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자

by 센터 posted Feb 2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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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학문을 배우는 것은 낮은 자를 위해서다.’ 울산과학대로 처음 출근을 하는데 엘리베이터를 타니까, 이런 글이 적힌 거예요. 대학은 다르구나. 얼마나 대단하면 총장이 되고 교수가 될까. 대학에서 55만 원 받고 일을 시작했어요. 담당 교직원, 용역업체 경비반장, 청소반장, 11명이 청소하는데 관리자만 넷이더라고요. 2002년에 지하에 휴게실이 생겼어요. 관리자들이 노크도 없이 문을 여는 거예요. 한 날은 옷을 갈아입으려 하는데 반장이 문을 열더니 복장이 불순하다고 베개를 던지는 거예요. 밤새 울었어요. 나 못하겠다, 동료들이 말렸어요. 일단 출근해라. 언니가 있어야 재미가 있다. 일하는 동안 분노해서 집에 가면 늘 욕했어요. 그렇지만 분노를 표출할 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참아야 하나 생각했어요. 2006년에 연대노조 위원장이 찾아왔어요. 노동조합 가입하라기에 첫 말이 “아, 우리도 노동조합해도 됩니까?”였어요. 큰 데만 노동조합을 하는 줄 알았어요. 노동조합을 만들고 해고되고 교직원들한테 끌려나오고 울고불고, 그렇게 싸워 총장이 직접 우리 고용을 보장했어요. 식당에서 밥도 먹을 수 있고, 먹고 있으면 전(前) 총장은 와서 인사도 하고. 달라졌죠. 그래도 임금은 그닥 안 올랐어요. 야금야금 올랐죠. 우리 중에는 과반수 이상이 혼자 살거나 가장인 사람들. 생활이 안 되니까 임금 인상을 요구했어요. 우리는 한 며칠 파업하면 될 줄 알았어요. 8개월이 되도록 길어지니까 생계가 젤 걱정이에요. 조합원들 다 나이들이 있는데, 너무 힘들게 하는 거 아닌가. 반년 넘게 농성을 하는데 총장이 말이라도 한마디 했으면…. 우리 파업 이삼일 정도 됐을 때 좀 보자던가 말이라도 했으면, 이때까지 오지도 않았을 텐데. 원망도 아쉬움도 들고. 청소노동자들이 최저임금 받아도 된다는 생각들. 이 사회가 그걸 너무 당연히 여기고 있다는 게 가슴 아프지요. 청소노동자들은 이 정도만 받아도 된다, 당연하게 여기는 틀을 누군가는 깨야 하니까. 이 싸움을 이겨야 조금이라도 틀이 깨질 거니까.


정경아, 장영주

by 센터 posted Feb 2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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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SK_정경아(왼), 장연주(오).jpg


저희는 행복센터라고 해서 콜센터에서 접수된 내용을 기사님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해요. 6년째 일하고 있어요. 전국적으로 500명이 넘고 모두 비정규직이에요. 콜센터에서 받은 접수 중에 창문이 안 닫힌다, 비가 샌다,  TV가 안 나온다는 장애를 행복센터로 다 넘겨요. TV 장애 처리 건 중에 반 이상이 리모컨 배터리 교체에요. 기본 안내만 해 줘도 어느 정도 해소될 부분인데 무조건 기사를 보내라고 해요. 콜센터에서 케어가 안 되는 민원은 행복센터로 무조건 넘겨요. 고객들은 행복센터로 전화해서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내요. 그럴 경우 관리자들이 중간에서 정리를 해 줘야 하는데 오히려 우리 탓으로 돌려요. VOC라고 해서 고객이 불만을 접수해 버리면 데이터에 잡혀서 센터 실적이 내려가거든요. SK는 고객이 욕하면서 억지 부리면 다 된다고 할 정도로 다 들어주니까요. 근무는 주 5일 근무에 토요일은 격주로 일하고 일요일은 한 달에 한두 번씩 당직을 나가요. 토요일, 일요일 8시 퇴근하는 날은 월요일 출근하면 퀭해요. 연차도 금요일, 월요일은 연이어 쓰지도 못하게 해요. 오락 사이트에 회원 가입시켜 달라, 무료 성인사이트 알려 달라, 한글 가르쳐 달라, 고객들 무리한 요구는 참 다양해요. 칼 들고 컴퓨터 고쳐줄 때까지 못 나간다고 해서 경찰에 신고했던 고객이 있어요. 그 고객한테 또 전화가 와서 기사 못 보낸다고 했더니 콜센터에서는 무조건 보내라는 거예요. 생명에 관한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더니 고객이 부르니까 가라고만 하는 거죠. 나중엔 고객보호팀에서 가라고 연락이 왔어요. 직접 가서 장비 회수하고 칼도 한 번 맞아 보시라고 했더니 그때서야 알겠다고 하더라고요. 콜센터도 자기 나름의 고충이 있을 텐데 회사 지침이 없는 게 문제죠.


