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두려워 잠 못 이루는 일본 청년 노동자들

by 센터 posted Oct 3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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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방지법 제정 이후에도 계속되는 과로자살

김직수 센터 정책연구위원



지난 2014년 제정된 일본의 과로사방지추진법은 한국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장시간 과중노동 문제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시하였으며, 노동기준감독행정 강화, 상담 창구 확대, 주기적인 연구 조사와 백서 발간 등을 규정하였다. 그러나 2년여가 지난 지금, 구체적인 규제 방안 없는 이념법 성격의 방지법은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말 일본 광고업계 대기업인 덴츠(電通)의 여성 신입사원인 다카하시 마츠리 씨가 과로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일본의 과로자살 현황


일본의 연간 자살 사건 중 업무기인성으로 추정되는 사례는 2015년 2,159명으로, 이 가운데 주요 원인이 피로인 경우가 약 30퍼센트를, 인간관계(직장 내 괴롭힘 등)인 경우가 약 20퍼센트다. 지난해 과로사 및 과로자살 산재 청구건수는 795건, 인정건수는 251건이었으며, 이 가운데 과로자살 인정건수는 93건이었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매년 평균 수십여 건의 과로자살 사건이 산재로 인정되고 있는데, 그 중 절반가량은 월 잔업시간이 100시간을 넘는 사례들이다.


일본의 연간 노동 시간은 1990년 2,064시간에서 2015년 1,734시간으로 감소 추세를 보여 왔으나 여전히 길며, 2012년 기준으로 장시간 노동 비율은 30퍼센트에 이른다(참고로 한국은 38퍼센트). 그리고 일본 정부가 과로사      ‘고위험군’으로 분류하는 기준은 월 80시간 이상의 잔업으로, 주당 노동 시간으로 환산하면 60시간 이상에 해당한다. 이 기준을 초과하는 일본의 노동자 비율은 11.6퍼센트다. 이에 더해 2013년 기준 일본 노동자의 불안 및 스트레스 경험 비율은 52퍼센트로 절반을 넘는다. 결코 과로사 및 과로자살이 ‘특수한’ 사건이 아닌 것이다.


물론 규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과로자살에 대한 기업 측의 책임에 대해서도 노동계약법(제5조, 안전 배려 의무), 노동안전위생법(제69조, 노동자 건강관리 등의 노력 의무), 노동기준법(제36조 및 제37조, 노동 시간에 관한 규정) 등에 규정이 마련되어 있다. 이에 더해 2014년에는 과로사방지추진법이 제정되었다. 그럼에도 과로사 및 과로자살은 끊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의 과로자살은 청년층에 집중되고 있어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


한편, 고질적인 장시간 과중노동 문제는 광고업, 외식업, IT업계 등 ‘무법천지’ 업종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난 4월에는 나고야의 한 공립 중학교 신임 교사의 잔업시간이 월 100시간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지며 교육 현장의 장시간 노동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25년간 변한 게 없는 장시간 과중노동 관행


일본에서 과로사 문제는 1980년대부터 주목받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과로자살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은 1990년대 들어서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과로사가 비정규직에까지 확대되는 한편, 과로자살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과로자살 문제의 심각성에 경종을 울린 사례가 바로 덴츠의 1991년 입사 2년차 대졸 신입사원의 과로자살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1996년 첫 재판에서 업무기인성을 인정받았으며, 2000년 상고심은 원심에서 유족 측 부분적 패소 부분도 파기 환송하였고 무엇보다 과로자살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최고재판소 판결로 기록되었다. 당시 덴츠 사측은 책임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한 바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덴츠에서 25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이전 사건과 이번 사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는 신입사원이었고, 스물네 살이었다.


지난해 입사 1년차였던 다카하시 씨의 10월에서 11월 사이 1개월간의 시간 외 노동은 105시간에 이르렀다. 10월 이후 소속 부서 인원이 14명에서 6명으로 줄어들면서 담당 기업도 늘어났다. 그밖에도 신입사원이라는 이유로 각종 접대,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맡았고, 회식 후에는 선배 사원에게 늦은 밤까지 지도를 받기도 했다. 11월 들어서는 상사에게 업무를 줄여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되레 폭언을 들어야 했다.


현실세계의 《오전 3시의 무법지대》


덴츠에서 월 100시간이 넘는 잔업으로 고통을 겪은 것은 다카하시 씨뿐만이 아니었다. 다수의 30대 중견 사원들도 장시간 과중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측은 월 잔업시간 상한을 원칙적으로 50시간으로 규정하고 있고, 노동자들이 시업 및 종업시간을 신고하고 상사가 승인하는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다카하시 씨의 유족과 대리인이 산재 승인을 얻기 위해 길게는 월 130시간에 이르기도 했던 다카하시 씨의 잔업 시간을 계산한 방식도 사측의 자료가 아닌, 건물 입·퇴관 기록 등이었다.


