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를 통해 본 최근 일본의 노동 문제 1-‘원조’ 과로사회의 블랙 아르바이트

by 센터 posted Dec 0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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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직수 센터 정책위원



블랙 아르바이트


이제는 ‘블랙기업’이라는 용어가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블랙기업이란     ‘법에 어긋나는 조건의 비합리적인 노동을 젊은 직원에게 의도적, 자의적으로 강요하는 기업 혹은 노동 착취가 일상적,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기업’을 말한다.1) 이처럼 2000년대 후반부터 일본에서 확산된 블랙기업에 대한 문제의식은 한국에서도 공감을 얻어 올해 초 청년유니온이 독자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한국형 블랙기업 지표’를 개발하여 내놓기도 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일본에서는 ‘블랙바이트(블랙 아르바이트)’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고 있다. 열악한 아르바이트 일자리의 노동 현실로 인해 수많은 학생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본업인 학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문제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다.


지난해 7월 일본의 연구자, 법률가, 노동 단체 등이 공동으로 전국 27개 대학의 학생 3,59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 중 70퍼센트 이상이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고 있고,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고 있는 대학생 중 40퍼센트 이상이 심야 노동을 하고 있으며, 수면부족 등으로 인해 학업에 지장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정을 넘긴 시간에 근무하는 학생들 가운데 약 20퍼센트는 종종 수업에 결석한다고 응답했고, 주당 20시간 이상 일하는 학생이 전체의 30퍼센트 수준으로,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학자금 대출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일하는 시간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블랙 아르바이트가 소수의 예외적인 사례에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블랙 아르바이트는 소매업이나 음식점업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있는데, 최근 들어 이들 업종 외에 사교육 부문에서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블랙 아르바이트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는 고용 계약서를 작성·교부하지 않는 반면,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들이 담긴 취업규칙 ‘서약서’에 서명하게 한다든가, 애초의 계약과는 다른 근무 일정을 강요하거나 부득이한 상황에서도 근무 일정 변경을 허용하지 않는 것, 적절한 휴식 없이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며 최저 임금에 미달하는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지난 5월 아사히신문이 조사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근무 일정과 노동 시간 문제가 있다. 주로 학업에 관련된 이유로 교대근무 일정 변경을 요청해도 일손 부족 등의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교대근무 일정 변경을 최소 1개월 전에 신청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으며, 취업 시 연말연시 등 연휴 기간에도 최소 2일 이상 근무하지 않으면 해고당한다는 내용의 서약을 강요하는 사례도 있다.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주당 20시간 이상 일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별도의 수당 없이 심야에 근무하거나 휴식 없이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근무 외 시간에 출근하여 매장 관리 업무를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다음으로 무엇보다 문제시 되었던 것이 편의점 등의 소매점에서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계절상품이나 기획상품의 무리한 판매 목표 할당량을 부과하고, 이로 인해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자비로 상품을 구매하게 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 반성문 작성을 강요받거나, 벌칙으로 근무 외 시간에 청소 등을 무급으로 강요당한 사례도 있다. 근무복 구매 비용을 급여로부터 공제하는 경우도 있다.


그밖에도 많은 경우 고용 계약서를 작성·교부하지 않으며, 타임카드는 찍도록 하면서 급여명세서는 교부하지 않는 경우, 채용 시 시험 기간 및 연휴 기간에도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강요하는 경우, 고용 계약 시 교대근무 일정을 모호하게 정하고 이를 악용하는 경우 등이 있다. 별도의 서약서를 통해 근무 일정 변경이나 결근 시 위약금을 부과하거나, 실수에 따른 손해를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배상하도록 규정하는 일도 적지 않다.


