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람답게 사는 길_이종란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상임활동가

by 센터 posted Aug 24,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편집자 주 :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맺히는 뙤약볕 한여름이다. 그러나 여전히, 강남역 8번 출구 앞엔 삼성직업병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반올림 노숙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농성장에서 이종란 노무사를 만난 이후 온라인을 통해서만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그이는 한결같이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지난 7월 28일은 어느새 노숙농성 300일이 되는 날이었다. ‘반올림 농성 300일 맞이 특별 이어말하기’에서 이종란 노무사는 “위험이 우연히 벌어지지 않고, 굉장히 구조화된 것 같아요. 구조화된 위험을 바꾸기 위해 우리도 더 큰 힘으로 뭉쳐야 합니다. 안전 행동을 만드는데 더 지혜를 모아보자고 제안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문제, 지하철 하청 노동자, 삼성전자서비스 에어컨 수리기사의 죽음이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 안전 문제가 심각한 위험 수준에 이른 데서 비롯된 말인 듯하다. 지난 호에 이어 진실을 가리려는 삼성과 진실을 드러내려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이종란 노무사의 이야기를 싣는다. 


인터뷰·정리: 여민희 쉼표하나 2기 회원


누가-도입사진.jpg                                                  

삼성과 싸우는 사람들이 함께하다


2007년도에 황유미 씨 아버님을 만났어요. 아버님께서 삼성을 상대로 싸우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하셔서 수원시민신문 기자에게 이야기했고 다산인권센터에서 같이 보자고 연락이 왔어요. 2007년 7월에 황유미 씨 아버님을 처음 만났죠. 그때 황유미 씨가 돌아가신지 몇 개월 되지 않았을 때라 많이 굳어 계셨는데 본인이 알고 있는 진실을 얘기하겠다고 하셨고 많은 내용을 말씀해 주셨어요.


황유미 씨가 화학 물질로 세척 작업을 하다가 백혈병에 걸렸고, 그 일을 2인 1조로 했는데 함께 일했던 이숙영 씨도 똑같은 백혈병으로 사망한 이야기, 삼성에 노동조합이 있었더라면 내 딸이 이렇게 억울하게 죽지는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 딸 투병기간 중에 알아보았더니 두 명을 포함해서 백혈병 걸린 사람이 여섯 명 정도 더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 산업 재해로 의심이 되는데 함께 싸워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보상도 중요하지만 진상 규명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저는 반도체도 모르고 백혈병도 생소했지만 삼성이라는 회사가 노동 인권 유린이 심각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똑같은 일을 했던 두 사람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는 것은 정말 석연찮은 상황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버님께 걱정하지 마시라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열심히 하겠다는 약속을 했죠.


민주노총 경기법률원, 다산인권센터와 함께 삼성백혈병진상규명대책위 제안서를 노동자 건강권 단체들, 진보정당, 진보단체, 민주노총 등에 돌렸고 19개 단체가함께하는 반올림을 2007년 11월 20일에발족했어요.


처음 준비 모임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고 준비된 것도 없어서 불발됐는데 두번째 모임에 공유정옥 선생님이 나타나셨어요. 이후 편하게 ‘콩 동지’라 불렀어요. 콩 동지는 해외에 비슷한 사례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어요. 반도체 산업을 먼저 시작한 미국 실리콘벨리 지역에 직업병과 환경오염이 문제되어 지역 주민과 노동자가 싸워온 사례를 전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청정산업 이미지와 달리 반도체 산업이 화학 물질을 많이 사용하는 유해 산업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대책위가 힘을받고 출범을 했어요.


반올림을 출범할 당시 저는 민주노총 경기법률원에 있으면서 대책위 활동을 함께했어요, 반올림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때인데 거짓말처럼 입소문을 타고 제보자가 늘어나고 생각하는 것보다 피해자가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장기적인 대안이 필요했어요. 반올림은 상임활동가가 필요한 독립단체가 되었고 저는 첫 상근 활동을 시작했죠. 그 후로 두 명의 상근자가 더 채용되었어요.


