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캐논코리아 정규직 노동자였다

by 센터 posted Apr 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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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령  유천산업 노사협의회 노측위원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주)은 안산 반월공단에서 복합기를 생산하는 곳이다. 2013년 시화멀티테크노밸리(MTV)에 입주, 2015년도에는 세 개 사내하청에 인원 감축을 지시해서 270여 명 가운데 120여 명만 남겼다. 그리고 2018년 3월 현재 네 개 사내하청에서 1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2017년 캐논코리아는 사내하청인 유천산업 노동자 10여 명을 감축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유천산업 노측 위원들은 고용안정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실, 뉴스타파,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경향신문 등 여러 경로로 도움을 요청하던 가운데 유천산업 사장이 17여 년 동안의 퇴직금을 적립해오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용불안과 퇴직금 문제까지 겹치자 유천산업 노동자 41명은 2017년 12월 1일, 고용노동부에 불법파견 진정을 넣었다. 캐논코리아와 유천산업 간에 노동조합을 만들면 계약이 해지되는 ‘입주자 준수 규정서’도 증언했다. 2018년 2월 21일 고용노동부는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주)이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을 위반했다고 판단돼 3월 30일까지 직접 고용할 것’을 시정 지시하고, 입주자 준수 규정서에 대해서는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 제4호에 위배되지 않도록 개정토록 시정 지시한다’는 진정 사건 결과를 통보했다. 유천산업 노측위원은 고용노동부 판결 결과를 받고, 2018년 3월 6일 캐논코리아 김천주 사장에게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를 즉각 이행하고, 공식적인 대화의 장을 마련해달라는 내용등기를 보냈다. 그러자 캐논코리아는 “고용노동부의 이행을 검토 중이며 공식 설명회 일정은 공고 등을 통해 공지한다”고만 답변하고, 노사 간 합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유천산업 노동자들은 안산시청 대회의실에 모여 유천산업 불법파견 진정 결과 설명회를 진행했다. 다른 사내하청에서도 설명회를 열어 유천산업이 불법파견 진정을 넣은 계기와 결과, 그리고 다른 하청들 역시 불법파견이었음을 인지시키고 불법파견 증거를 모아 유천산업처럼 행동하길 독려했다. 


1.4월2일 고용노동부 면담.jpg

지난 4월 2일 고용노동부 면담


3월 13일 유천산업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다같이 Canon 정규직으로 가즈아아~~’ 스티커를 어깨나 등에 붙이고 일했다. 3일 뒤에는 모든 사내하청이 스티커를 붙였다. 우리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소규모 사내하청 사업장 현장 노동자들은 그 누구도 관리직에게 한마디 해볼 생각조차 못하고 살아왔다. 잘리고, 협박당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유천산업과 함께하지 말라는 협박을 견디면서도 모든 사내하청이 스티커를 함께 붙인 것은 정말 감동스러운 장면이었다.


그 후 캐논코리아는 3월 20일 설명회를 진행했다. 설명회를 개최한다는 공지도 당일 아침에나 알렸다. 더군다나 설명회 진행도 개별 면담식이고 바로 근로 계약을 체결한다고 했다. 급히 심옥임, 박미령 노측위원들이 노동자들의 위임을 받아 개별 면담 대신 노사 간 협상 시간을 갖자며 찾아 올라갔다. 결국 개별 면담 대신 전체 설명회 자리를 만들었다. 캐논 측은 설명회 당일 밤 8시 안에 자회사인 엔젤위드 정규직을 선택하든, 캐논 1년 계약직을 선택하든,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하라고 종용했다. 그렇지 않으면 캐논 1년 계약직으로 간주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유천산업 사장은 퇴직금을 일부만 적립해서 없으니 나머지에 대해서는 자회사인 엔젤위드로 입사할 때에만 위로금 조로 일부 줄 것이라고 뻔뻔스럽게 말했다. 노동자들은 둘 다 직접고용은 아니라고 항의하고 설명회를 끝냈다. 캐논 측은 퇴근한 유천산업 노동자들에게 전화와 문자를 보내고, 다음날에는 캐논 관계자들이 퇴직금이 많이 걸려있는 세 명의 집까지 찾아와 다들 불안에 떨었다. 이에 항의를 했지만 무시당하고,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일하지 말고 개인적으로 판단해서 2층 사무실로 찾아와 계약서를 쓰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누구도 2층에 올라가는 사람이 없었다. 캐논 측은 개별면담을 포기하고, 유천산업 일부 노동자들에게 자회사로 안 가면 1년 계약직으로 채용된다는 말도 안 되는 내용등기를 3월 23일 보냈다.