김지율, 최지혜

by 센터 posted Feb 2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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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LG_김지율(왼), 최지혜(오).jpg


저희는 중랑구, 노원구, 동대문구, 구리 지역을 스케줄러 업무를 2년째 하고 있어요. 평균 근속 연수는 2~3년 정도 되는데 기본 업무 외에 배울 게 너무 많다보니 이직률이 높아요. 평균 월급은 120만 원, 130만 원 정도이고 토요일은 격주로 일하지만 수당은 별도로 없어요. 노조가 생기기 전에는 연차도 없었는데 연차가 생긴 후로는 안 쓰면 없어져요. 연차 없을 때는 1년 일하면 성과급이라는 걸 줬어요. 연차가 없기 때문에 주는 급여 정도의 금액을 줬어요. 연차수당은 따로 없어요. 재주껏 쉬라고만 해요. 예전에는 아파서 쉬면 월급에서 일당을 차감했어요. 한창 바쁠 때는 센터 지표(실적)를 맞추느라 관리자들이 우리를 엄청나게 다그쳐요. 관리자들이 기사들한테 일일이 전화해서 다그칠 수 없으니까 우리만 다그치는 거예요. 일 하나라도 더 잡으라고 기사들한테 전화하라고 하는 거죠. 기사들은 힘들어서 못한다고 해요. 그러면 관리자는 ‘너네 그것밖에 안되느냐’고 그러죠. 기사들 무조건 다그쳐서 TV 하나라도 더 유치하라는 건데 그건 영업팀 업무에요. 영업팀도 업무가 바쁘니까 우리한테 영업도 빨리 배우라고 하는데 배울 시간을 줘야 배우죠. 밥 먹을 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요. 처음 일할 때는 기사들하고 싸워서 울고, 고객한테 욕먹어서 울고, 고객센터랑 싸워서 울고 그랬어요. 고객 접수 받아서 기사들 스케줄 잡아주고, 민원이나 A/S, 해지 업무에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빠요. 사람이 더 필요한데 센터는 사람을 뽑지 않아요. 지금은 파업 중이라 대출 받아 생활하다 보니 모두 빚쟁이들이에요. 급여 인상도 좀 많이 됐으면 좋겠어요. 파업이 잘 끝나서 근로조건이 좋아지면 파업에 참여 안 한 사람들과 차이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전재환

by 센터 posted Jan 0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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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_전재환.jpg