물론 일본에서도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세 자영업자들의 현실이 녹록지 않은 측면도 있다. 대표적으로 편의점만 하더라도 체인 본부 측이 지역별 성적표를 바탕으로 판매 실적이 부진한 점포의 업주에게 직원 관리 강화 등을 요구한다. 물론 대부분의 업주들이 본부 측으로부터의 판매 할당량 지시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있으나, 본부 측이 업주와의 프랜차이즈 계약을 중단할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장시간 노동 강요는 물론, 업주 자신도 자비로 상품을 구입하고,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할당량을 부과하는 등 이른바 ‘자폭영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밖에 음식점업 등에서는 경영자가 최저 임금을 비롯한 법규를 잘 모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많은 학생들이 블랙 아르바이트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법적으로는 아르바이트의 경우에도 잔업수당 등이 적용되며, 일방적인 해고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자기 부담으로 상품 구매를 강요하는 것은 노동기준법 위반임은 물론 형사처벌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블랙’ 아르바이트인지 여부를 판별하기도 어렵고, 그만둘 경우 동료에게 부담이 전가될 것을 우려해 쉽게 그만두지도 못한다. 무엇보다 전 사회적인 가계 소득 감소·정체 속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학자금 대출과 아르바이트 임금 소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 나아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얻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저축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학생들의 수입(용돈 포함) 대비 저축 비율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밖에도 영세 자영업자들의 열악한 경영 상황으로 인해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사실상 정규직의 역할을 하고 있어 업주에 의한 자발적인 개선은 더더욱 어렵다.


반면, 공식적·제도적 대응은 아직 소극적이고 미미한 수준이다. 최근 들어 후생노동성이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구할 때 노동 조건을 확인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거나, 수도권 지역의 일부 대학들에서 대학 당국이 학생들에게 블랙 아르바이트에 주의할 것을 당부하는 안내문을 발송하기도 하였다. 그밖에도 대학들이 학생취업센터를 마련하고 학내 업무지원 일자리를 소개하는 학내 아르바이트(한국의 ‘근로장학생’ 제도에 해당)를 확대하는 추세이다. 문부과학성도 2013년부터 학내 아르바이트에 지원금을 제공하는 제도를 도입하였고, 해마다 지원금 예산 규모를 늘려가고 있다. 그러나 고작 이러한 수준의 대응으로 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당사자들이 나서지 않는 한 문제는 반복될 것이 분명하다. 이에 당사자들이 적극적이고 조직적으로 대응할 것을 강조하며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해 독립 노동 단체 포세(posse)의 주도로 설립된 ‘블랙 아르바이트 유니온’이 대표적이다. 물론 기존에 활동하고 있던 수도권 청년유니온 등도 블랙 아르바이트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으나, 이들은 블랙 아르바이트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대학생들을 주로 가입대상으로 하여 상담, 교섭지원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과로사회의 풍경들


한국은 명실공히 장시간 노동이 일반화된 ‘과로사회’2)이지만, 장시간 노동 관행의 선배격인 일본 역시 이에 뒤지지 않는다. OECD를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의 통계치를 보면, 일본은 한국에 비해 연간 평균 노동 시간이 낮은 편이고, 또 최근 들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그러나 일본사회에 만연한 ‘서비스 잔업’ 관행을 이해한다면, 일본이 ‘원조’ 과로사회임을 부정할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과로사와 과로자살, 그 배경에 놓인 ‘이름뿐인 관리직’, 정신질환 산재의 증가, ‘재택잔업’ 등은 오늘날 과로사회 일본의 풍경을 이루는 주요 요소들이다.