누가-농성장.JPG

강남역 8번 출구 앞, 300여 일째를 맞이하고 있는 반올림 농성장(@강인수)


반올림, 삼성을 상대하다!


처음에는 반올림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신문, 방송 등 언론기관에 삼성 백혈병 관련 기사를 싣기도 어려웠어요. 반올림을 발족하고 처음 만났던 피해자인 박지연 씨를 잊을 수가 없어요. 삼성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렸어요. 투병 과정 중에 만났기 때문에 쾌유되기를 바랐는데 결국은 2010년 3월 말, 23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어요. 투병 과정을 지켜본 반올림에겐 너무 큰 아픔이었죠.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조촐한 기자 회견도 가졌어요. 지연 씨의 죽음이 개인 질병이 아니라 산업 재해이고 삼성과 정부가 책임져야 함을 알리고 싶었죠.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도 이 장면이 나와요. 


사실 지연 씨는 투병 중에 본인의 백혈병이 산업 재해임을 밝히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어요. 아픈 과정에서도 본인이 했던 엑스레이 검사 업무와 몰딩 업무를 일일이 적고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하고, 근로복지공단 최종심의 때는 직접 참여해 최후 진술도 했어요. 그러나 지연 씨를 포함해 고 황유미, 고 이숙영 등 함께 산재 신청한 여섯 명의 백혈병 피해자 모두 불승인되었어요.


삼성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 재해가 인정되지 않도록 노력했고, 한편으로는 가난한 집안 형편상 값비싼 치료비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점을 알고 집요하게 회유했어요. 지연 씨 어머님에게 반올림을 만나지 마라 그러면 치료비를 다 대주겠다, 집도 고쳐주겠다고 했어요. 그런 끈질길 회유 때문이었을까요. 지연 씨 장례식 때 우리는 어머님께 ‘영구차라도 한 번 삼성 본관 앞을 잠시 들렸다 가자’고 제안 드렸지만 어머님은 끝내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더 힘들어지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행정 소송마저 취하하셨죠. 그래서 지연 씨의 억울한 죽음을 산업 재해로 인정받을 기회가 사라져 버렸어요. 정말 속상했어요.


누가-발언.jpg

삼성직업병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발언하고 있는 이종란 활동가(@반올림)


삼성, 언론을 주무르다


지연 씨의 죽음이 처음으로 방송에도 나오고 온라인 이슈도 되면서 삼성도 본격적인 대응을 시작했어요.

2010년 4월, 삼성에서 몇 가지 발표를 했어요. 삼성 반도체 공장 환경과 백혈병이 연관이 있는지 공신력 있는 기관에 조사를 맡기겠다고 했어요. 또 삼성전자 건강연구소를 설립해서 연구를 하고 건강 관리하겠다는 것, 그리고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라는 이름 대신 삼성 나노시티 기흥캠퍼스, 온양캠퍼스로 불러달라며 이미지 개선을 시도했어요. 반도체 공장 하얀색 외벽을 컬러 페인트로 바꾸기도 했죠.


무엇보다 압권이었던 것은 기자들을 초청해서 반도체 공장을 보여준다는 거였죠. 삼성 본관 앞에서 기자들을 대형버스 네 대에 태우고 기흥공장 반도체 클린룸을 보여주었죠. 그 뒤로 ‘날씨처럼 청명한 반도체 클린룸’이란 기사들이 엄청 쏟아져 나왔어요.


우리는 2007년 11월부터 2010년 3월 박지연 씨 돌아가신 그때까지도 계속 싸워왔고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업 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싸움을 하고, 삼성 앞에서도 싸우고 기자 회견도 엄청 많이 했는데 기자들을 그렇게 많이 본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삼성에 그렇게 많은 기자들이 출입을 해 왔더라고요. 백혈병 문제를 한 번도 다루지 않던 기자들이 반도체 공장이 깨끗한지 취재하겠다고 대형버스 네 대에 빼곡히 탔더라고요.