저는 현재 58세고 내년 4월이면 이 아파트에서 일한 지 5년이 돼요. 그 전에도 몇 군데서  경비 일을 했어요. 남대문에도 있었고, 동대문 종합시장에도 있었고, 태릉 육사에서도 2 년 있었어요. 거기보다 여기가 좀 힘들어요. 나무가 많으니까 낙엽도 많아 치울 것도 많지 만 무엇보다 입주민들 차를 밀어야 하고 차 관리를 해줘야 하니까 그게 힘들어요. 여기서  차 밀다가 몸 다치고 골병든 사람들이 많아요. 거의 다리를 많이 다쳐요. 차가 얼마나 무거운데요. 하지만 여기서 일하려면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다 사고 나면 돈을 물어준 사람도 있다던데 저는 아직 그런 적은 없어요. 지하 주차장이 있는 곳은 차 관리를 안 하는 데 여기는 지은 지 오래 된 아파트라서 지하주차장이 없어서 우리가 하는 거죠. 입주자들과의 관계는 제 경우 괜찮은 편이에요. 정부에서는 2년씩 계약서를 쓰라고 하는데 1년 쓰고 또 쓰고 그러니까 좀 그렇더라구요. 입주자들이 그렇게 한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지만 요. 하루에 낙엽 떨어지면 두 포대 세 포대씩 쓸어야 해요. 오늘 아침에도 계속 쓸었어요. CCTV를 보면서 낯선 사람이 들어가나 안 들어가나 확인하고, 입주민이 몇 층에서 나왔다 들어가는지 다 확인하죠. 혹시라도 입주민이 다치면 뛰어가서 도와줘요. 택배도 입주민이 집에 들어가는 것 확인되면 집으로 배달해주고 그러죠. 월급은 160만 원 조금 넘어 요. 10년을 일하든 20년을 일하든 전체가 월급을 똑같이 받아요. 다른 동네보다는 월급 이 조금 나은 편이에요.  요즘 100세 시대라고 하잖아요. 65세까지는 일해야 되는데, 65세까지 일하고 관둬도 다른 할 일이 없어요. 경비라는 게 그래요. 여기 와서는 간 쓸개 다 떼어놓고 일한다는 그런 마음으로 해야 돼요. 할 수 없어요. 무슨 얘기를 해도 우리가 입주민들한테 이길 수가 있나 요. 지금은 정년이 연장되는 게 절실한데 입주민들이 나가라고 하면 퇴직해야 해요. 아파트가 용역업체와 내년에는 계약을 안 한다고 하는데 경비원들하고 사무실 직원들 합쳐서 108명이라 그게 쉬운 일은 아닐 거예요. 32년 동안 이 회사가 했는데 이걸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도 힘들지 않겠어요. 해고되면 단결이 안 되더라도 단결해야죠. 정부에서는 그렇게 쉽게 내보낼 수 없다고 신문에도 낫잖아요. 직장 다니는 아들하고 집사람하고 세 명 이 사는데 집사람은 미싱사에요. 미싱도 요즘 별로 좋지는 않은데 놀지 않고 하더라구요. 거기도 근무시간이 길어요. 9시부터 7시까지니까 집에서 얼굴 보는 시간도 잠시죠. 아들  장가도 가고 나도 건강해졌으면 하는데 24시간 근무하면 아무래도 건강에 이상이 와요. 아들 장가도 보내고 건강을 위해 등산도 하면서 살고 싶은 바람이에요.





김인준

by 센터 posted Jan 0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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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_김인준.jpg



2007년 1월 4일부터 이 아파트에서 일했어요. 올해 62세인데 호적으로는 60세로 되어있어요. 아들 둘은 분가시키고 집사람하고 둘이 살고 있어요. 우리 집사람도 요양원에서 일하는데 저랑 똑같이 24시간 일해요. 우리는 보통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요. 아침 6시에서 9시까지는 주민들이 직장을 다니니까 바쁜 시간이에요. 그때는 차가 잘 나갈 수 있도록 차를 빼 드리는 일을 하죠. 여기 차는 보통 2억, 1억 7천씩 나가는 고급차가 많아요. 주차하다가 사고 나면 입주자들이 경비 아저씨들이 무슨 돈이 있냐고 해서 주민들이 고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비는 1,200만 원 물어준 적도 있어요. 출근한 뒤 9시가 넘으면 조금 한가해지는데, 요즘 같은 날에는 낙엽 청소하고 택배 오면 택배 받아 놓죠. 겨울에 눈 오면 주민들 안 미끄러지게 눈 쓸고, 염화칼슘 뿌리고 차에 쌓인 눈도 치워요. 주민들 미끄러져서 팔다리 부러지면 안 되니까 밤 11시까지 눈 쓸고 새벽 4시부터 눈 쓸고 그래요. 밤에는 12시부터 순찰을 돌아요. 2인 1조로 순찰을 돌고 난 뒤에 잠자고 그런 식으로 하죠. 우리 일이라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외부에서 전단지 뿌리고 붙인 것을 층층이 돌면서 다 떼고, 우편함에 있는 것도 다 수거해서 버리죠. 저녁 6시부터는 퇴근하는 차들 주차하도록 도와주고 차가 거의 다 들어오는 9시쯤 되면 어두워서 청소는 못해도 아파트에 불 켜진 것 확인하고 택배를 각 세대별로 전달해요. 우리는 24시간 근무하고 하루 쉬니까 명절에도 휴가를 낼 수 없어요. 그땐 택배도 많이 오고, 명절 때 가족들하고 밥 한 끼 먹기 힘든 직업이잖아요. 경비원들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회사가 바쁜데 명절은…. 지금까지 그렇게 일 해왔어요. 처자식 먹여 살리려면 입주자들이 우리 사장님이고 사모님이다 생각하고 간 쓸개 다 빼놓고 나와야 해요. 이 아파트 경비원이 78명인데 며칠 전에 전체 경비원들한테 해고통지서가 나왔어요. 12월 말까지 일하고 그만두라고 하네요. 정년이 60센데 다른 아파트는 65세, 70세까지 연장하고 있어요. 저는 8년 근무하는 동안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이 일했는데…. 65세가 안 된다면 63세까지 만이라도 정년을 연장해주면 좋겠어요. 우리도 가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집에 가면 할아버지, 남편, 가장으로서 책임완수를 해야 하는데 지금 퇴직하면 또 직장을 구해야 돼요. 임금은 이대로 주더라도 제발 정년을 연장해주는 걸 바래요. 우리 동 대표하고 입주자 대표들이 회의해서 전 경비원들을 진심으로 살려주길 바래요. 보수는 안 올려줘도 되니까, 5년이면 더 좋겠지만 5년은 우리 욕심이고 입주자들이 3년만 더 연장해 줘도 더 바랄 게 없어요.


