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 향하는 운동’의 삶의 자세를 되새기며_김진억 희망연대노조 나눔연대국장

by 센터 posted Dec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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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내공은 깊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와는 달리, 노동조합 이야기가 나오자 막힘없이 말들이 쏟아졌다. 그의 삶이 ‘아래로 향하는 운동’ 그 자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떤 자세로 살 것인지 늘 고민하고 되돌아본다는 희망연대노조 김진억 나눔연대국장과의 두 번째 인터뷰를 진행했다. 희망연대노조의 향후 방향성에 대한 고민도 들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인터뷰·정리 : 이혜정 기록 노동자


인간다운 노동이란 무엇인가


1년 반의 현장 경험 이후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시절 서노협(서울노동조합협의회) 중동부지구 사무차장을 하게 됐어요. 그때 한성게맛살 노동조합을 조직했죠. 현장 경험이 이후 조직화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현장 정서도 비교적 잘이해할 수 있었죠. 몸으로 이해되는 거죠.이후 노동 운동의 또 다른 힘, 혹은 근거가되었다고 생각해요. 인간다운 노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죠.


95년부터 민주노총 중동부지구 사무차장을 하다가 96년도에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부장을 하게 됐어요. 서울본부의 진로와 전망, 그리고 역할에 대한 고민들이 많은 시기였죠. 그렇게 조직화 사업에 몰두해 있다가 97년도에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국민승리 21’이라는 팀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곳에 파견을 나가게 된 거죠. 선거본부에 1년여간 있다가 98년도에 복귀를 하게 됐죠.


비정규직 투쟁의 시작


서울본부가 서울지역 투쟁사업장의 구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과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한다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죠. 당시에는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용어가 생소할 때였거든요. IMF 직후여서 현장에 노조 탄압, 부당 노동 행위들이 횡행했어요. 당시 서울지역의 투쟁사업장들을 모아서 상호 연대 지원 사업을 했죠. 청구성심병원투쟁도 당시였어요.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 사업으로99년도에 17군데, 2000년에 45개 사업장을 조직했죠. 재능교육 교사노조, 서울대 시설관리노조, 한국통신 계약직노조,방송사 비정규직노조, 구몬·대교 등 학습지노조 등을 조직했어요.


한국통신 계약직노조는 517일 파업투쟁을 하다 해산했죠. IMF 직후 한국통신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던 시기였고, 정규직도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피할 수 없었어요. 당시 계약직 노동자들을 외주업체 도급으로 전환하려고 시도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파업 투쟁을 벌인거였거든요. 직고용을 요구하며 투쟁했어요. 노조 설립 신고는 10월 즈음이었고, 그 해 12월부터 파업에 들어갔어요. 당시 7,000명의 노동자 중 1,200명이 노조에 가입했어요. 안 해본 거 없이 다 했죠. 성남 한국통신 본사 앞에서 노숙농성, 점거투쟁 등. 힘든 싸움이었죠. 힘의 역관계 상 우리 요구가 관철되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는데, 조합원들이 지더라도 끝까지 싸우자고 판단했어요.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었지만 당위와 역사성이 존재하는 싸움이었죠. 당시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민주노총 내부에도 그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싸움이 되었죠. 그렇게 2000년도 비정규직 투쟁이 전면화된 거죠. 한국비정규노동센터도, 비정규직공동대책위원회도, 파견철폐공동대책위원회도 당시에 만들어진 거죠. 서울지역 비정규노조연대회의도 당시에 출범했고요. 그런 일련의 흐름들이 2003년 9월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까지 이어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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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인터넷 설치 노동자가 전봇대에서 추락해 사망하자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 회견을 열었다.(@희망연대노조)

   

사회 공공성 투쟁과 비정규직 투쟁의 연결점


그러다 2001년 12월에 민주노총으로 가게 됐어요. 조직 2국에서 미조직 비정규 사업을 맡아달라고 요청이 들어온 거죠. 그렇게 조직 2국장이 되면서 2005년까지 활동했죠. 그렇게 2003년도에 민주노총 미조직 비정규실이 만들어지게 돼요. 사내하청 비정규직도 그해부터 본격적으로 조직되었어요. 전략조직화 사업 1기가 시작된 거였죠. 현대자동차 아산, 울산에서 사내하청 노조가 만들어졌죠. 전국 곳곳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되는 상황이었어요. 불법파견 정규직화(이하 불파) 투쟁도 2003년부터 준비해 시작한 거죠. 불파 싸움 10년의 과정이 그렇게 시작된 거예요. 그 과정에서 교육 공공성 투쟁의 일환으로 교육감 선거에 뛰어들게 된거죠. 그 운동이 곽노현 교육감에 이어 조희연 교육감 당선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거죠. 지역사회와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사회적 권리로서 보편적 권리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중요한 화두였어요.


2005년도에 민주노총을 정리하고 다시서울본부로 돌아왔어요. 조직투쟁에 있어내용과 지향이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커진 상태였고요. 노동 운동 전반에 변화와혁신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죠. 그때 다른 단체들에 제안해서 사회운동포럼과 노동운동포럼을 만들어 진행했어요. 2008년도에 노동운동포럼을 진행했는데, 작업장을 넘어선 사회 공공성 투쟁의 중요성을강조했죠. 사회적 보편 권리 투쟁을 진행한 것이죠. 그 연장선에서 노동조합이 우리 모두의 보편적 권리를 이야기하고 실현시켜야 한다는 실천 지점에 대한 합의였어요.


