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최저 임금 위원입니다

by 센터 posted Jul 2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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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세연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당사자가 최저임금위원회에 들어가야 한다, 최저 임금 당사자인 청년이 최저 임금 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청년유니온 초기부터 최저 임금 사업에서 걸었던 구호였다. 근속 기간과 숙련을 보상하는 임금 체계도 없이 일상적인 고용 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청년에게 최저 임금은 유일한 임금 체계였고 미래를 준비할 수단이었다. 아르바이트에서 최저 임금을 적용받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월급 140~150만 원을 받지만 하루 11시간씩, 주 6일 근무하는 IT 노동자, 최저 임금을 웃도는 임금을 받고 일하면서 최저 임금의 인상률만큼 매해 임금이 조정되는 새내기 직장인 노동자, 계약 종료와 휴직을 번갈아하면서 실업급여가 절실한 계약직 노동자 등 청년은 최저 임금의 당사자였음에도 최저 임금이 어떤 논의를 거쳐 결정되는지, 어떤 논의들이 오가는지 제대로 참여하고 들을 기회가 없었던 데서 나온 당연하고도 절박한 구호였다.

그리고 작년 처음으로 청년 당사자가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장에 들어가 청년들의 삶에 대해 발언을 한 데 이어, 올해 드디어 청년 당사자가 30년 만에 처음으로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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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최저 임금을 결정하는가. 노동자위원, 공익위원, 사용자위원 얼굴이 담긴 피켓을 들고 있는 청년유니온 회원들


최저 임금 사업단 모임 시작


교섭장 안에서 당사자 삶에 대한 객관적 수치를 준비하고, 최저 임금 인상을 둘러싼 팽팽한 논리에 맞서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회의장 밖에서 최저임금위원회 회의 내용을 소통하고, 올려야한다는 사회적 압력과 분위기를 만들고,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청년을 만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올해 최저 임금 사업을 시작했다.


첫 시작으로 5월 5일 최저 임금 사업단 첫 모임을 준비했다. 날씨도 좋은 어린이날, 한강에서 돗자리 깔고 놀기 딱 좋은 날씨였지만 고맙게도 영등포 카페에 사업단 30여 명이 모였다. 최저 임금 5,580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야기했고 올해 어떻게 최저 임금 사업을 펼쳐 가면 좋을지 아이디어를 나누었고 구호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최저 임금은 가족 임금이다, 최저 임금 가계부와 1만 원 가계부를 써서 비교해보자 등의 아이디어가 이 자리에 모인 조합원들에게서 나왔다.

그리고 사업단과 5.18 광주역사기행을 갔다. 청년유니온이 준비한 첫 역사기행이라는 데 의미도 있었지만, 특히 다양한 참여 광장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볼 금남로에서 청년유니온이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알리고, 전국에서 모일 조합원들과 최저 임금 댄스를 추고 싶었다. 금남로에 광주, 인천, 경남, 서울, 경기 등 전국 유니온 조합원들이 모여 최저 임금 캠페인을 진행하고 최저 임금 댄스를 신나게 추었다. 캠페인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니 기세가 생겼고 참가한 사람 모두가 서명을 받고 인증샷을 찍고 춤을 추는 등 캠페인도 풍성해졌다.  1시간 남짓 캠페인을 진행했지만 전국에서 각자 유니온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하는 마음과 힘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두 번째 사업단 모임에도 15명 정도가 모였다. 2주일 동안 최저 임금을 위해 각자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해보자는 위원장의 뜬금없는 질문에 온라인 카드뉴스를 만들었다, 학교 행사에 최저 임금 주제를 던졌다, 5.18 기행에 가서 캠페인을 처음 해봤다, 주위 사람에게 최저 임금을 이야기했다, 수업 시간에 최저 임금을 주제로 발표했다, 과제 주제를 최저 임금으로 잡았다 등 사전에 이야기한 게 아님에도 각자 2주 동안 최저 임금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었다. 사업단에 새로 결합한 조합원도 있었다. 갈수록 사람이 빠지는 모임이 아니라 사람이 붙고, 모이면 할 일이 생기는 모임. 올해 최저 임금 사업은 첫 단추를 잘 꿰었던 것 같다.