전홍주

by 센터 posted Oct 2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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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주-현대차.jpg



저는 현대자동차 울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고 지금은 해고자인 전홍주라고 합니다. 울산현대자동차 사내 하청업체 소속으로 20021216일 입사했어요. 그때는 월차도 마음대로 못 써서 회사가 정해주는 날만 사용해야 했어요. 처음 입사해서 자동차 아반떼 엔진 장착하는 일을 했고, 나중엔 토크 내는 일을 했어요. 토크는 볼트, 너트가 잘 됐나 확인하는 거예요. 해고되기 전까지는 룸램프 장착이라고 실내등을 장착했어요. 정규직은 그 일은 안 해요. 차 한 대가 나오면 공수가 쫙 있어요. 정규직은 쉬운 일을 쏙쏙 빼 가죠. 어려운 일은 비정규직 쪽으로 다 옮기는 거죠. 우린 휴게실 사용도 못해요. 정규직은 서클룸이라고 해서 거기서 쉬고 우리는 외곽 휴게실에서 쉬어요. 해고는 두 번 당했는데요, 200671일 해고당해서 97일 복직했어요. 명분은 신차가 투입되면서 공수가 줄어드니까 정리해고 한다고 했지만, 정확한 사유는 노조 활동이라 표적 해고죠. 교섭단으로 활동했으니까요. 그때 제가 일하는 3공장에서 정리해고만 100여 명이었어요. 대상은 거의 노조 활동가들 위주였어요. 67일 정도 농성하고 다시 복직을 했어요. 2010년 불법파업으로 대법원에서 판결 받고 정규직화 요구하면서 파업했어요. 그걸로 2011225일 해고됐어요. 10명 정도 해고됐는데 거의 간부들이었어요. 사유는 과거 경력 포함해서 10가지 정도 됐어요. 저는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로 판정 났고, 중앙노동위원회에서는 부당해고이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고 밀린 임금도 지급해야 한다고 판정 났어요. 토요일 특근하고 받는 월급이, 연봉으로 치면 2,500만 원 정도에요. 정규직은 똑 같이 일하고 10년 근속한 사람의 경우 연봉이 6~7천만 원 정도 된다고 하더라구요. 예전에는 비정규직과 급여 차이가 절반이었는데 지금은 60%까지 올라왔어요. 저는 부모님, 남동생과 같이 사는데 남동생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이에요. 제 나이가 서른여섯인데 결혼도 안하고 있으니, 부모님이 걱정하시죠. 이런 부분에 대해 이해해 줄 사람이 별로 없다 보니까, 결혼 상대를 만나야 되는데 쉽진 않잖아요. 개인적으로는 요즘 불안감 때문에 수면장애도 좀 있어요. 해고 1년차, 2년차만 해도 없었어요. 가끔, 진짜 가끔씩 술을 먹으면 극단적인 생각도 해요. 아주 가끔씩요. 11년 동안 지회가 싸웠어요. 저도 따지고 보면 8~9년 싸웠는데 그 과정에서 약간의 성과도 있었고, 좌절도 많았어요. 가장 큰 거는 9년을 싸워왔지만 어쨌든 오늘이 첫 결과물인데(근로자 지위확인과 체불임금 지급에 관한 소송) 9년을 싸워온 결과물이 또 다른 시작이니 좀 막막하긴 해요. 어렵지만 그래도 모두가 잘 되기 위해 또 한 번의 싸움을 해봐야죠.