희망연대노조의 시작


2009년도에 케이블 방송 노동자가 서울본부로 상담을 왔어요. 노조가 만들어지려면 다수 조직화가 필요하다 판단했고, 준비 기간을 가진 후 출범을 한 거죠. 케이블 방송이 지역 방송이었고, 지역 방송의 공공성과도 맞아 떨어진 거죠. 전부터 논의되어왔던, 지역에 기반한 사회운동노조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한 거예요. 처음에 씨앤앰 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했고, 씨앤앰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씨앤앰 콜센터 노동자들을 조직했죠. 2013년도 2월에 먼저 외주업체 노동자들을 조직해 케이블비정규직지부를 설립했어요. 콜센터는 세 번 조직에 실패하고 네 번째 조직이 된 거예요. 뒤이어 3월에 티브로드 비정규직지회가 조직되었죠. 2014년도에는 LGU+까지, 많은 수의 케이블 방송 통신 노동자들이 조직되었어요. 몇 개월을 제외하고는 계속 투쟁의연속이었죠.


긴장감이야 이루 말할 수 없죠. 투쟁에서 싸움 양상이 어떻게 되느냐가 걸린 문제인데, 어떻게 마무리 되느냐가 결국은 노동자들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거든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투쟁을 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이 많아요.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죠. 한참 투쟁할 때는 잠도 제대로 못 자요. 매번 투쟁할 때마다 그런 과정과 고비를 겪어요. 수많은 투쟁을 봐 온 당사자로서 이기는 투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장기투쟁을 하면 소수만이 남고 많은 어려움들을 겪게 되거든요. 그것이 공허로 다가오는 거죠.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될까봐. 대중적으로 성과를 남기는 투쟁의 경우는 그 영향력이 주변 노동자들에게 긍정적으로 확산되죠. 그래서 저는 요구를 어느 정도 남기느냐보다는 어떤 조직적 성과를 남기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표적인 것이 씨앤앰 투쟁이었죠. 정말 잘 싸워서 타결을 한 거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관계에 있어서도 씨앤앰이 소중한 사례를 남겼죠. 현재도 씨앤앰은 노조 가입이 늘어나고 있거든요. 어려운 투쟁을 거치면서도 조합원들을 잘 유지했던 것 같아요. 주체로서 노동조합 조합원들을 성장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데, 그게 미조직 사업장 조직화 사업의 묘미죠. 발전하는 게 눈에 보이거든요. 10년, 20년 안정화된 노사관계 속 노조와는 다르죠. 역동적이고 변화 발전이 빠르죠.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고 행복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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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비정규직 노동자 장기파업 해결을 위한 단식농성(@희망연대노조)


다시 아래로 향하는 운동, 삶의 지향점


조직된 지 3, 4년 정도 경과하면 위기가 찾아와요. 처음의 역동적인 과정들이 지나가고 일상화된 노조 활동들이 진행되면서 고용, 임금 문제에 제한되고 머무르는 경우가 많죠. 이것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지가 관건이죠. 노동자 계급의식의 확장이 어디까지 가능할 것이냐가 그 조직의 가능성을 확정짓게 되죠. 실천의 과정이 없다면 실리주의, 조합주의로 갈 위험이 많아요. 그래서 희망연대노조는 아래로 향하는 삶, 사회보편적 권리 확보로 노동자 계급 의식을 확장시키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자 지향점이죠. 나의 권리를 되찾는 것을 넘어서 우리 모두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힘을 모을 때 더 많은 권리가 확장된다는, 그런 확장된 권리의식이 필요한 거죠. 권리를 주장할 때 동반되는 책임의식에도 집중해야겠죠. 다양한 투쟁의 경험 속에서 의식 발전이 동반되는 것이 희망연대노조가 지향하는 주체 형성이에요.


희망연대노조는 하나의 실험이자 사례예요. 그동안 노동조합 운동을 하면서 가졌던 문제의식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의 고민에 대한 대안노조 운동이었던 거죠. 지역사회 운동을 이야기하는 이유도 ‘노조의 담벼락을 넘어라’, ‘대안사회 건설’이 궁극적인 목표인데, 우리 조합원들이 일상 활동들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그런 역할들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콜센터 노동자 조직화는 KT의 자회사 KTCS에서 3년 계약직으로 일하던 콜민원 담당 노동자들 500여 명이 권고사직을 당하면서 시작됐죠. KT의 인사노무체계가 작동하는 자회사라 쉽지는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콜센터 싸움을 했고, 치열하게 진행했죠. 그때 다산콜센터에서 상담이 온 거죠. 2011년 11월이었어요. 지금 저는 희망연대노조에서 나눔연대사업국장으로 있어요. 희망연대노조는 임원들과 국장들밖에 없어요. 가능하면 위계를 없애고 수평적인 구조를 갖자는 것 때문이었죠. 지금 저는 처음에 다짐했던 아래로의 운동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어요. 내 태도나 삶, 활동을 멈추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하고 있는 거죠. 수많은 투쟁을 거쳐 오면서 삶의 자세를 배웠다고 할까요.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 비정규 노동자들, 영세중소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겹게 삶을 영위하는지 알기 때문에 ‘아래로의 운동’이라는 삶의 자세를 계속 지켜나가야겠다는 그런 생각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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