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중지는 어렵고, 직장 폐쇄는 쉬운 세상

by 센터 posted Aug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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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미원화학지회


희정 기록노동자, 《노동자 쓰러지다》 저자




지난 8월 10일 미원화학 울산공장 황산 생산 공정에서 가스가 누출됐다.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노조는 설비 점검을 위해 가동 중지를 요구한다. 그러나 회사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이에 노조는 고용노동부에 누출 사고를 제보한다. 다음날 노동부는 해당 현장에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 소식을 듣게 된 건 언론 기사로부터가 아니었다. 노동조합의 기자회견문을 통해서였다. 사고가 있은 지 3일이 지났고, 임금 단체 협상에 난항을 겪던 미원화학 노동조합이 9일차 부분파업을 하던 날이었다. 회사는 그날 오전 직장 폐쇄 공고를 내걸었다. 노동조합은 기자회견을 열어 교섭 요구에 직장 폐쇄로 답하는 사측의 탄압을 알렸다. 그곳에서 가스 누출 이야기도 듣게 됐다.

가스 누출이라. 다음날 열린 집중집회에 찾아가 물었다. 가스 누출 사고가 잦은 일이냐고. “엄청 잦죠.”  “그럼 어떻게 하나요?” “위험하죠. 냄새도 나고. 그래도 회사는 공정을 안 멈추고 버틸 만큼 버텨요. 항상 그런 식이에요.” 6개월 차 신생 노조 간부가 답한다. 미원화학지회는 올해 2월에 설립됐다.   


집회.jpg

8월 14일, 미원화학지회 직장폐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집중집회가 열렸다.


숫자로 말하는 기업


미원화학은 무얼 제조하는 공장인가. 정보를 찾는데 인터넷만한 것이 없다. 미원화학을 검색하니 실적과 매출액, 영업이익, 주가 등 숫자들이 화면을 채운다. 기업은 숫자로 말한다. 미원화학은 계면활성제, 분황, 황산 등을 제조하는 회사였다. 최근 소식으로 가니 ‘노사 갈등’, ‘노사 분규 몸살’이라 적힌 기사 제목이 뜬다. 기업은 숫자로 말하고, 노동조합은 갈등과 분규로 적히는 세상에서 정작 가스 누출 소식은 들을 수 없다. 


언론에 나오지 않는 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어디 한두 개인가. 울산 내 규모 있는 산업단지만 다섯 곳. 대부분 70년대에 신설됐고, 그 안에는 삼사십 년 된 노후 배관이 수두룩하다. 느슨해진 밸브와 용접 부위에서 가스가 새어나오기 좋은 환경이다. 그걸 증명하듯 울산시 자료에 따르면 울산국가산단 내 화학물질 관련 폭발, 화재 등 사고만 매해 40여 건에 이른다.


올해 5월에도 29명의 부상자를 만들어낸 대형사고가 울산에서 있었다. 한화케미칼 염소가스 누출 사고. 호스 금속망 부식이 원인이라고 했다. 한화케미칼은 2015년에도 폭발 사고로 6명을 숨지게 했다. 미원화학에서 유해 가스가 누출된 같은 달 8월에는 울산 한 업체에서 황산액 65톤이 1시간여 동안 흘러내렸다. 


기업은 자체적으로 설비를 관리한다고 하지만, 무의미한 이야기다. 그에 따른 엄격한 감시 감독과 위반에 따른 중한 처벌이 없다면 말이다. 기업의 설비 보수 예산은 해를 거듭할수록 감소하고, 정기 보수 기간은 연장되어 왔다. 개보수 업무가 하청으로 외주화되는 건 전반적인 추세다. 설비 보수에 돈을 쓰지 않는다. 안전을 위해 이익을 멈추지 않는다. 미원화학도 마찬가지였다. 


급박함을 판단할 권리


“(사고가 난) 생산2팀 1공장 같은 경우는 생긴 지 40년이 되다 보니까 사고가 자주 나요. 용접 부위가 노후되거나 해서 사고가 나는 경우가 잦죠. 그날 7시 30분경에 누출 소식을 듣고, 반장에게 지금 가스가 누출되고 있다고 보고해달라 했더니. 보고를 50분경에 한 거예요. 공정을 계속 가동하고 있더라고요. 조합원이 안에서 계속 유해 가스를 맡고 일하고 있고. 다섯 번 정도 찾아가 중지하고 점검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니까, 안전관리팀장이 마음대로 해라 라는 식으로 답을 했어요. 회사는 공정을 계속 돌리려고 한다는 느낌이 왔어요. 그래서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한 거죠.”