박두원

by 센터 posted Oct 2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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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원-현대차.jpg



저는 올해 36세고 박두원이라고 합니다. 2002년 노동자대회 때 경찰과 싸우다가 잡혀갔을 때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지금은 혼자 살아요. 울산현대자동차에 협력업체 소속으로 20011027일에 입사했어요. 흔히들 사내하청 노동자라고 불러요. 2011년 당시 대의원이었는데 선동, 불법파업, 집단폭행 등 열 가지가 넘는 사유로 해고됐어요. 지금은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모두 승소하고 행정소송 중이에요. 입사해서 처음 한 일이 콘솔룸램프라고 차 안에 불 들어오는 거 장착하는 일을 1년 정도 했어요. 그러다 정규직이 산재로 나가면서 자리가 바뀌었어요. 자동차 바퀴 달기 전에 스프링을 장착하는 일이 있는데 그 일을 했어요. 쇼바라고 하죠. 그 다음에는 엔진에서 에어컨으로 연결하는 배관이라고 해야 하나, 그걸 장착했어요. 세 번째는 글라스라고, 차 뒷좌석에 문 여는 데 조그마한 거 있는데 그걸 달았어요. 정규직·비정규직은 기술적인 차이는 없는데 일이 나뉘어져 있어요. 3공장의 경우 쉬운 공정은 정규직이 다 하고 좀 빡센 거는 우리가 해요. 우리는 차체에 몸을 구부리고 들어가서 장착하고, 정규직은 고개만 숙이고 해도 되는 일을 해요. 월급은 차이가 별로 안나요. 수당에서 나죠. 성과급이나 철야의 경우 수당이 달라요. 정규직은 밤 11, 3, 4시 이렇게 시간대마다 수당이 세 번 붙어요. 좀 쎘어요. 우리는 야근 시간이 딱 2.75시간으로 정해져 있어요. 그때는 정규직으로 20년 다 되어가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철야가 있고, 철야 한 번에 일당을 40만 원씩 받아갔어요. 협력업체 사장 하려고 옛날에는 공탁금 걸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떤 사장은 업체를 몇 개씩 가지고 있어서 몇 억씩 가져갔어요. 저희 하루 일당이 5만 원이라면 협력업체가 원청에 10만 원으로 올려요. 나머지는 다 협력업체가 다 가져가는 거죠. 점심은 비정규직들끼리 먹고, 정규직 휴게실에 들어가면 정규직들이 싫어하는 것 같아 눈치 보여서 밖에서 비정규직들끼리 있어요. 비정규직이라고 차별두지 말고 누가 아프면 어디 아프노 하고 챙겨주는 것. 같은 라인에서 웃고 인사하고 술 한 잔하고 말 그대로 살맛나는 현장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비정규직이 열심히 싸워야겠죠. 무척 힘든 일이라 기대는 안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불법파견 문제 해결한다고 했는데 지금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어요. 대통령이 했던 말인데 지켰으면 좋겠어요. 불법파견 문제 조속히 판결내서 해고자들이 행복한 가정으로 빨리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해고자들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습니다. 애인이 있었는데 헤어졌어요. 해고자라고 얘기를 안 했어요. 제일 먼저 얘기하려고 했는데 3개월 지나 얘기를 했어요. 못 믿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다 헤어졌어요.



