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가치사슬과 일본의 의류 산업, 그리고 노동

by 센터 posted Jan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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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직수 센터 정책연구위원



패스트패션이란 최신 유행을 신속히 담아내면서도 저가에 대량의 의류를 생산하여 판매하는 의류 사업 및 브랜드를 지칭한다. 값싸고 빠르다는 점에서 패스트푸드에 빗대어 만들어진 말이다. 원자재 조달부터 생산과 판매까지 자사가 수행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SPA라는 용어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패스트패션이 주목받게 된 것은 2008년 스웨덴 의류 브랜드인 H&M이 도쿄 긴자에 점포를 내면서부터였다. 개점 첫날부터 수천 명이 모여들면서 일본 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줄지어 해외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일본에 진출하였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유니클로가 등장하면서 패스트패션이 커다란 붐을 이루게 되었다.


이제는 대표적인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대명사는 유니클로이지만 벌써 30년이 넘은 브랜드이다. 유니클로는 1984년 히로시마에 1호점을 낸 이후 중소도시 교외를 중심으로 점포를 확대해 왔다. 지금처럼 유행에 따른 상품 순환이 빠르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저가에 값싸고 기능성 있는 의류들을 발매하며 성장해 왔다. 유니클로의 점포 수는 2013년 일본 내 853개, 해외 446개였던 것이 해외 점포를 중심으로 급속히 증가하여 2019년 8월 기준으로 일본 내 817개, 해외 1,379개이다. 해외 점포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은 단연 중국(711개)과 한국(188개)이다. 그 외에는 점포 수가 70개를 넘는 나라가 없다. 한일 관계 악화 속에서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될 만도 하다. 한편, 일본 내 유니클로 매장은 포화 상태에 이른 뒤 최근에는 오히려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데, 이는 유니클로와 같은 패스트리테일링을 모회사로 두고 있는 GU가 더욱 저렴한 브랜드로서 2006년 출범한 이후 점포를 늘려 가고 있는 상황과도 관련된다. 일본 내 및 해외 GU 점포는 2019년 8월 기준 421개이다.