그때 저와 백혈병 유가족 정애정 씨가 버스 출발 전 기자들에게 명함과 선전물을 나눠주면서 삼성 얘기만 듣지 말고 우리 얘기도 들어달라고 얘기했고 정애정 씨는 삼성 반도체에서 근무했던 노동자였기 때문에 기자들 뒤꽁무니만 따라갈 테니까 태워 달라, 공장에서 직접 일을 해보았으니 예전과 지금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죠. 애정 씨와 제가 발을 걸치고 있던 그 버스는 결국 출발을 못했어요. 그 버스에 탔던 기자들은 다른 버스를 타고 갔죠.


그때 알았어요. 삼성이 언론을 어떻게 주무르는지.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삼성에 등록된  출입 기자만 500여 명이래요. 어마어마하죠? 그러니 삼성 반도체 공장은 백혈병이 발병할 만한 그런 작업 환경이 아니라며 반올림이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죠.


누가-이어말하기.jpg

참여연대 청년공익활동가학교 수강생들이 반올림 농성장 ‘이어말하기’에 참가해 발언하고 있다.(@반올림)


삼성, 진실을 감추려하다


삼성의 방해와 관련해서 또 하나가 있었어요. 삼성이 반도체 공장 환경과 백혈병과의 관련성 조사를 공신력 있는 기관에맡기겠다고 했는데 그게 ‘인바이런’이라는해외 안전 보건 컨설팅 회사였어요. 삼성말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구자들이 많고, 1년 뒤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죠. 그 인바이런 발표 전인 2011년 6월 23일에 먼저 행정 소송 결과가 나왔어요.처음으로 고 황유미, 고 이숙영 두 분의 백혈병 사망을 산업 재해로 인정하는 판결을받았죠. 


그동안 반올림이 억지주장을 한다고 한언론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를 했어요. 첫 산재 신청을 한 지 4년 만에 산재 인정판결을 받았어요. 4년이나 걸려 간신히 인정을 받았는데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한다는 건 너무 가혹했어요. 부디 항소만은 하지 말라고 공단 앞에서 농성을 했죠. 그러나 공단은 항소 제기 기간 동안 삼성을 만났고 결국 항소를 했고, 우리는 7월 14일인가 규탄 기자 회견을 열었어요. 하필 그날 삼성이 인바이런의 조사 결과 삼성반도체 공장과 백혈병은 무관하다는 결과를 발표하죠. 발표할 때는 반올림 활동가나 피해자들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기자들도 필기를 하지 못하게 하고, 과정도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어요. 그 인바이런이라는 회사는 청부과학자(진실을 캐는 과학 본래의 목적 대신, 불편한 진실을 감추거나 논점을 흐리기 위해 자신의 지적 능력을 활용하는 부류)로 이미 오명이 있는, 친기업보고서를 작성하는 회사로 알려져 있어요. 예를 들면 담배는 폐암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보고서를 작성했고, 고엽제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라는 그런 연구를 발표한 곳이었죠.


인바이런이 어떤 회사인지를 알고 있고 인바이런의 백혈병 조사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이야기하는 대항 전문가들 도움을 받아 진실을 알리고 또 대응하고 했지요. 그러니까 그 조사로 진실을 감추려 했던 삼성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어요.


실무 협상 시작, 반올림은 빠져라


삼성은 2심에서 또 산재 인정을 받으면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인지 2심(항소심) 과정에서 삼성은 우리더러 법정에서 재판을 멈추고 법정 조정을 받자고 제안했어요. 우리는 판결로 남기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니까 거부를 했죠. 대신 법정 밖에서는 대화할 수는 있다고 했어요.