송진관

by 센터 posted Jul 0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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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_송진관.jpg



저는 올해 서른여덟이고, SK브로드밴드 노원센터에서 개통 업무와 A/S 업무를 하고 있어요. 통신 일은 14년째 하고 있어요. 저는 월급이 두 군데서 나와요. 개통 급여와 A/S 급여가 따로 나오는 거죠. A/S 기사는 회사 직원이지만 개통 기사는 직원이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근로자영자라는 이름으로 불려요. 근로자와 자영자로 같이 등록되어 있다는 게 아직도 이해가 안돼요. 예전에 오래된 낡은 아파트에서 일하다 3미터 아래로 추락한 적이 있어요. 불빛 하나 없는 지하라 헤드렌턴를 착용하고 갔어요. 제대로 일어설 수 없는 낮은 공간이었는데, 장비가 천정에 있어서 위만 보고 갔어요. 그러다 3미터 아래로 수직으로 떨어졌어요. 다행히 지하에 온수관을 보호하기 위해 감싸놓은 스폰지에 부딪혀서 크게 안 다쳤어요. 지하라 전화기도 안 터지고 다리도 후들거려 올라갈 수도 없었어요. 한참을 멍하니 그대로 있다가 겨우 정신 차리고 올라갔어요. 간혹 고객 집에서 일하다보면, 반지나 귀걸이가 떨어져 있는 경우가 있어요. ‘고객님 여기 반지 있네요하고 건네면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봐요. 또 기사가 왔다갔는데 반지가 없어졌다고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러면 경찰에 신고하면 되는데 꼭 고객센터로 전화를 해요. 어떤 고객은 누가 왔다가면 자기네 집에 뭐가 없어진데요. 제 조끼를 벗고 호주머니 빼서 털어 보이고, 작업가방이나 작업 공구를 거꾸로 뒤집어서 확인을 했어요. 그래도 우리는 감정을 내 보이면 안돼요. 엄연히 기술을 가진 사람들인데 통신서비스업이기 때문이에요. 노조가 만들어진 후로 동료들은 형 동생하면서 많이 좋아졌어요. 제가 노조활동을 하는 건 불합리한 거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싸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어서예요. 그래야 선배잖아요. 두 달 전만 하더라도 한마디도 못했어요. 이젠 당당해져서 참 좋아요.



이민영

by 센터 posted Jul 0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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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SK브로드밴드 송파센터에서 개통 기사로 일하고 있어요. 나이는 서른여덟이고 애가 둘 있어요. 케이블TV부터 시작해서 17년 동안 이 일을 하고 있어요. 개통 기사들은 전주를 기본으로 타요. 전주에 아시바라고 부르는 발걸이가 있어요. 오래되면 그게 삭아요. 체중 많이 나가시는 분들은 그것 때문에 아래로 추락해요. 잠실에 있는 어떤 전주에서는 저희도 전기를 먹고, LG 기사도 먹고, 올라간 기사들은 다 먹었어요. 겨울에 눈이 오면 비스듬하게 생긴 옥상에는 올라가지 말아야 되는데 일하려면 올라가야 돼요. 상당히 위험한데 목숨 걸고 일하는 거죠. 고객을 상대하는 건 더 힘들어요. 저번에는 개통 해주고 돌아와서 고객에게 전화를 받았어요. 그런데 스무 살 먹은 애가 쌍욕을 해요. 당장 TV 나오게 하라고. 사용설명을 해줘도 자기가 왜 그걸 해야 하냐고 해요. 그러면서 또 쌍욕을 해요. 그래도 고객이 클레임 걸까봐 참아야 해요. 어떤 기사는 한참 일하고 있다가 멱살 잡힌 채 쫓겨난 적도 있어요. 작업시간이 좀 길다는 이유였어요. 여성이 있는 집에 방문할 때 특히 힘들어요. 쳐다보는 눈빛이 이상하다, 기사가 음흉하다 그러면서 클레임을 걸어요. 감정이 많이 상하는 날은 고객과 같이 있으면 안 돼요. 잠깐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거나 바람이라도 쐬어야 해요. 안 그러면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제 경력이 아무리 많아도 회사는 갓 입사한 기사와 같은 대우를 해요. 언제든지 사람 구할 수 있다는 식이에요. 완전히 기계부품 취급을 당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것들 때문에 노조를 만들었으니 꼭 승리할 거라 믿어요. 제 아내도 많이 응원해주고 있어요. 그게 큰 힘이에요.