패스트패션은 한때의 유행에 그치지 않고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이는 무엇보다 최신 유행 스타일을 누구나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폭 저렴해진 가격으로 인해 구매자들의 연령층도 확대되었다. 어찌 보면 ‘패션의 민주화’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 불황도 패스트패션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H&M 같은 업체의 경우 매일매일 수백 개의 ‘신상’을 매장에 들여놓아 ‘유행에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소비자 심리를 자극한 것도 주효했다. 이는 비단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바로 2009년 3월, 일본에서 유니클로 자매 브랜드인 GU가 990엔짜리 청바지를 발매한 일이었다. 이로부터 촉발된 청바지 가격 경쟁은 할인점 체인 돈키호테가 690엔짜리 청바지를 내놓으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 돈으로 단돈 7천 원 정도에 값싸고 세련된 청바지를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저렴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거기에는 밝은 면도 있지만 어두운 면도 있다. 유니클로의 성공 이면에는 특히 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유니클로가 2005년 첫 점포를 낸 뒤 급속히 성장한 한국에서도 2013년 즈음하여 ‘블랙기업’ 관행과 관련된 소식이 전해졌다. 본사 사원들에 대한 가혹한 노무 관리는 물론, 점포 판매직 노동자들에게 명목상의 관리직 직책을 부여하고 이를 빌미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을 강요하는 ‘이름뿐인 관리직’ 문제가 불거졌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급속히 저하된 노동 조건을 반영하듯 노동자들의 이직률 또한 급상승했다. 2013년에는 유니클로가 일본을 포함한 13개국 점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동일한 임금 체계를 적용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자국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끌어내리기 위한 방책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더욱이 같은 해 한국 점포에서도 블랙기업 논란이 일었다. 정규직을 최소화하고 아르바이트 노동자들 위주로 점포를 운영하면서 이들에게 자사 제품 구매를 강요하고 있던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는 암흑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저렴한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이유는 생산이 이루어지는 지점에 있었다. 지난 2016년 일본에서는 경제학자 나가타 하나코의 《990엔짜리 청바지가 만들어질 수 있는 이유》라는 책이 큰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패스트패션 의류 생산공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라는 의문을 갖고 1년간 방글라데시에 머물며 치밀한 현장조사를 수행했다. 원래 발전경제학을 전공했던 그녀는 방글라데시의 빈곤 문제를 연구하고자 하였으나, 빈곤 원인을 좇아 다다른 곳은 글로벌 의류업체들의 생산 하청공장이었다. 그녀가 세밀히 묘사하고 있는 방글라데시 봉제공장의 양상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1960~70년대 청계천의 피복공장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항구에 원자재가 도착하여 검수부터 출하까지 11개 공정, 보다 세분하면 66개 공정을 거치게 되는데, 일부 복잡한 공정의 경우 보조공원이 배치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이 공정 하나하나를 한 사람이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한다. 결국 노동자들은 극도로 파편화된 노동을 수행한다. 그것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젊은 여공들이 비좁은 공장에 다닥다닥 모여 가족들을 부양하고 동생 학비를 벌기 위해 하루 열네 시간씩 일하는 것이다. 나가타 교수에 따르면, 이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여성 노동자들 모두 저학력에 가난한 집 출신이며, 아버지 직업이 농업 또는 일용 노동자(릭샤꾼, 건설 인부 등)인 경우가 많다. 둘째, 대부분이 지방, 즉 농촌 지역 출신자들이다. 셋째, 최근 들어 이혼하거나 배우자를 사별하고 혼자 자녀를 키우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방글라데시는 2000년대 이후 6퍼센트대 경제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와 더불어 나타난 대표적인 현상이 극심한 도농 격차이다. 이러한 격차와 여성의 낮은 사회적 지위가 맞물리는 가운데 지방에서 상경한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거대한 도시 저 임금 노동자층을 형성하는 것이다. 특히 급증하는 봉제공장에서 일하기 원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가정부 같은 비공식 부문에서는 인력난이 발생하고 있기도 하다. 봉제공장 일이 비공식 부문 일보다는 신분적 구속도 덜하고 수입도 다소 낫기 때문이다. 물론 가혹하기는 매한가지이다.봉제공장 노동의 가혹함의 핵심은 저임금이다. 의류가 생산 비용 가운데 인건비 비중이 높은 만큼, 패스트패션 업체들에겐 인건비 최소화가 관건이다. 그런데 일본과 비교할 때 베트남 인건비가 절반 수준이라면 방글라데시의 경우에는 베트남의 절반 수준이다. 세계 주요 패스트패션 업체들이 방글라데시에 하청공장을 두고 있는 이유다.


물론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생산 능력에는 한계가 있고, 실제로 유니클로와 같은 업체들이 2000년대 들어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중국의 부상이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곧 변했다. 2007년에는 일본 의류 수입의 90퍼센트가 중국으로부터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2008년 금융위기와 가격 경쟁 심화로 인해 수입처 역시 다변화되었고, 2013년에는 중국 비중이 76퍼센트로 떨어지고 나머지 대부분은 베트남,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가 차지하게 되었다. 유니클로의 야나이 타다시 회장이 “방글라데시를 제2의 생산 거점으로 삼겠다.”고 선언한 것 역시 2008년 11월의 일이었다. 물론 중국에의 의존은 여전하다. 대표적인 것이 원자재 생산이다.


선진국 대기업이 저개발국 노동자 초과 착취에 의존하는 문제는 일찍이 1990년대 말, SPA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던 GAP을 비롯한 미국 의류업체들이 미국령 사이판에서 원주민 및 아시아 이민 노동자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기반한 초과 착취공장sweatshop으로부터 납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의류업체들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가속화 속에서 그저 생산 거점을 옮기면 될 뿐이었다. 나아가 이들의 성공과 더불어 패스트패션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었다. 선진국에 위치한 본사가 기획과 디자인에 집중하는 반면, 저개발국에 집중된 하청기업들이 생산하여 납품한다. 이렇게 구축된 글로벌 가치사슬의 연쇄 속에서 기획부터 점포 상품 진열까지 걸리는 시간은 채 2주 남짓에 불과하다.


