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조선소 노동자들을 응원한다

by 센터 posted Jun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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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길 센터 상임활동가



2019523,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크워크(이하 한비네) 활동가들과 함께 거제도 옥포조선소를 방문했다. 조선소 견학 안내를 맡은 가이드는 버스 좌우 창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나는 적이 놀랐다. 조선소의 거대함에 완전히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거대했다. 모듈과 그것들이 합쳐진 플랜트, 공장 내부 구조물인 해양의장, 선박 껍데기를 이루는 블록, 블록을 운송하는 트랜스포터, 그리고 이름만으로도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골리앗 크레인까지. 나는 마치 소인족이 걸리버가 사는 나라를 관광하듯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대우조선-전경.jpg

거대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견학이 끝나고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우조선지회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은 한비네 활동가들로 발 디딜 곳 없이 붐볐다. 조합원으로부터 대우조선 매각 현황에 대해 간략하게 들었다. 지난 130, 대우조선이 현대중공업에 매각된다는 언론 보도가 최초로 터졌다. 노조는 다음날 곧바로 매각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219일에는 매각 반대 쟁의행위 찬반투표 임시총회를 했고, 찬성률 92.16퍼센트로 가결됐다. 하지만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은 노조 반대를 무시한 채 38일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거제도를 방문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난 시점인 531일 현대중공업 주주총회에서 대우조선 인수 전 단계라고 볼 수 있는 현대중공업 물적분할안이 통과됐다


물적분할이 이루어지면 현대중공업은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과 자회사인 현대중공업으로 나뉘게 된다. 현대중공업 이외에도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이 자회사로 더해진다. 여기에 대우조선까지 인수 완료되면 한국조선해양 밑에 총 4개 자회사가 놓이게 되는 것이다. 현대중공업노조는 존속법인과 신설법인 간 자산, 부채가 불균등하게 분배되고, 중간지주회사가 서울에 터를 잡으면서 울산의 세수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대우조선지회는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하면 거제와 경남 조선 산업 벨트가 붕괴될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현대중공업은 중간 부품을 대부분 자회사를 통해 공급받기에 지역 중소업체의 경우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기업 재편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희생될 우려도 크다. 전 세계 1, 2위 조선소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이 합치면 거대 조선소가 생겨난다. 저가 경쟁이 완화되면서 독점으로 인한 이익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중복사업을 정리하면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두 조선사는 특수선, 상선, 해양플랜트 건조 사업 영역이 겹친다. 설계, 영업, 연구, 사업 관리 노동자들 중 일부는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대중공업이 물적분할될 때 기존 단체협약이 온전히 승계될지도 의문이다. 사측은 노동 조건을 승계하겠다고만 말할 뿐 단체협약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설명을 마친 조합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 순간 내가 어디에 왔는지 실감났다. 뉴스를 통해 물적분할이니 인수합병이니 하는 말을 들었을 때는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버스를 타고 조선소를 견학할 때도 나와 조선소 사이에는 창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조선소의 거대함에 압도되어 놀라기 바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기계를 움직여 거대한 선박을 건조하는 주체는 결국 노동자들이다. 그들의 억센 손이 모든 것의 시발점인 셈이다. 나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 사실을 노동자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에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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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네 활동가들이 대우조선 매각 관련 현황을 듣고 있다.


대우조선지회 간담회가 끝나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조선소 서문으로 향했다. 서문에서 밖으로 나가면 다리가 하나 보인다. 그 다리는 조선소를 둘러싸고 흐르는 조그만 하천 위에 놓여 있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민간 거주 지역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절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리 양옆에 노동자들이 서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조선하청노동조합 조합원들이었다. 그들은 시급 인상, 원청과 동일한 휴가, 성과급 지급, 하청 노동자 노동조합 활동 보장 등을 요구했다. 우리도 힘을 보태기 위해 현수막이나 피켓을 들고 다리 위에 섰다. 마이크를 든 조합원의 선창에 맞춰 힘껏 구호를 외쳤다. 햇빛이 쏟아지긴 했지만 아직 5월이어서인지 그다지 따갑지 않았다.


다리 위에서의 연대 투쟁이 끝나고 숙소로 향했다. 바닷가 기슭에 위치한 멋진 펜션이었다. 신선한 회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돼지고기를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얼큰하게 취기가 올랐다. 창밖을 바라보니 옥포만 건너로 환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옥포조선소였다. 주위가 어두워서 그랬을까, 유난히 밝아 보였다. 멀리서 바라본 조선소는 마치 환상세계 초입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아름다움은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을 상징할 뿐이다. 찰리 채플린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조선소와 펜션 사이 옥포만이 만들어낸 거리가 오후의 기억을 흐릿하게 지워버렸다


서울로 돌아와 투쟁 상황을 뉴스로 접했다. 결국 현대중공업 주주총회에서 물적분할안이 통과됐다. 국내외 기업결합심사를 무사히 넘기면 현대중공업의 기업 재편은 완성된다. 물론 변수는 아직 남아있다. 현대중공업지부는 이번 주주총회를 날치기로 규정했다. 총회 장소와 시간이 급작스럽게 변경돼 일부 주주들이 변경된 장소로 이동하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추후 주주총회 과정이 적법했는지에 대한 법원 판단을 지켜봐야 한다. 게다가 두 거대 조선소의 기업 결합은 독과점 논란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국내외 기업결합심사 통과를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긴 싸움이 될 것 같다. 정부는 최근 들어 기업의 구조조정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뿐만 아니라 택시와 승차공유 플랫폼 업체, 통신사와 케이블 방송 등의 산업 및 기업 재편이 전 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시대와 산업 구조 변화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분명 있겠지만, 이 소용돌이 속에서 노동자들이 겪을 고통은 너무나도 자명해 보인다. 자본의 욕심은 끝이 없다. 돈이 된다면 어느 곳이라도 침투할 것이다.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어는 연대다. 다행히 두 조선사 원·하청 노동자들은 힘을 합쳐 함께 투쟁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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