김민성

by 센터 posted Jul 0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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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LG유플러스 구로센터에서 개통 기사로 일한지 10년 됐고 초창기 멤버에요. 나이는 마흔 넷이에요. 저희들은 건 바이 건(개통 건수)으로 급여를 받아가기 때문에 기본급이 따로 없어요. 몇 년 전 여름에 전주에 오르다 감전 당해서 석 달 동안 입원한 적이 있어요. 그날 전주 각정(손잡이)이 빠져 있어서, 옆에 있는 가로등을 잡았는데 손이 딱 붙어버리는 거예요. 가로등 전선에 피복이 벗겨져 있었던 거죠. 동료들에게 알리려고 해도 말도 안 나와요. 그리고 정신을 잃고 아래로 떨어졌어요. 비 오는 날 누가 전주를 타고 싶겠어요. 그런데 개통요청이 들어오면 가야 해요. 한 푼이라도 벌려고 올라가는 거예요. 무거운 장비 들고 5~6층 빌라에서 개통업무 할 때는 하루 종일 5~6층을 왔다갔다 해요. 여름에는 한 집만 해도 죽어요. 그것보다 더 힘든 거는 지표라는 게 있어요. 해피콜이라고, 고객들이 점수 매기는 거예요. 몇 가지 항목 중에 하나라도 9점 나오면 빵점이나 마찬가지에요. 그러면 월급에서 차감을 해요. 고객 민원 들어오면 일 마치고 고객들한테 항의 취소해 달라고 호소하고 반성문을 써야 해요. 어떤 고객은 우리한테 세탁기 옮겨 달라, 액자 걸어 달라, 분리수거 해 달라 그러면 점수 10점 주겠다고 한 적도 있어요. 인간적으로 모멸감 느끼죠. 제가 이 일하면서 이번 51일 노동절이라고 처음 쉬어봤어요. 9, 10년 만에 처음 쉬었는데, 본사에 가서 목소리라도 좀 내보려고 갔더니 다 쉬는 날이라 경비아저씨밖에 없었어요. 그 분도 비정규직인 것 같아요. 그동안 우리가 가져야 될 권리를 너무 빼앗기며 살았어요. 사활을 걸고 하는 지금의 투쟁 빨리 끝내고 동지들하고 마음 편하게 밥 한 끼 먹고 술 한 잔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먼 곳을 바라볼 여유가 없어요.



최창용

by 센터 posted Jul 0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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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LG유플러스 구로센터에서 7년째 근무하고 있고 올해 서른다섯이에요. 저는 A/S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A/S 기사들은 기본급이 있어요. 그래도 식대, 차량유지비, 기름 값, 핸드폰 비용 빼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하루 8시간 동안 8가구를 방문을 해요. 그런데 업무량이 많을 때는 한 시간에 다섯 집까지 방문하라고 해요. 그러면 업무량이 많아져서 세밀하게 A/S를 봐주고 말 한마디라도 더 해주는 시간이 부족해져요. 한 집에 10분도 채 못 있는 경우도 있어서 계속해서 중복 장애가 나오기도 해요. 그러면 민원이 많이 들어오게 돼요. 결국 민원 들어온 기사들 지표가 떨어지기 시작하죠. 지표가 떨어지면 월급이 차감돼요. 차감되면 개인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라, 센터 전체 등급이 떨어지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기술적인 부분은 크게 문제가 없어요. 중요한 건 고객 케어에요. 사용법 설명할 시간이 부족해서 안내문을 드리거나 통화로 하게 되는 경우, 그런 걸로 점수를 잘 못 받아요. 그러면 신이 안 나요. 잘하는 1등에게는 못하는 센터의 차감한 돈을 주기 때문에 본사는 망할 일이 없어요. 지금은 A/S 기사가 민원, 해지, 회수 업무까지 다 보고 있어요. 얼마 전까지 6명이 해야 할 일을 4명이 했어요. 자연히 일은 많아지고 A/S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 정말 못된 사장들은 파산신고하고 퇴직금도 안 주고 가버려요. 노동부 신고해서 떼인 월급 받으려면 최소 1년에서 2년이 걸려요. 노무사, 세무사 상담하고 수수료 떼고, 너무 힘들어요.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도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준다든지, 최소한의 대우와 인권을 무시하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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