권도형 지회장은 말했다. 다섯 차례나 조치를 요구하고 고용노동부에 신고까지 감행한 것은 그가 지회장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정확히는 노동조합이기에 가능했다. 반면 미원화학 입장에선 노동조합이 있어 피곤해져 버렸다. 그전까지의 “버틸 때까지 버텨요”가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노동조합이 했다는 그 피곤한 일은 안전매뉴얼대로의 실행일 뿐이다. 실은 회사와 관리자가 해야 할 일, 누출사고 시 사고 현장에서 작업자를 대피시키고, 점검을 위해 작업을 멈추고, 해당 관할 관공서에 보고하는 일 말이다. 현실에선 잘 지켜지지 않는 매뉴얼이다. 관리자가 하지 않는 것을 일개 노동자가 할 순 없다. 


위험 앞에서도 노동자는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없다. 자신의 노동을 통제할 수 없다. 그나마 법이 정한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은 산재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다. 급박해야 한다. 그런데 그 급박함마저 판단은 노동자의 몫이 아닌 듯하다. 미원화학 경우처럼 유해 가스가 누출된 와중에도 작업 중지 요구는 관리자들의 무시로 돌아온다.


공고.jpg

울산공장 정문에 부착된 직장 폐쇄 공고문


너희는 일만 해라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기 이렇게 힘든 반면, 직장 폐쇄는 너무 쉽다. 직장 폐쇄란, 사업주가 노동조합의 쟁의 행위에 대항해 노동을 일시적으로 거부하는 행위다. 신고만으로 가능하다. 노동위원회가 직장 폐쇄 요건을 후속 심사한다고 하나, 글쎄다. 나중에 위반 사실이 밝혀져도 회사에는 손해 배상 책임조차 없다. 그사이 대체인력이 공장을 돌린다. 노동자들은 생계 곤란을 겪게 된다. 미원화학 또한 저 멀리 탄천공장에서 온 대체인력과 비조합원들에 의해 가동되고 있었다. 


비조합원들은 대부분 관리자 인맥을 통해 입사한 이들이라 했다. 2년 전부터 공개채용이 줄고, 인맥채용이 성행했다. 2년 전, 노동조합 설립 시도가 있은 후였다. 시도는 실패했다. 회사의 변화는 채용에만 있지 않았다. 전문 노무관리팀이 들어왔다. 덕분에 현장 통제는 엄격해지고, 업무 강도는 늘었다. 연차휴가는커녕 상조휴가조차 눈치를 봐야 했다. 부모가 편찮으셔서 휴가를 낸다 해도 “어머니가 아픈데 네가 왜 쉬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임금이 동결됐다.

“회사 입장은 소리 내지 말고, 너희는 일만 해라. 노사위원회가 있었고 저도 들어갔지만, 말할 수가 없는 조건입니다. 안건이 통과되려면 규정상 2/3 이상 동의해야 한다는데. 과반투표조차 한번 한 적이 없어요. 우리는 무조건 동의해야 하는 겁니다.”

이수완 부지회장의 말이다. 첫 실패 후 2년이 지나, 올해 초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인공지능과 4차혁명을 말하는 첨단의 시대에도, 촛불집회로 정권을 바꿨다는 시대에도,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은 정규직·남성·중소업체 사업장에서조차 쉽지 않았다. 


승리를 바란다


노조를 세웠다고 고난이 끝난 건 아니다. 미원화학지회는 첫 임금 단체 협상부터 난항을 겪었다. 4개월 동안 18차례의 교섭이 있었으나 결국 직장 폐쇄로 귀결됐다. 부분파업에 직장 폐쇄로 대응한다? 상식적인 대응은 아니나, 회사의 노조 탄압에 늘 이유가 있다. 숫자로 말하는 기업은 탄압에도 역시 숫자를 붙인다. 불황, 이익 매출 감소, 경영 위기. 그 숫자들은 유해 가스가 누출되는 순간에도 노동자를 일 시킨다. 공장을 가동시킨다. 


그 숫자들이 만든 세상에선 사업주의 직장 폐쇄는 너무 쉽고,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행사는 너무 어렵다. 안전과는 거리가 먼 세상이다. 그렇기에 내 한 몸 다칠 위험,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 신생노조 투쟁의 승리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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