저임금 외에 방글라데시에 초국적 패스트패션 기업들의 하청공장이 대거 들어서게 된 배경에는 외국 기업이 진출하기 좋은 환경이 있었다. 얄궂게도 일찍이 그 길을 닦은 것은 한국 재벌 기업인 대우그룹이었다. 대우그룹은 방글라데시 국영철도에 철도 차량을 판매하는 것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하여 1979년 현지에서 의류 생산을 개시하였다. 한국에서는 인건비 상승 등으로 인해 의류 생산이 사양길에 접어든 시점이었고 1974년 GATT 협정 이후 점차 한국에서 유럽 등으로의 섬유 제품 수출에 제한이 가해지게 되었다. 결국 1979년 섬유 제품 수출쿼터가 적용됨에 따라 대우어패럴은 방글라데시 진출을 결정하였고, 먼저 130명의 현지인을 부산공장에 데려와 7개월간 집중연수를 실시하였다. 이들을 중심으로 1980년 방글라데시에서 현지회사 ‘데시’를 설립하고 5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여 대우어패럴의 수출 물량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데시는 유례없는 급성장을 이루었다. 데시의 성공과 이즈음 이루어진 정부의 공업화로의 정책 전환, 그리고 외국기업에 대한 개방이 겹쳐지면서 의류 위탁생산은 국가적인 사업모델이 되어 급격히 확대되었다. 방글라데시에 1977년 9개뿐이었던 봉제공장은 2012년에 이르면 5,600여 개에 이르게 되었다. 급속한 사업 성장은 노동자들을 열악한 노동 조건뿐만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위험으로 내몰았다. 2000년대 이후 방글라데시에서는 끊임없이 크고 작은 공장 화재 및 붕괴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굳이 하인리히의 법칙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형 사고 발생은 ‘예견된’ 것이었다.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는 5개의 봉제공장이 입주한 8층 건물 ‘라나플라자’가 붕괴되어 1,137명이 사망하는 초대형 사고가 발생하였다. 붕괴 전날부터 징조가 감지되었지만 사업주는 조업을 강행했다. 심지어 작업장을 이탈하면 이번 달 월급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게다가 라나플라자는 상업용 시설로 지어진 건물이었는데 공장 설비에 더해 층마다 500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고 불법 증축마저 이루어졌다. 불법적인 용도 변경과 증축, 정확히 과거 한국의 삼풍백화점에서 이루어졌던 일이다. 사고는 즉각적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붕괴되어 사라진 5개의 공장이 생산하던 27개 의류 브랜드가 모두 유럽 및 미국의 원청 대기업들에 납품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고 이후 방글라데시 정부는 노동법 개정에 착수하였고, 노동조합 결성 붐이 일기도 하였다. 원청 기업들도 헌장 제정이나 기금 조성 등의 움직임을 보였다. 최저임금 또한 두 배 가까이 올랐지만, 법적 구속력이 약하고 노동자들도 수입보다는 고용을 우선시하면서 실제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 결국 저렴한 상품을 신속히 생산하기 위한 효율화와 비용 절감 압력이 글로벌 가치사슬의 말단에 위치한 방글라데시 하청기업들로 하방전가되는 양상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고, 하청기업 내에서 말단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착취와 폭력으로 이어지는 현실 역시 계속되고 있다.


유니클로가 한일 관계 악화 속에서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달리 보면 저렴한 가격과 세련된 상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니클로가 단순히 ‘일본기업’이라는 점을 넘어 그렇게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머지않아 우리는 가까운 점포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만나게 되고, 결국 저 멀리 방글라데시에서 초과 착취를 당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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