그렇게 2013년 초에 삼성으로부터 공식 제안을 받고 3월에 첫 실무 협상을 시작했어요. 삼성이 바랐던 것은 삼성 반도체 백혈병 소송 중이었던 원고 다섯 명에 국한한 보상 문제를 위한 접근이었어요. 그러나 우리는 LCD 피해자도 있고, 백혈병 외 다른 질병 피해자들도 많다고 버텼어요. 협상장에는 당시 피해자 가족모임 중이었던 여덟 가족이 다 나갔죠. 결국 8개월간의 실무 협상 끝에 5명 내지 8명에 국한한 대화가 아니라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부와 2012년까지의 LCD 사업부 소속 전, 현직 노동자들의 각종 질병 피해에 대한 보상과 사과, 재발 방지 대책이라는 의제에 대해서도 본 협상에서 다루기로 했어요. 실무 협상만 이렇게 8개월이나 걸렸지만 지금 생각해도 의제와 대상을 확대한 것은 꼭 필요하고 중요했던 과정이었어요.


본 협상이 시작되자, 본격적으로 삼성은 반올림은 빠져라, 아니면 피해자들 위임장 받아오라고 했어요. 우리는 이 협상은 반올림과 삼성전자의 집단 협상임을 강조하며 버텼는데 삼성은 집요했어요. 특히 협상위원에 대한 우선보상을 강조하면서 피해자들을 집요하게 갈라치기했어요. 결국 협상위원이었던 8명의 피해가족 중 6명은 반올림을 나가 ‘가족대책위’를 꾸렸고, 반올림은 많이 힘들어졌죠. 반올림이 피해자 가족을 내쫓았다는 악성기사에 시달리기도 했고요.


누가-문화제.jpg

삼성, 사회적 대화의 문을 ‘여름’ 300일 문화제에서 지민주 씨 노래 공연.(@반올림)


삼성과의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2014년 3월 상영되고 해외 언론에도 삼성백혈병 문제를 다루면서 큰 변화가 생겼어요. 2014년 5월 삼성전자 권오현 대표이사가 공개적인 사과를 한 거죠. 다만 그 사과의 내용은 책임을 인정하는 사과가 아닌 내용 없는 사과였어요. 직업병을 인정하거나 책임을 인정하는 내용은 전혀 없이요. 우리가 바라는 사과는 안전 보건 관리를 잘못한 점, 산업 재해를 은폐해 왔던 점에 대해 사과하라는 것이었는데 아직 그런 사과는 받지 못했어요. 보상 문제 또한 투명한 절차를 통해 배제되는 피해자가 없이 충분히 보상되어야 한다는 건데, 삼성은 이런 최소한의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요. 심지어 직접협상이 아니라 제3자 조정위원회를 통해 해결하자고 먼저 제안해놓고 막상 조정위원회에서 조정권고안이 나오니 그마저도 거부했어요. 그러고는 2015년 9월에 일방적으로 자체 보상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상당수의 피해자에게 자신들이정한 보상 기준 대로 보상하고, 그들에게한 장짜리 사과문을 보내줬으니 사과 보상문제는 다 되었다는 식이죠. 더 이상 조정위원회는 필요 없다는 식으로 나왔어요.


그게 작년 10월 초였는데 그때부터 반올림이 농성에 들어간 거예요. 더 이상 그대로 당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거죠. 농성하면서 다행히 12월부터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해서는 조정위원회가 재개되었고 올해 1월 12일자로 재발 방지 대책 합의를이루었어요. 재발 방지 대책 골자는, 삼성으로부터 독립적인 옴부즈만 위원회가 삼성 내부 재해 예방에 대해 감독하고 그에대한 보고서를 옴부즈만 위원회가 공개하기로 하는 내용인데요. 현재 4개월이 지났는데 뚜렷한 진척이 없어서 이 재발 방지대책이 제대로 이행되도록 촉구하는 것도아주 중요한 숙제거든요. 지금까지 227일차 농성 상황이에요.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길 함께해서 좋다


노무사로서의 역할은 지금은 반올림 산재 사건 대리인 정도를 하고 있고 반올림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이 더 큰 게 사실입니다. 노무사냐 활동가냐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겠지요. 어쩌면 어렸을 적부터 꿈꿔왔던 것,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길에 저도 동참하고 있다는 게 좋습니다. 다만 부족한 게 아주 많아요. 남들 흉내 내기보단 조금씩 더 배워가고 조금씩 더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