이 힘으로 5월 마지막 주엔 전국 투어를 시작했다. 위원장 및 간부 한두 명이 지역에 내려가 간담회나 강연을 진행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팀’을 꾸려 지역을 순회한 것은 처음이었다. 지역에서도 이번 기회에 위원장의 뽕을 뽑으려는 심산인지 가는 지역마다 강연-캠페인-지역별 사업단 및 집행부 간담회-기자회견 등 쉴 틈 없는 일정을 잡아주었다. 경남, 부산 투어에서 차를 10시간 넘게 운전하면서도 뒷좌석의 우리를 걱정해주었던 조합원은 피곤할까봐 같이 가자는 말도 못 꺼냈는데, 먼저 연락이 와 이틀 뒤 대구 투어에도 또 함께했다. 조직국장은 생일을 반납하고 대구 투어에 하루를 보냈고, 정책국장은 ‘사장님의 일기’로 페이스북 인기 연재를 시작했다. 처음 투어에 함께하는 조합원들도 지역 간부들과 어느새 친해지고 리플릿 하나도 열성적으로 주는 모습에 함께하는 사람들도 덩달아 힘이 났다. 지역에서는 최근 두세 명이 캠페인을 진행하다보니 힘도 빠졌을 타이밍이었는데 전국 투어를 계기로 다시 잘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힘이 난다며 좋아했고 본부에서 참가한 투어팀도 지역을 돌며 더 힘을 받고 6월을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나누었다는 생각에 기운이 났다.


오세연2.jpg

“내가 최저 임금 위원이다” 위촉장을 들고 사진을 찍는 재기발랄한 회원들


 “이제 본게임을 시작하자”


5월이 지났을 뿐이지만, 여느 해 6월처럼 많은 캠페인을 진행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본게임은 이제 시작이었다. 슬로건도 바뀌었다. “준비는 다 되었다. 이제 본게임을 시작하자.”

6월 2일 최저임금위원회 속기록 공개 요구 기자 회견과 최저 임금 준수와 임금 체불 근절을 위한 제도 개선 토론회로 시작했다. 저녁에는 최저 임금 3차 사업단 모임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도 아이디어가 끊이질 않았다. 밤을 새자고 하면 샐 기세로 뒤풀이도 파할 줄 몰랐고 이야기도 마무리될 줄 몰랐다. 이날 나온 아이디어로 또 ‘국제연대팀’이 꾸려졌고, ‘드립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국제연대팀은 해외 노동조합 및 단체들을 수소문해서 연락처를 수집하고, 한국의 최저 임금 인상을 지지하는 영상을 보내달라는 공문을 쓰고, 이를 번역해 메일을 발송하고, 받은 영상을 다시 번역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주었다. 덕분에 최저 임금을 매개로 해외 단체들과 뜻있고 실천적인 연대를 하게 되었고, 최저 임금 인상이 해외에서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드립위원회는 말 그대로 ‘드립’-해석하자면, 애드리브 혹은 즉흥적 발언?-을 기획하고자 모였지만 결코 가벼운 모임이 아니다. 최저 임금의 논쟁 지점, 향후 최저임금위원회의 전망 등을 알아야만 진정한 드립이 나올 수 있을 터. 청년유니온에서 내노라 하는 재간둥이들이 모였다.


3년째 간사를 맡고 있는 ‘최저 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하는 청년학생단체 연석회의’도 더 폭넓게, 질 높게 진행되었다. 경총 앞에서 기자 회견도 두 차례 진행했고 경총의 동결안에 항의하는 동시다발 1인 시위도 함께했다. 이제 많은 청년 단체들이 최저 임금 시즌에는 무엇인가를 함께하려 하고 최저 임금 인상을 위한 활동에도 의지가 높았다.

위원장은 매주 있는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에 오가는 것만도 긴장되고 전날까지도 밤새 준비할 게 많으면서도 서울청년네트워크, 한국청년연대, 대학 동아리, 학생회 등 곳곳마다 간담회를 다녔고 최저임금위원회 소식을 빠르게 전했다. 위원장과 상근자들은 매주 목요일 최저임금위원회가 끝나면 이 소식을 빨리, 내용 있게 전달하기 위해 고민했다. 어떤 날은 밤에 모여, 어떤 날은 다음날 아침에 모여. 경총이 동결안을 발표한 날은 속보감을 주기 위해 뉴스 속보를  제작하기도 하고, 온라인 카드뉴스 등으로 만들어 배포하였다. 이제 웹툰 수준이 된 카드뉴스는 다음 카페에서 30만 뷰를 기록하기도 했다. 청년유니온에 디자인 전문가가 있다는 댓글들이 많았는데 청년유니온에 디자인 전문가는 없다. 최저임금위원회 내용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머리를 싸매 기획을 하고 노동 상담국장이 며칠을 밤새 디자인한 결과물이다.


