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547
핵파국 시대, 평화주의의 선택
I. 핵파국 시대의 개막
1) 53체제와 6자회담의 효력정지
북한 핵실험으로 인해, 한반도 위기관리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던 정전협정체제(53체제)는 실질적으로 무력화되었다. 그러나 53체제의 무력화는 이번 핵실험과 더불어 시작된 일이 아니고, 북핵 국면 제1기부터 진행된 오랜 과정의 최종적인 확인일 뿐이다. 김영삼 정권의 ‘잃어버린 5년’을 경과하면서 북핵문제는 격화되었고, 불안정한 북미관계 속에서 북핵문제는 점점 더 판돈을 키워나갔다. 핵문제는 한반도 정치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기에 한반도전쟁을 억제하는 53체제로는 북핵문제의 해결이 원래부터 요원하였고, 지난 10여년의 한반도 위기관리는 동북아 위기관리로, 세계 군사정치의 위기관리로 문제해결의 주체와 대상영역을 확장시켜왔다.
근년에 다자간의 협상테이블인 6자회담이 53체제를 보완해 왔지만, 6자회담은 이미 뾰족해질 대로 뾰족해진 송곳날을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헐거운 옷이었을 뿐이다. 53체제가 그 본연의 목표인 평화체제로의 이행을 반세기나 지연시키면서도 위기를 은닉할 수 있었던 반면, 6자회담은 더 이상 지연될 수 없는 과제를 떠안은 최후의 담판이었다. 이제 북한 핵실험을 통해 6자 회담은 재개 자체가 불투명한 정국으로 접어들었다. 북한은 핵실험이라는 파국 선언을 통해, 인내와 지연이 불가능한 문제를 세계 전체에 던져 놓았다. 그리고 우리 앞에 더 이상 제도와 합의에 의해 관리될 수 없는 위기, 대파국의 가능성이 엄존하는 위기가 불현듯 다가왔다. 위기와 파국, 그것은 늘 잠재해 있는 것이지만 어떤 시점에서는 마치 순식간에 다가온 듯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다.
2) 평화주의자의 입장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현금의 논의들은 위기를 발생시켜오고, 심화시켜온 상투어들로 가득하다. 낡은 진영론적 세계관에 기반한 채 여전히 북한과 미국 각각에 이념적 고향을 지니는 이들은 반미자주와 한미동맹이라는 무책임한 선동 속에 매몰되어 있으며, 이미 이라크 참전을 통해 평화주의라는 고향을 잃어버린 현 정권은 오래 전부터 실용주의를 택했지만 그 실용주의마저 파국의 예측불가능성 앞에서 쩔쩔 매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현 상황에서 평화주의와 핵무기 비확산은 같은 말일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의미일 수도 있다. 특히 현 시점에서 북한 핵무기의 폐기, 곧 비확산의 방법이 무엇인가의 문제에서 그렇다. 평화주의는 비확산을 위한 무력 제재에 대한 반대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평화주의자의 현실적 개입은 북한의 핵실험을 규탄하고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매우 원칙적인 천명 이상일 수 있는가? 조성된 현 정세와 국제적 핵정치의 맥락에서 그 이상의 개입을 적절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분석적 이해
I. 핵파국 시대의 개막
1) 53체제와 6자회담의 효력정지
북한 핵실험으로 인해, 한반도 위기관리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던 정전협정체제(53체제)는 실질적으로 무력화되었다. 그러나 53체제의 무력화는 이번 핵실험과 더불어 시작된 일이 아니고, 북핵 국면 제1기부터 진행된 오랜 과정의 최종적인 확인일 뿐이다. 김영삼 정권의 ‘잃어버린 5년’을 경과하면서 북핵문제는 격화되었고, 불안정한 북미관계 속에서 북핵문제는 점점 더 판돈을 키워나갔다. 핵문제는 한반도 정치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기에 한반도전쟁을 억제하는 53체제로는 북핵문제의 해결이 원래부터 요원하였고, 지난 10여년의 한반도 위기관리는 동북아 위기관리로, 세계 군사정치의 위기관리로 문제해결의 주체와 대상영역을 확장시켜왔다.
근년에 다자간의 협상테이블인 6자회담이 53체제를 보완해 왔지만, 6자회담은 이미 뾰족해질 대로 뾰족해진 송곳날을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헐거운 옷이었을 뿐이다. 53체제가 그 본연의 목표인 평화체제로의 이행을 반세기나 지연시키면서도 위기를 은닉할 수 있었던 반면, 6자회담은 더 이상 지연될 수 없는 과제를 떠안은 최후의 담판이었다. 이제 북한 핵실험을 통해 6자 회담은 재개 자체가 불투명한 정국으로 접어들었다. 북한은 핵실험이라는 파국 선언을 통해, 인내와 지연이 불가능한 문제를 세계 전체에 던져 놓았다. 그리고 우리 앞에 더 이상 제도와 합의에 의해 관리될 수 없는 위기, 대파국의 가능성이 엄존하는 위기가 불현듯 다가왔다. 위기와 파국, 그것은 늘 잠재해 있는 것이지만 어떤 시점에서는 마치 순식간에 다가온 듯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다.
2) 평화주의자의 입장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현금의 논의들은 위기를 발생시켜오고, 심화시켜온 상투어들로 가득하다. 낡은 진영론적 세계관에 기반한 채 여전히 북한과 미국 각각에 이념적 고향을 지니는 이들은 반미자주와 한미동맹이라는 무책임한 선동 속에 매몰되어 있으며, 이미 이라크 참전을 통해 평화주의라는 고향을 잃어버린 현 정권은 오래 전부터 실용주의를 택했지만 그 실용주의마저 파국의 예측불가능성 앞에서 쩔쩔 매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현 상황에서 평화주의와 핵무기 비확산은 같은 말일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의미일 수도 있다. 특히 현 시점에서 북한 핵무기의 폐기, 곧 비확산의 방법이 무엇인가의 문제에서 그렇다. 평화주의는 비확산을 위한 무력 제재에 대한 반대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평화주의자의 현실적 개입은 북한의 핵실험을 규탄하고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매우 원칙적인 천명 이상일 수 있는가? 조성된 현 정세와 국제적 핵정치의 맥락에서 그 이상의 개입을 적절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분석적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