사내하청인 지수산업 관리자는 지수산업 노동자들에게 2019년 1월 1일자로 자회사 엔젤위드로 갈 것이고 유천산업과 동조하면 해고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캐논 관계자는 또 다른 사내하청인 미소산업 노동자들에게 자회사 엔젤위드로 내년 또는 빠르면 올해 6월에 갈수 있다고 했다. 회사는 다르지만 고용 불안을 느끼며 직접고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똑같았다. 얼굴만 알던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회사 정보도 공유했다. 우리 모두가 캐논 안의 외부인처럼 살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3월 28일 캐논 측은 소방훈련을 하던 중 유천 노동자들이 위임한 대표들을 무시한 채 몰래 일방적으로 3월 30일 근로 계약을 체결하자는 정규직 공고를 붙였다. 우리는 다 같이 모여 고민을 많이 했고, 그 결과 3월 30일 조별 면담 시 ‘○○○ 정규직 동의합니다. 그 이하는 협의요청’이라고 적고 나왔다. 노동부 시정지시 마감일인 3월 30일이 지나 4월 2일 캐논으로 출근했는데 계약서의 일부 동의는 계약된 것이 아니라고 정문에서 저지당했다. 노동부 안산지청에 가서 안산지청장을 만나려 했으나 근로감독관만 만났고, 캐논에게 우리의 요구를 듣도록 협의 제안을 했다. 그 사이 캐논은 기업노조를 만들었다. 4월 3일과 5일 두 차례에 걸쳐 캐논과 유천 노동자 대표들과 협의를 했다. 그러나 고용 승계, 퇴직금 승계는 결렬되었다. 임금피크제는 입사 시 바로 적용하지 말아달라고 유천 대표들이 요구했다. 근로감독관이 노동부에 질의를 해서 1년 유예 결과가 나오면 따르겠냐고 했고, 캐논 관계자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신입채용 조건으로 정규직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또 남았다. 노측위원들이 유천산업에 퇴직금을 적립하도록 닦달한 결과 퇴직금 45퍼센트를 적립시켰는데 몇몇 동료들이 퇴직금을 모두 못 받게 되자 불만을 제기했다. 똘똘 뭉쳐 한마음으로 이겨냈던 지난날들을 잊고 그 분노는 노측위원들에게 향했다. 퇴직금을 0퍼센트에서 45퍼센트로 끌어올리고, 비록 사내하청과 임금 차이는 없지만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정규직이 되도록 애써왔던 공은 인정받지 못했다. 분노는 9명의 퇴사로 이어졌다. 다른 32명은 정규직이 되어 캐논으로 출근했다. 함께한다는 건 다른 게 아니다.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다. 그 결과를 같이 책임지는 것이 단결한다는 것이다. 그 단결의 힘은 결과가 어떻더라도 같이 책임져 주는 것이련만 위로금 몇 푼 더 받으려고, 보고자 하는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떠나간 동료들···. 같이 캐논으로 가는 32명 중에서도 내부의 분열을, 원망을 나는 느낀다. 부러움과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우리들의 행보를 지켜보는 지수, 미소, 신우ITS 사내하청 노동자들. 직접고용은 되었지만 캐논코리아가 우리를 정규직으로 잘 대우해줄리 만무하다. 하지만 난 정규직이 되어서도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내가 선택해서, 내가 노력해서 얻은 정규직이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이라고 하고 싶지 않다. 그들에게 진실로 원하면 노력해야 하고 그 힘든 과정 속에 스스로 발전해 왔음을 느끼며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진실로 행복한 노동을 할 수 있음을 알려 주고 싶다. 단순히 일만 하는 노동자가 아닌 스스로 삶을 주도하며 즐거이 노동하는 노동자, 정규직이 되고 싶었다. ‘다같이 Canon 정규직으로 가즈아아~~’ 스티커를 붙이고 서로를 바라봤던 그 눈빛들을 잊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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