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보육원 부족과 보육 노동 문제_한국도 뒈져라!

by 센터 posted Apr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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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직수| 센터 정책연구위원



보육원 떨어진 거 바로 나다


지난 2월 중순 이후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일본열도를 달구고 있는 이슈로 단연 보육원 문제를 꼽을 수 있다. 2월 15일 한 네티즌이 익명 블로그에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뒈져라!’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이 화제가 되었다. 이 글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급속히 확산되었고, 2주 후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민주당(현 민진당) 야마오 시오리 의원이 해당 블로그 게시글 전문을 읽으며 아베 총리에게 대책을 요구했다. 이에 아베 총리는 “익명이라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다”고 답변했고, 여당 의원들은 “누가 쓴 건지 밝히라”며 거들었다. 3일 뒤 트위터 상에 ‘보육원 떨어진 거 바로 나다’라는 해시태그가 등장하면서, 한국에도 보도되어 널리 알려진 ‘바로 나다’ 운동이 시작되었다. 3월 4일부터 9일까지 6일간 보육 제도 확충을 호소하는 서명 운동에 2만 7천 명이 참여하였고, 3월 5일에는 국회 앞에 ‘바로 나다’라는 피켓을 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처럼 보육원 대기 아동 문제에 대한 호소가 커다란 공감을 얻은 배경으로는 먼저 한국만큼이나 ‘비정규직 대국’인 일본의 노동 시장 상황을 꼽을 수 있다. 비정규직 증가에 따라 맞벌이가 아니면 생활이 불가능한 가정이 증가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보육원 대기 상태로 겪는 곤란함이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일본 정부의 보육 정책 실패를 들 수 있다. 정부가 ‘대기아동 제로’를 내걸고 보육 제도 개선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 고이즈미 정권 들어서부터인데,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보육 서비스, 아동 수당, 육아 휴직 급여 등 가족 정책 지출의 GDP 대비 비율은 2013년 기준 1.25퍼센트로 3퍼센트를 상회하는 유럽 국가들에 비해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에는 신보육 제도 실시에 따라 5천억 엔이 투입되었으나, 문제 해결은 요원한 상황이다. 익명의 블로거가 올림픽 준비에 쓸 돈이 있으면 보육원부터 만들라고 호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보육원 대기아동 문제


그렇다면 보육원 대기아동은 왜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일까?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보육원 대기아동수는 2008년 1만 9천550명에서 급증하여 2010년 2만 6천275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4년 2만 1천371명에 이르기까지 완만한 감소세를 보였으나, 2015년 2만 3천167명으로 다시 증가하였다. 보육원 이용률은 2008년 30.7퍼센트에서 2015년 38.1퍼센트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증가하였고, 보육원 이용 아동수 역시 2015년 233만 명으로 전년 대비 약 6만 4천 명 증가하였다. 2010년부터 2014년 사이 전년 대비 증가 규모가 매번 4~5만 명 수준이었음에 비해 전년 대비 큰 증가세를 보인 것이다. 그 배경 중 하나로 25세 이상 45세 미만 기혼 여성의 취업률이 2010년 약 56퍼센트 수준이었으나, 2014년에는 약 62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급격히 상승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노동력 부족 상태에 직면하여 ‘1억 총 활동 사회’를 내걸고 있는 아베 내각은 정작 여성 경제 활동 참여 증가를 뒷받침할 보육 서비스 확충에는 소극적인 것이다.


물론 아베 내각이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새로운 보육 제도가 시행되면서 특정 지역형 보육사업, 유아원형 인정 어린이집, 유아원-보육원 연계형 인정 어린이집 등 시설이 확충되었고, 이에 따라 약 24만 4천 명의 정원이 새롭게 확보되었다. 그러나 이용자수도 21만 4천여 명 증가하였다. 2014년까지 전년 대비 보육원 입소 신청자 증가인수는 5~6만 명 수준이었으나,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신청자 증가인수가 13만 1천410명으로 급증한 것이다. 더욱이 전체 대기아동 중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 지역의 대기아동이 차지하는 비율이 73.7퍼센트로 문제의 심각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대기아동 가운데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소규모 보육원 대기아동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0~2세 영유아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보육원의 경우 연계 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걱정이 덜하나, 소규모 보육원의 경우 그렇지 않아 퇴원 시점에 다시 아이를 받아줄 보육원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일본에서는 구직 활동을 의미하는 단어인 ‘취활’에 빗대어 ‘보활’이라는 말이 생겨나고, ‘3세의 벽’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이다.


중앙 정부뿐만 아니라 지자체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2014년 각 지자체가 자체 점검을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인가 외 보육시설 중 37.6퍼센트가 보육 노동자 확충 등 정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3월 기준으로 인가 외 보육시설은 8천여 개로, 20만여 명의 아동이 이용하고 있다. 보육의 질이 확보될 리 만무하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산전산후관리센터 등을 마련하여 출산 전후 산모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더불어 육아 상담을 제공하는 등 자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영유아 보육시설 졸업 후 보육원 입소 중개를 해 주거나 육아 보조금을 지급하는 지자체들도 늘고 있다.


