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기업과 청년 비정규직

by 센터 posted Apr 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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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혜인 센터 정책부장



“제가 비정규직이 맞나요?”

청년 비정규직 실태조사 중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무기계약직, 용역, 특수고용, 시간제 일자리 등 일일이 설명하기 힘들 만큼 고용 형태도 다양했다. 청년들은 자신의 고용 형태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했고 근로기준법이나 취업규칙 등 노동 문제가 발생했을 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현재의 고용 형태가 비정상적이라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아빠 세대들이 당연히 누려왔던 고용 보장과 승진, 연공급제 등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 다양한 형태로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을 추상적 수준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청년 세대가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노동 문제를 ‘블랙기업’이라는 개념으로 묶어내고, 자신의 경험을 대입하여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실천적 의미가 크다.


정부 주도의 청년 고용 사례와 문제점


청년 고용과 관련한 정부 차원의 여러 시도가 있었다. 2008년부터 시행된 지자체 행정인턴(행정안전부), 공기업 행정인턴(기획재정부), 중소기업 청년인턴(고용노동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공공 부문과 민간 기업에서 인턴 채용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겠다는 당초 취지에 부합하지 않자 행정인턴제는 금세 폐지되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고용노동부의 청년인턴제다. 이마저 정규직 전환 이후 고용 유지 비율이 30퍼센트에 불과하고 정규직 전환율도 절반에 불과했다. 또 인턴, 실습과 같은 교육도 아니고 노동도 아닌 애매한 위치의 청년이 증가했고 무임금 혹은 저임금으로 정규직처럼 부리는 기업과 인턴제를 악용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오히려 역효과만 불렀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 70퍼센트 달성의 일환으로 청년들에게 일학습병행제 시간제 일자리를 권장하고 있다. 일학습병행제는 청년들이 구직 중 스펙을 쌓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일 필요 없이 노동시장에서 일과 학습을 병행함으로써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하고 학위까지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라고 한다. 그러나 시간제 일자리의 현황은 참담하다. 경제활동인구조사 고용형태별 부가조사 원자료를 바탕으로 시간제 일자리 현황을 분석해보면, 시간제 일자리의 100퍼센트가 비정규직이고 청년층의 비율이 가장 높았으며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비율이 86.3퍼센트에 달한다. 사회보험 가입에서도 국민연금 미적용이 76.4퍼센트, 고용보험 미적용이 80퍼센트로 매우 높게 나타나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되어 있다. 퇴직금과 상여금, 유급휴가 등의 복리후생에서도 미적용 비율은 각각 86.9퍼센트, 83.5퍼센트, 91.8퍼센트로 열악한 상태이다.

게다가 일학습병행제의 문제는 벌써부터 터져 나오고 있다. 청년인턴제도에 비해 정부로부터 지원되는 금액이 적다. 일학습병행제 노동자의 임금이 낮은 것은 ‘학습근로자’ 신분으로 훈련을 병행하기 때문이라는 자기모순적인 해명을 정부는 늘어놓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청년들은 또 다시 여러 개의 시간제 일자리를 전전하는 비정규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계속해서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고용률만 높이려는 표면적 접근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안일한 대처가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을 ‘블랙기업화’ 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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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기업과 비정규직


블랙기업은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이 깊다. 기업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저임금과 고용 불안 등 외부 노동시장의 비정규직 활용성을 높이며 좋은 일자리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줄이고 있다. 비정규직이 열심히 스펙을 쌓고 기업에 필요한 능력을 갖춰도 정규직이 될 수 없는 구조적인 불평등 상황인 것이다.

블랙기업을 정의하기 위한 노력은 청년 노동자가 겪는 일상적인 착취가 개인의 문제를 넘은 집단적 경험에 근거한 현상이라는 것을 밝히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청년들의 노동 경험에 대한 더 많은 사례를 발굴하여 블랙기업을 정의하기 위한 구체적인 유형을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기업의 불법적 행위에 의한 착취에 그칠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수준의 유형이 포함되어야 한다. 위메프의 전원 해고가 불법 해고가 아니라는 고용노동부의 해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편법적 해고, 편법적 고용 형태 등의 노동법 사각지대와 비상식적인 꼼수가 존재하므로 넓은 범위에서 블랙기업의 사례를 발굴하고 유형화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사례가 필요한데, 각 지역에서 노동 상담을 수행하고 있는 비정규센터나 노동단체에 협조를 구해 상담 자료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산업, 업종에 따라 대응 방식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례를 분류하여 블랙기업을 묶어내는 작업도 필요하다.


공공 부문의 블랙기업 걸러내기


공공 부문은 국민의 편의를 위해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공공 부문 일자리는 ‘괜찮은’ 일자리여야 한다. 그러나 공공 부문에서 불안정한 고용 형태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역자치단체의 일자리를 조사한 결과 무기계약직이 30.4퍼센트 증가한 반면, 기간제와 간접 고용이 각각 23.5퍼센트, 48퍼센트 증가하여 계속적으로 불안정 일자리가 남용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용이 보장된 공공 부문의 비정규직이라도 차별적 요인은 존재한다. 청년 비정규직 실태조사 인터뷰 중 공공 부문의 청년 비정규직은 단순 반복적인 업무 속에서 개인적 능력과 경험을 확장할 기회를 갖지 못해 업무에서의 성취감이 결여되는 것을 가장 불만족 요인으로 꼽았다. 또 잡무와 개인적 심부름까지 도맡아야 하는 ‘시키기 좋은’ 위치의 특성상, 고용은 보장되었지만 당사자가 체감하는 정년 연령은 제한적이었다. 반면, 같은 업무를 하는 40대 후반의 동료는 정규직으로 호봉제와 기타 복리후생을 적용받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외환위기 이후 공공 부문에서 구조 조정이 이루어지면서 정규직 업무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특히 공공 부문의 인턴십은 취업을 위해 스펙이 필요한 청년 세대의 절실함을 이용하여 무임금 혹은 저임금으로 청년을 착취하는 블랙기업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반면 서울시는 2012년에 두 차례에 걸쳐 공공 부문 비정규직 1,367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바 있다. 직접 고용 비정규직만 포함되었다는 한계가 있으나 2017년까지 간접 고용 비정규직까지 직접 고용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는 단계적 계획이 발표된 상태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는 계속해서 비정규직 수를 늘리며 ‘블랙기업화’ 되어 가고 있지만, 서울시는 공공 부문의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선도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 서울시 사례는 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얼마든지 비정규직 대책을 수립하여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양질의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공공 부문의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여야 한다. 또 공공 부문이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민간 부문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블랙기업으로 분류될 수 있는 공공 부문 일자리 속성을 드러내고 공공 부문부터 좋은 일자리를 확산하여 청년 세대에 대한 착취를 멈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움직임이 민간 부문까지 확산되어 청년 노동 착취에 대한 사회 전반의 자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주체로서의 청년


청년을 착취하는 블랙기업 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주체가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추상적인 수준에서 청년이 겪는 부당한 노동 실태를 인지하고 있지만, 블랙기업 지표가 완성된다면 자신의 노동 경험을 대입하여 구체적인 부당 현실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청년 스스로 위법 상태에 대한 개인적 수준의 대응 능력을 익힐 수 있도록 권리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또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인권을 보호하고 공정한 노동문화를 만들어내는 집단적 주체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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