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첫 노동을 인간답게

by 센터 posted Nov 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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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아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위원장



사람은 제 발아래를 보며 산다. 그 발아래에 흙이 있는 사람은 흙만을 알고, 그 위에 꽃이 피어있는 사람은 꽃만을 아는 것이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면, 결국 같은 하늘 아래 서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텐데 그것이 쉽지 않다는 걸 우린 알고 있다. 2016년 구의역 김 군의 사망 사건이 있기 전 우리의 모습 또한 그랬다. 특성화고 출신, 고졸이라는 학력은 사회적으로 조금 부족한 대우를 받고 쉽게 잘리고 산업재해와 죽음을 납득해야 하는 근거가 되어왔다. 수십 년 동안 ‘인권’보다 우선시했던 ‘학력’의 존재 때문에 우리도 현실과 타협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부당함으로 영원히 사람을 누를 순 없는 법, 인내심에는 반드시 한계가 온다. 그의 뉴스와 함께 우리의 죽음도 함께 느꼈다. 2017년 콜센터와 제주도 음료회사, 2018년 이마트 무빙워크. 해가 지날수록 답은 명확해져갔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진흙탕이다. 여기서 나가야만 한다. 우린 고개를 들었다.

‘노동조합으로 모여 우리가 바꿔내자!’ 


2.특성화고1.jpg

2018년 5월 1일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설립 기자회견(@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조) 


5월 1일 노동절, 처음 보는 얼굴, 처음 입은 티셔츠, 처음 외쳐본 구호. 익숙한 것이라곤 TV와 기사로 접했던 사건의 이름들뿐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어색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믿겠는가? 초면인 사람들치고 우리는 말이 많았다. 입만 열면 지금까지 어떤 환경에서 지내왔는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대화거리가 끊이지 않고 나왔다. 그만큼 억울함이 쌓이고 또 쌓여왔기 때문이다. 너는 나다. 이 점이 ‘특성화고 졸업생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우릴 뭉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가운 만남을 시작으로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이 탄생했다.


만들어지는 과정이 터무니없이 짧아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눈으로 보이는 일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저 이미 준비된 과정 끝에 결합한 것일 뿐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약 10년 전, 최저임금이 4천 원이었을 때에도 청년실업 문제가 온 뉴스를 도배했다. 이때 소개되지 못했지만, 함께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던 계층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고졸 청년들이다. 실업률은 취업한 청년들로 통계를 낸다. 이 통계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경우는 아예 구직 자체에 실패한 경우이다. 대졸자 100명 중 50명이 상용직에 취직한다고 보면, 고졸자는 100명 중 단 20명만 상용직에 취직할 수 있다. 상용직들의 실업률을 계산하고자 하면 대졸자 50명과 고졸자 20명을 합한 수를 사용해야 한다. 무업자인 고졸들은 실업률에 끼지 못했다. 공공기관 구직공고를 보면 대졸자를 300명 뽑을 때 고졸자는 30명 뽑는다. 십분의 일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밤잠을 설친다. 그마저도 나라에서 고졸자가 달성할 수 있는 기술자격증은 대졸자와 맞먹지 못하게 법으로 막아놓았다. 취직하더라도 야간대학이라도 나와 무늬뿐인 학위를 가지고 있어야만 승진도 할 수 있다. 상용직에 들어가지 못해 비정규직으로 방향을 돌리면 노동조합도 없고 2인 1조 안전수칙도 미비하고 밥을 먹을 시간도, 잠을 잘 수 있는 시간도, 하물며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는 시간도 없다. 척박한 환경에서 근로기준법이니 사회니 하는 것들을 생각할 시간은 없다. 그저 최저임금도 못 미치고 이번 달에 전부 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인 월급을 위해 일한다. 고졸, 어이, 너, 일 못하는 것들, 무식해서 고졸인 것들. 이름 없이 불리는 것은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똑같다. 성희롱을 당했지만 잘릴까봐 입을 다물거나 능청스럽게 넘어간다. 같은 곳에서 일하는 대졸 알바생은 근무시간도, 내용도 다르지만 나랑 같은 임금을 받는다. 사람으로 만날 수도 있었던 같은 청년인 대졸과 고졸 노동자 사이는 학력의 벽이라는 사회 차별로 가로막혀 서로를 점점 미워할 수밖에 없게 된다.우리는 척박한 어른으로 자라난다.


2.특성화고2.jpg

구의역 2주기 추모문화제(@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조 )


이 밖에도 억울한 일들을 말하고자 하면 끊임없이 쏟아진다. 이 모든사건들이 우리가 모인 계기이자 과정이다. 만들자, 라고 했을 때 그러자,라고 대답할 준비는 이미 되어있었다.

만들고 나서 가장 많이 했던 일은 언론을 타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전국 단위 노조이고, 우리를 물 위로 올려서 모두가 ‘문제’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게 가장 급했다. 위원장으로 선출되자마자 인터뷰, 인터뷰, 또 인터뷰. 멀리 나가야 할 때도 있었고 퇴근 후에 피곤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만 했다. 사람답게 살자.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으니까. 내가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세상에 살자.



지금은 조직도 점검하고 더 많은 조합원들과 뜻을 함께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매년 세상에 나오는 고졸 노동자는 끊이지 않고, 죽는 노동자들도 끊이지 않는다. 세상이 하루아침에 뒤집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적어도 멈추진 않도록 꾸준히 발걸음을 옮겨야 하지 않겠는가.외롭지는 않은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고 함께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믿는다.

오늘도 하루를 살며 세상에 외치는 한마디.

“우리의 첫 노동을 인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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