문제 핵심은 보육 노동자 처우개선


지난 2월 말 이후 국회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대기아동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보육 노동자 충원이 필수적이며, 보육 노동자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육 노동자 처우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본 후생노동성도 2017년 말까지 전국적으로 9만 명의 보육 노동자를 충원할 필요가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국회에서의 공방 이후 일본의 5개 주요 야당은 공동으로 보육 노동자 월급을 5만 엔 인상하는 법안을 제출한 바 있고, 이를 의식하여 아베 내각과 자민당 또한 직장 내 어린이집 국고 지원 확대, 소규모 영유아 보육원 정원 확대, 보육 노동자 임금 4퍼센트 인상 등의 대책 방안을 검토하였다. 그러나 정작 아베 내각이 3월 28일 발표한 ‘긴급 대책’ 내용은 0~2세의 영유아를 수용하는 소규모(정원 6~19명) 보육원의 수용 정원 상환을 22명으로 늘리는 것에 머무는 임기응변에 불과했다. 이에 기존 수용 인원 확대만으로는 보육 노동자의 노동 강화만 강화하여 보육의 질을 더욱 떨어뜨릴 뿐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역설적인 상황은 보육사 자격을 지니고 있으나 정작 취업하지 않은 이들이 상당수이며, 그것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해 기준으로 보육사 등록자 중 보육원 취업자는 43만 명인데 비해, 미취업 자격 보유자, 즉 ‘잠재적 보육사’는 76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왜일까? 지난 2013년 도쿄도가 도내 보육사 등록자 3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역 보육 노동자 가운데 퇴직을 생각하고 있는 이들의 비율이 약 20퍼센트에 달했다. 그 이유는 단연 저임금과 높은 노동 강도였다.


보육사 급여는 전 직종의 약 60퍼센트 수준에 머물고 있다. 후생노동성의 2015년 임금구조기본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보육 노동자의 평균 연령은 35.2세(전체 보육 노동자의 약 95퍼센트가 여성이다), 평균 근속년수는 7.7년, 월평균 노동 시간은 175시간이었고, 월평균 임금은 약 22만 엔, 연간 상여금은 약 60만 엔 수준으로 나타났다. 전체 남성 노동자 월평균 임금이 약 37만 엔, 전체 여성 노동자 월평균 임금이 약 26만 엔임을 고려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정규직에 한정하면 약 15만 엔 수준의 기본급에 더해 상당한 초과근무를 할 때 겨우 전체 여성 임금 노동자 평균 임금 수준에 이르게 된다.


더욱이 보육 노동자 중 비정규직(주로 임시직 및 파트타임) 비율은 50퍼센트 수준에 이르러 고용도 안정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근속에 따른 임금 수준 차이가 크지 않다. 보육사 자격은 한 번 취득하면 갱신이 필요 없고, 연수 제도도 갖추어져 있지 않아 전문성 향상에 따른 임금 수준 향상 구조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보육 노동이라는 여성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저평가 또한 낮은 임금 수준의 배경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보육 노동은 정말 그저 ‘아이들과 놀아주기’에 불과한, 그리 어렵지도 않고 전문성도 필요치 않은 일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알레르기나 주의력 결핍 등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건강상의 주의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보육 노동자에게 보다 많은 지식과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고용 불안정과 빈곤 등으로 인해 아이들뿐만 아니라 보호자인 부모와도 관계 형성 및 유지에 보다 많은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반면에 보육 노동자의 노동 강도는 강화일로에 놓여 있다. 보육 수요가 높은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정원 초과 상태의 보육원이 속출하고 있다. 보육 노동자 1인이 담당하는 아동 수는 평균적으로 4~5명인데다, 대부분의 보육원이 연장 보육, 영유아 보육, 장애아 보육 등 특별 보육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부모들이 유연화된 노동 시장 환경 속에 놓여있다 보니 보육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다수의 보육원들은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까지 연장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를 위해 비정규직을 활용하거나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복잡한 형태의 교대제를 실시한다. 보육 노동자들은 생활 리듬의 파괴를 겪고 동료 관계 형성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당연히 노동조합 결성은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보육 노동자들이 초과 근무를 하고 있지만, 보육 서비스 제공에 수반되는 행정적 사무작업 등에는 잔업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 관행이 형성되어 있다. 보육 노동자들에게는 휴식 시간 또한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다. 보육원 아동들의 휴식 시간에도 아이들을 지켜봐야 하며, 정해진 휴식 시간에는 밀려드는 사무 처리를 해야 한다. 보육사 자격을 지니고도 보육원 취업을 꺼려하는 이들이 증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제는 한국의 부모들이 화답할 때


정부를 향한 한 미취학 아동 부모의 “일본 뒈져라!”라는 외침은 살의를 담은 표현이라기보다는 ‘못살겠다’는 표현이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문제는 못살겠다는 목소리는커녕 저임금 장시간 노동 환경 속에서 신음조차 낼 여유가 없는 보육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보육시설 부족 문제와 보육 노동자의 노동 조건의 양 측면 모두에서, 한국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외신을 통해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뒈져라!’라는 블로그 게시글과 이에 대한 ‘보육원 떨어진 거 바로 나다’라는 공감의 물결을 접한 한국의 수많은 미취학 아동 부모들은 속으로 이렇게 외쳤을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도 뒈져라!”


한편,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의 ‘보육교사 인권 상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육교사 월평균 임금은 112만 원, 일일 평균 노동 시간은 9.6시간이었다. 일본에 비해 상황의 심각성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보육 노동자의 정식 명칭이 ‘보육사’인데 반해, 한국에서는 ‘보육교사’이다. ‘교사’에 걸맞은 대우는 전무하면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높은 노동 강도를 견딜 것을 강요하는 데 ‘교사’라는  이미지가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한국의 미취학 아동 부모들이 ‘보육교사 처우 개선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국회 앞으로 나서서 일본에서의 ‘바로 나다’ 운동에 화답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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