이름뿐인 관리직


이름뿐인 관리직이란 충분한 권한과 대우를 부여받지 못한 노동자가 노동기준법상 ‘관리감독자’로 취급받으며 잔업 수당도 지급받지 못한 채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현상을 배경으로 등장한 용어다. 통상적으로 일본에서 관리감독자 여부의 인정 기준은 경영자와 동일한 입장에 있을 것, 노동 시간의 재량을 지닐 것, 일반 노동자들에 비해 임금 수준이 높을 것 등이다. 물론 노동기준법상 관리감독자도 밤 10시부터 익일 새벽 5시 사이의 심야 업무에 대해 할증 임금 청구권을 지니며, 유급 휴가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한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점장이 ‘관리직’이라는 이유로 잔업 수당을 지급받지 못해 소송을 제기하고 이에 승소하면서 일본사회 내에 ‘이름뿐인 관리직’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되었다. 최근까지도 유명 의류 소매업체 및 외식업체 등이 ‘이름뿐인 관리직’을 운영하고 있음이 밝혀지며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자들 사이에도 확산되어 있는 장시간 노동 관행에 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예컨대 과장으로 승진 후 월평균 140시간에 달하는 잔업에 시달리다 과로사한 소매 체인점 노동자가 산재 인정을 받은 사례가 있으며, 기본급에 고정 잔업 수당을 더한 정액급여를 받으면서 월평균 150시간에 이르는 잔업을 계속하다 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있다. 반면, 기존의 ‘서비스 잔업’ 노동 관행이 지속되는 가운데, 아베 정권은 노동 시간이 아닌 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올해 국회에서 통과되지는 못하였지만, 이른바 ‘잔업 수당 제로’ 제도가 신설되고 재량노동제가 확장되면 이름뿐인 관리직은 더욱 확산될 수도 있다. 적절한 권한이나 보상 없이 책임만이 약자에게 하향 부과되는 관행이 전사회적으로 횡행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이다.


정신질환 산재의 증가


일본 후생노동성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14년 한 해 동안 업무 스트레스 등에 따른 정신질환으로 산업 재해를 인정받은 건수가 497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정신질환 산재 신청 건수 또한 1,456건으로 1983년 이래 최고치로 나타났으며, 산재 인정을 받은 이들 중 자살하거나 자살 시도를 한 사람 역시 99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문제는 산재 보상을 신청하거나 인정받는 경우가 여전히 소수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3년 후생노동성의 국민생활기초조사 결과에 따르면, 15세 이상 취업자 가운데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으로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이 약 83만 명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정신질환 산재의 증가 배경에는 장시간 노동이 있다. 정신질환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이들의 40퍼센트가량이 과로사 인정 기준인 월 80시간 이상의 시간 외 노동을 하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으며, 뇌심혈관질환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이들의 90퍼센트가 월 80시간 이상의 시간 외 노동을 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지난해 과로사방지법이 만들어지면서 과로사 산재 보상 신청 사건에 대한 조사 강화, 과로 관련 정신건강 상담 지원 등의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정작 장시간 노동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응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재택잔업의 만연


일본에서는 지난 2011년 22세의 한 영어학원 강사가 장시간 노동에 따른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건이 올해 5월 산재로 인정받는 일이 있었다. 장시간 노동의 핵심에는 퇴근 후 집에서도 교재 및 보조교재를 만드는 등의 ‘재택잔업’이 있었다. 물론 재택잔업 문제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 2008년 도쿄도의 도내 직장인 대상 표본 조사 결과에서도 응답자들의 23.3퍼센트가 ‘재택잔업이 많다’고 응답하였으며, 특히 교육 및 학습 지원업 부문의 경우 35.9퍼센트가 재택잔업으로 인한 고충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한편, 자살한 영어학원 노동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 동료에게 ‘집에 돌아가도 전력으로 일하지 않으면 안 되어 괴롭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기준감독서의 조사에 따르면, 이 노동자의 월간 잔업 시간은 111시간가량이었는데, 이 가운데 82시간이 퇴근 후 자택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 동일한 사건이 한국에서 제기되었을 경우 그 결과가 어떠할지는 제쳐 두더라도, 재택잔업에 대한 문제제기가 과연 한국사회에서 문제로 받아들여지기나 할 것인지 상상해보고 있자니 아찔해질 따름이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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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곤노 하루키, 이용택 옮김. 2013, 『블랙기업』, 레디셋고. 12쪽.

2)    김영선. 2013, 『과로사회』, 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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