덴츠의 장시간 과중노동 관행의 배경으로 광고업계의 환경 변화 또한 꼽을 수 있다. 스마트 폰 보급과 SNS 이용 증가라는 흐름 속에서, 2010년에서 2015년 사이 모바일 광고를 핵심으로 한 인터넷 광고의 매출 비중 증가가 약 50퍼센트에 이를 정도였다. 다카하시 씨도 인터넷 광고 담당 부서에 배치되어 자동차보험 등의 광고를 담당하였으며, 자료 분석 및 보고서 작성 등의 업무를 맡고 있었다. 문제는 덴츠가 대기업임에도 환경 변화에 적응하려 시도하지 않고 중소영세기업과 같은 노동 방식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기존 방식의 광고와 달리 인터넷 광고는 조회 수 등을 근거로 사후적으로 대금이 지급된다. 인력 충원에 따른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덴츠는 업무량 증가 부담을 기존 노동자들에게 떠넘겼다.


덴츠의 사원수첩에 적혀 있는 열 가지 수칙에는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목적을 완수할 때까지 죽어도 손에서 놓지 말라’, ‘수동적인 인간이 되지 말고 항상 한 발 앞서 알아서 움직여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스스로를 다그치던 다카하시 씨는 자살 전 친지들에게 ‘몸과 마음이 모두 너덜너덜해졌다’, ‘자고 싶다는 생각 외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살기 위해 일하는 건지, 일하기 위해 사는 건지 모르겠다’, ‘내일이 올까 두려워 잠을 못 이루겠다’, ‘주말에도 출근해야 한다니 진심으로 죽고 싶다’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현실 세계에서 《오전 3시의 무법지대》의 결말은 ‘죽거나 혹은 죽음을 선택하거나’인 것이다.


행정당국의 장시간 과중노동 특별대책반


다카하시 씨의 과로자살은 올해 9월 말 산재 인정을 받았다. 이에 10월 15일 도쿄도 노동국은 덴츠를 대상으로 긴급 조사에 착수했는데, 특히 이번에는 본사뿐 아니라 각 지사 또한 대상에 포함시켰고, 조사 결과에 따라 노동기준법 위반 혐의로 형사고발 조치할 의사를 표명하였다. 게다가 이들은 전시행정 성격의 단발성 조사가 아닌,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질 때까지 불시 점검과 청취 조사를 계속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처럼 강도 높은 조사가 이루어진 배경으로는 첫째,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덴츠에서 과로자살이 처음이 아니며, 이전 사건이 일본사회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중대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 수 있으며, 둘째, 과로사방지법 이후 노동기준감독행정 강화 경향을 들 수 있다. 


현재 일본의 각 지역별 노동국 가운데 도쿄와 오사카에는 과중 노동특별대책반이 구성되어 있다. 과로사방지법 제정 이후 관리감독 행정 강화 차원으로 지난해 4월 발족하였다. 이들은 노동기준감독서의 통상업무로부터 제외되어장시간과중노동조사에 전념한다.특히 과로사 및 과로자살사건의 사후적인 조사뿐만 아니라,주요대기업의 각 사업장을 대상으로 노무관리실태를 점검하여 장시간 과중노동을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필요할 경우에는 권고나 행정지도에 그치지 않고 경영진 측에 형사책임을 묻기도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7월 신발 판매 체인점 ABC마트의 도쿄 도내 2개 점포에서 행해진 월 100시간을 초과하는 잔업에 대해 각 매장 책임자와 체인 운영회사 임원을 노동기준법 위반 혐의로 도쿄지검에 입건한 일이다. 오사카에서도 전국 체인을 지닌 음식점 운영회사 두 곳을 입건한 바 있다.


와타미 과로자살 사건과 사용자의 법적 책임 인정


행정당국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과로사 및 과로자살 문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그만큼 확산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10여 년 사이 일본에서 과로사 및 과로자살과 관련하여 가장 큰 주목을 얻으며 시민사회의 비판적 인식을 강화한 사건은 외식업계의 대기업인 와타미   (和民) 그룹에서 발생한 과로자살 사례다. 2008년 6월 와타미 그룹사인 와타미 푸드서비스에 소속된 당시 26세 정규직 노동자 모리 미나 씨가 월 141시간의 잔업을 강요당하여 입사 2개월 만에 정신질환을 얻고 자살하였던 것이다.


