진짜 20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진짜 20대의 이야기란 뭘까? 20대가 쓰면 다 20대를 대변하게 되는 건가? ‘고함’이 20대를 대변하나? 할 수 있나? 이런 질문들을 계속해서 하는 거죠.”

거창한 무엇을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었고, 20대의 목소리가 공유되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게 동기의 전부였다. 처음엔 ‘20대 저널리스트 집단’이라는 말을 선호했다.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토론을 반복하면서 지금의 평등한 구조와 공통의 문제의식이 정착되었다. 8년의 시간들이 축적되는 동안 ‘고함20’은 분명한 색을 가진 문화를 만들어냈다. 누군가가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구성원들이 계속 토론하고 변화해가는 것, 끊임없이 유동중인 상태, 그것이 다름 아닌 ‘고함20’의 정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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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0대 언론 라운드테이블 ‘우린 이미 끝났어, 그러니까 XX하자’를 마친 후 단체 기념사진(@고함20)


공동체로서의 언론


‘고함20’ 홈페이지에는 ‘20대의 소란한 공존’이라는 소개글이 떠 있다. 누군가는 ‘소란한’에 방점을 찍고 그들을 평가할지 모르나 인터뷰를 마친 후 나는 ‘공존’이라는 단어가 그들을 좀 더 잘 드러내 보여준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공동체라 했다. 이는 놀라운 지점 중 하나였다. 이 집단은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사회의 평균치와는 점점 멀어지는 과정을 밟아왔을 수도 있지만 그게 꼭 나쁜 것 같지만은 않아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색이 분명한 문화를 갖는 것, 그것이 지금 ‘고함20’을 유지하는 힘이 되었다고 선기 씨는 말했다. 지원 씨와 명근 씨 두 사람은 기자 지망생이었고 ‘고함20’의 독자였으며 20대 당사자들이었다. 명근 씨는 언론사가 단지 어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해당 선수에게 반말을 쓰는 언론의 나이주의적 행태에 대해 지적한 ‘언론은 왜 어린 선수에게 반말을 할까’라는 기사를 읽고, ‘고함20’에 지원할 마음이 생겼다고 이야기했다. 기자가 되고 싶어 이곳에 들어왔지만, 이제는 제일 편하고 안전한 공간이어서 남아있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성애자 남성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는데, 남성들과의 대화가 불편했어요. 여성혐오 발언이나 권위주의적이고 권력지향적인 발언들이 오가는 게 힘들었는데, ‘고함’을 만난 후 비빌 언덕이 생긴 느낌이에요. 고함 코뮨을 만들자는 이야기도 했는데, 그러면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지원 씨 역시 다방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동료를 얻었다는 점이 스스로의 동력이 되고 있다며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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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언론 라운드테이블 ‘우린 이미 끝났어, 그러니까 XX하자’에서 토론 중인 고함20과 트웬티스타임라인 기자들(@고함20)


소통이 소거된 사회에서 소통하기


청년 담론이 넘쳐난다. 곳곳에서 청년들을 호명한다. 누구나 청년들에 대해 잘 아는 척 이야기하지만 실은 잘 모른다.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은 실체도 파악하기 힘든 지옥(헬조선)에서 멘토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힐링을 하고 창조경제형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세간에 떠도는 청년 문제는 대개가 쓰고 버릴 의도만 무성할 뿐 문제해결의 의지는 없는 정치 담론 속에서 재구성된 것들이다. 언론과 정치권은 발맞추어 이상적인 청년상을 제멋대로 구상해놓고 그에 속하지 않으면 죄다 소거해버린다. 없는 사람 취급해버리는 것이다. 이 속에 소통은 없다. 규정과 강요만 남는다. ‘고함20’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청년을 세대론에 가두려는 시도들은 ‘고함20’을 통해 실패한다. 청소년, 청년,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에 주목함으로써 그들은 그 단단한 프레임에 작은 균열을 낸다. 소거된 소통의 통로를 틔우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세대론에 대해 끊임없는 안티테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청년들이 마치 동질적인 그룹인 것처럼 사고되고 있는데 사실 그 안에도 수많은 형태의 청년들이 존재하는 거죠. 명문대 출신의 특수한 그룹의 목소리가 마치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과연 청년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그런 종류의 것인가에 대해서….”


세대론에 함몰되지 않는 언론이 되겠다는 다짐은 그런 역할을 찾는 데 있다고 선기 씨는 말했다. 이처럼 ‘고함20’은 청년에게 기대되는 지점들을 끊임없이 배반하려 노력한다. 이미 존재하지만 의도적으로 삭제된 목소리들을 같은 위치에 올려놓음으로써 대등하게 소통하려는 노력 말이다.

“삼포세대라는 말도 그래요. 결혼, 연애, 출산을 하는 특정 종류의 삶을 지정해놓고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요잖아요.”

강요가 삭제해버린 선택의 영역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는 지원 씨의 말과 마이너한 영역들에 집중되는 언론이 되었으면 한다는 명근 씨의 말은 ‘고함20’의 지향점을 집약해 보여주는 것이었다.

“형식이 급진적인 것보다 사고하는 방식이나 내용이 급진적이어야 한다고 보는데, ‘세대론에 함몰되지 않겠다’는 다짐은 표현 그 자체로는 급진적이지 않지만 매우 급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명근 씨의 말처럼 이들의 행동은 급진적인 무엇이다. ‘고함20’은 스스로를 운동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글 쓰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큰 실천인지를 생각한다. 조회 수에 연연하지 않고 어떤 글이 청년 담론의 빈 공간을 드러내 보여줄 것인지, 그것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집중한다. 

“그걸 믿고 글을 쓰는 게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빈 공간에 스포트라이트를.”

선기 씨의 말처럼 그것은 믿음이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나쁜 것들을 거부하는 가운데 우리가 마땅히 살아가야 하는 방식이라고 믿는 바대로 지금을 살아간다면 바로 그 자체가 위대한 승리이다.’

하워드 진의 말을 기억한다. ‘고함20’의 목소리는 이미 크고 작은 파동으로 세상을 바꾸어나가고 있다. 해결되고 마무리된 것 하나 없지만, 이것으로 우리는 이미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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