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위험의 외주화, 이제는 끊어야 한다.
- 죽음의 일터에서 또 스러져간 청년하청노동자 故 김태규 씨를 애도하며
작년 말 김용균 씨의 비극이 채 잊히지도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개정안이 통과된 게 엊그제 같다. 그런데 또 다시 한 비정규직 청년이 목숨을 잃었다. 2019년 4월 10일 수요일, 경기도 수원의 한 공사현장에서 김태규 씨가 화물용 엘리베이터에서 떨어져 운명을 달리 했다. 일상이 되어버린 ‘위험의 외주화’가 비정규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죽음의 외주화‘로 치닫고 있다.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피를 토하며 외쳐 국회에서 법이 개정되어도 불행한 과거는 되풀이되고 있는 답답하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역시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고된 일에 지치면 피곤함을 느낀다. 혼자서 두 명 분의 일을 할 수 없고, 특별히 운이 좋아 위험을 피해갈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보고 초인이 되라고 한다.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우리 사회가 배설한 위험을 모두 지길 원하는 것이다. 당연히 불가능한 요구다. 그래서 오늘도 일터에서는 억울한 죽음이 끊이질 않는다. 더 이상 비정규직 노동자가 초인이 되길 기대해서는 안 된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는 모든 노동자가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인 권리다.
바뀌지 않는 열악한 노동현실이 청년하청노동자 김태규 씨를 죽였다. 그는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축 폐기물을 옮기는 작업을 하다가 엘리베이터와 건물 외벽 사이의 공간으로 떨어졌다. 함께 일을 했던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태규 씨가 일을 할 때 승강기 문이 열려 있었다고 한다. 경찰 역시 승강기 문이 열려 있지 않았다면 사람이 떨어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모, 안전화, 안전벨트와 같은 기본적인 안전장비 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 사전 안전교육 역시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 누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겠는가?
김태규 씨의 죽음은 단순한 실족사라고 보기 힘들다. 승강기 문이 개방되어 있었는지, 안전장비 지급 상황은 어땠는지, 화물용 엘리베이터 사용이 적법했는지 철저하게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 조속히 업체 측의 과실을 밝혀 책임자를 엄하게 처벌함이 마땅하다. 산안법 개정이 생색내기로 그치지 않으려면, 법이 잘 집행되는지 끝까지 살펴봐야 한다. 제도를 운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저번 산안법 개정에서 부족했던 점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산재 사망에 대한 벌칙 하한형 및 징벌적 손해배상, 유해위험/생명안전 업무 도급 금지 등이 그 대상이다. 산재 사망 시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사용자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안정 규정을 준수할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살인기업법) 제정이 꼭 필요한 이유다. 무엇보다 위험 업무를 도급 업체에 떠넘기는 것을 계속해서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함께 어깨 걸고 연대할 것이다.
삼가 깊이 머리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19. 04. 24
한국비정규노동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