모리 씨는 오후 3시부터 오전 3시 반 폐점 시간까지 12시간을 연속 7일간 근무하기도 했다. 더욱이 폐점 후부터 첫차 시간까지 점포에서 대기해야 했다. 그밖에도 휴일근무, 새벽시간에 연수는 물론 와타미 그룹 회장인 와타나베 미키 씨의 저서를 자비로 구입하여 감상문을 제출하도록 강요받기도 했다. 2012년 2월 산재 인정 이후에도 와타미 측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유족과의 면담과 사과 또한 거부로 일관하였다. 이후 민사 조정을 거치면서 와타나베 씨는 정치인(자민당 참의원)이 되었고, 그럼에도 ‘도의적 책임은 인정하지만, 법적 책임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민사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와타나베 씨는 법적 책임을 인정했다. 노동 시간의 정확한 기록 등 장시간노동 대책에도 동의를 표하며 이와 같은 내용을 와타미 홈페이지 및 와타나베 씨 개인 홈페이지에 1년간 게재하기로 하였다. ‘블랙기업’이라는 비판을 더 이상 버텨내기 어려웠던 것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실제로 일본사회 내에서 과로자살 사건으로 인한 부정적 인식은 상당하다. 와타나베 씨도 경영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첫 과로사 백서 발간과 향후 규제 논의 현황


지난 10월 7일 후생노동성은 첫 번째 《과로사 등 방지 대책 백서》를 공개하였다. 2014년 과로사방지법 시행에 따라 2015년 한 해의 과로사 등 현황을 정리한 백서이다. 백서 가운데 1991년 결성된 유족 모임 활동이 과로사방지법 제정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하는 부분이 눈에 띤다. 이에 더해 약 2만 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장시간 과중노동에 관한 장기 추적조사를 실시할 계획, 장시간 노동과 건강에 관한 연구 실시 계획 등도 포함되었다.


백서의 조사 결과 중 눈에 띄는 것으로는 먼저 과로사 및 과로자살이 노동자 개인의 책임이 아님을 명확히 밝혀주는 내용들이다. 잔업 발생 이유에 관한 조사 결과 가운데 기업 측 답변에서는 ‘고객(소비자)의 불규칙한 요청에 대응하기 위해’가 44.5퍼센트, ‘업무량 자체가 많아서’가 43.3퍼센트로 나타난 반면, 노동자 답변에서는 ‘인력 부족’이 41.3퍼센트, ‘예정에 없던 업무가 돌발적으로 발생해서’가 32.2퍼센트를 기록했다. 한편, ‘노동자의 능력 부족 또는 낮은 생산성이 원인’이라는 응답은 기업 측과 노동자 측 조사 결과 모두 4퍼센트 수준에 머물렀다.


그밖에도 조사 결과는 공식적 상담 창구 마련 및 기능 강화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장시간 과중노동으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의 상담 창구는 대부분 동료나 가족 등 사적 관계자들로 나타났다. 공식 상담 창구는 과로사 및 과로자살 유족들에게도 절실하다. 과로자살의 업무기인성 판단은 업무와 정신건강(우울증 등), 그리고 자살 간의 상당인과관계 존재 여부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업무와 관련해서는 업무량 및 구속시간의 변화가 있었는지가 관건이 되며, 정신건강과 관련해서는 노동자의 육체적 정신적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한 조치가 이루어졌는지 여부 또한 중요시된다. 유족들이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법률상담을 비롯한 다양한 상담이 요구된다.


가까운 시일 내에 구체적인 노동 시간 규제방안 논의에서도 진전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노동 시간 인터벌 규제로서, EU 수준의 11시간 보장이다. 수면시간 7시간을 보장하고 출근과 퇴근에 각각 1시간씩, 기상 후 출근 준비와 퇴근 후 취침 준비에 각각 1시간씩을 보장하자는 방안이다. 일부 기업에서는 이와 같은 정책을 도입해 실시하고 있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11시간 인터벌 규제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법적 규제보다는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지원을 제공하자는 입장이다.


끝으로 장시간 과중노동 문제에 대한 사용자 책임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말 와타미 사건에서 기업 측의 법적 책임 인정이라는 진전이 있었으나,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지난 6월에는 구마모토의 히고(肥後)은행 과로자살 사건의 유족이 은행 임원 11명 개개인을 상대로 은행 측에 손해 배상할 것을 요구하는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와 같은 유형의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2012년 10월 지방은행인 히고은행 본점의 한 시스템 관리 노동자가 직전 4개월간 적게는 월 100여 시간, 많게는 월 200여 시간에 이르는 잔업을 버티다 투신자살했다. 이 사건은 이듬해 3월 산재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유족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손해 배상 청구에 머물지 않았다. 자살한 노동자가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상속받은 부인이 주주 대표로서 장시간 과중노동 대책에 소홀한 탓으로 배상금을 지출하고 신용도를 저하시킨 책임을 개별 임원들에게 묻기로 한 것이다. 임원 개개인들에게 책임이 부과될 때에야 진지한 과로 방지 대책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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