사업을 벌여나가는 것 외에 조합원과 함께하고, 미처 못 만난 조합원을 만나는 일도 해야 했다. 직장인 모임을 진행했고, 사업단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최저 임금 인상을 위한 남산 걷기대회도 참가하고 인왕산 등반도 진행했다. 등산이 무슨 상관있나 싶지만 몸자보 하나 붙이고 두세 시간을 걸으면서 조합원들과 최저 임금에 대한 일정뿐 아니라 오고가며 나누는 이야기 속에 최저 임금 고민도 깊어지고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도 생기며 무엇보다 우리가 이렇게 함께하고 있음에 힘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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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을 돌며 진행한 최저 임금 1만 원 서명운동 캠페인


야근을 버틸 수 있는 힘


많은 청년 단체들, 조합원들, 사업단 등 최저 임금 사업을 함께한 사람들과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우리가 진행해왔던 최저 임금 사업의 마무리를 6월 25일 페스티벌로 결속 짓기로 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메르스 때문에 사람들을 모으는 행사가 속속 취소되는 조건에서 해도 되겠는지를 오래 고민했고, 최저임금위원회 회의가 집중될 시기라 언제 하면 좋을지 한참 고민하다가 열흘 정도 남겨두고 날짜를 확정해 준비에 들어갔다. 이틀 앞두고 공연 준비를 하고 장소 허가가 제대로 안 나서 조직국장이 애를 태우고, 하루 전날 영상 서너 개를 만들고···. 여하튼 열심히,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짧은 시간 준비한 것치곤 준비가 잘 되었다고 생각했던 찰나 금요일부터 온다던 비가 행사 당일, 목요일 저녁부터 내리는 게 아닌가. 다행히 뒤풀이 장소로 잡아두었던 곳이 실내 공연 등이 가능해 밖에서 하려던 것을 그대로 가져와 실내에서 진행했다. 거리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지 못한 게 아쉽다는 생각을 느낄 새도 없이, 사람들은 마치 처음부터 실내에서 하려던 행사처럼 호응도 더 크게 해주었고 뜨거운 반응을 나누었다. 비 때문에 침울할 틈도 없이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함께하니 즐겁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게 5, 6월을 함께 살아온 힘이구나 싶었다. 더불어 올해 최저 임금과 청년유니온 활동에 많은 관심을 보여준 많은 분들이 큰 힘이 되었고 감동을 주셨다. 없는 살림에 최저 임금을 위해 리플릿을 만들고 최저임금위원회에 보낼 엽서도 제작했다. 전국을 돌면서 재정의 어려움이 있다 보니 ‘소셜펀딩’을 열었는데 일주일 만에 60만 원 정도의 후원을 받았다.(이후에 정체기ㅠ) 페이스북 카드뉴스 공유가 200개를 넘고 청년유니온이 만든 최저임금위원회 뉴스 영상을 보고 우리 대표가 최저임금위원회에 들어가니 이렇게 달라진다는 조합원의 댓글, 청유가 있어 고맙다는 문자 모두 우리에겐 야근을 버틸 수 있는 힘이었다. 모두 감사드린다.


6월 30일, 어제 29일은 내년도 최저 임금을 결정해야 할 ‘법정시한’이었음에도 올해도 법정시한을 넘기게 되었다. 매년 넘겨왔고 급하게 처리하는 것보다는 최대한 논의를 많이 해서 조금이라도 더 높이려는 노력이 된다면 참으로 좋겠지만 현재 법정시한을 넘긴 데에는 액수 논쟁 때문이 아닌, 시급-월급 병기 표기에 사용자위원들이 보이콧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엔 지금보다 얼마나 삶이 나아질 수 있을지 최저 임금 결정을 애타게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최저 임금 인상을 위해 함께 최선을 다해 노력했음을 나누고 싶은 청년유니온 사업단 및 조합원들에게 아프면 참지 않고 병원에 가고, 책 한 권 사볼 여유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최저 임금 대폭 인상의 좋은 소식이 꼭 들리기를 바란다.


더불어 청년유니온의 최저 임금 인상 후원은 계속 받습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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