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파트너스’가 아닌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by 센터 posted Jan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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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바게트 제빵기사 직접고용 문제
김세진  센터 상임활동가


문재인 정부는 전임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다르게 노동친화적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정말로 노동자를 위한 정책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앞선 두 정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현재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자신있게 내세웠던 ‘공공부문 81만 개 일자리 정책’은 보수야당과 관료들의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은 관료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특히 정규직 노동자와 노조가 ‘기회의 평등’을 외치며 크게 반발하면서 상당히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 취임한지 1년도 되지 않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은 벌써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 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자회견.jpg
2017년 11월 22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열린 파리바게뜨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제빵업계의 암울한 뒷모습

이러한 노동 정책의 시도와 기득권의 저항은 공공부문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민간부문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민간부문은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그러한 바람을 잠재우고 넘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올라가자, 많은 회사들은 이미 인력을 감축하고 무인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하며, 자유롭게 간접고용과 특수고용으로 인력을 이용했던 민간부문은 어떻게 그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고용노동부는 9월 15일에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에게 8개 파견업체가 고용하고 있는 파리바게뜨 제빵·카페기사 5,378명에 대해 파리바게뜨 본사에서 직접고용할 것을 지시했다. 이 점은 두 가지 면에서 주목되는데, 첫 번째는 정부가 10월에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특수고용직의 노동권 보장과 더불어 간접고용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그동안 비교적 손대기 쉬운 공공부문에 국한되어 있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상존하고 있는 민간부문에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파리바게뜨는 동네에 없는 곳이 없을 만큼 명실상부한 한국 1위의 제빵업체이다. 그만큼 시민들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고 시민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많은 시민들은 제빵기사들이 가맹점주에게 고용된 것으로 알거나, 심지어 안에서 빵을 직접 굽는 것이 아니라 공장에서 배달되어 온 빵을 진열하여 파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이번 일을 통해 간접고용뿐만 아니라 제빵업계 뒤의 암울한 모습까지 드러나게 된 것이다. 우리 동네 파리바게뜨에 고용된 제빵기사들은 가맹점주나 본사에 고용된 사람이 아닌 협력업체에 고용된 사람들이며 그리고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파리바게뜨의 이미지 타격은 불 보듯 뻔하다.

합자회사 ‘해피파트너스’, 협력업체와 다른 곳?

그런데도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은 여전히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지난 10월 31일 파리바게뜨 측은 ‘가맹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5,000여 명의 제빵사를 직접고용하라’는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이 잘못됐다면서 서울행정법원에 시정명령 취소 소송과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원래 11월 9일까지 직접고용하지 않으면 530억 원의 과태료를 내야하기 때문에 이 결정으로 시간을 벌게 된 것이다. 비록 11월 29일 서울행정법원은 이 소송을 각하해 결론적으로 제빵기사와 노조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SPC그룹은 20일간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해피파트너스’라는 합자회사를 만들고, 이 회사를 매개로 제빵기사들에게 직접고용 전환을 포기하고 ‘해피파트너스’ 직원으로 일하겠다는 동의서를 받게 했다.

본사와 가맹점주가 함께 직원의 복리후생과 고용안정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해피파트너스’는 사실 기존의 협력업체와는 전혀 차이점이 없는 곳이다. SPC그룹에서는 ‘상생회사’라는 이름으로 홍보했지만 해피파트너스는 본사와 협력업체, 그리고 가맹주의 지분이 3대 3대 3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일이 SPC그룹이 협력업체를 동원해 제빵기사들을 고용했다는 점에서 시작된 것을 생각해본다면 협력업체가 참가한 합자회사는 기존 고용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협력업체들은 현재 제빵기사들에 대한 체불임금 문제도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상생이 과연 무엇을 일컫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상생회사 안은 영세자영업자들이라고도 볼 수 있는 가맹점주들에게도 상당히 큰 마이너스로 나타나는데, 협력업체들은 엄연히 SPC그룹의 하청업체이기 때문에 본사와 협력업체, 그리고 가맹점주의 지분이 1대 1대 1이라는 것은 결국 본사와 가맹점주의 지분이 2대 1이라는 의미와 같다. 결국 그들이 세운 해피파트너스는 제빵기사들을 전혀 직고용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본사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서 가맹점주까지 통제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대해 직접적인 반기를 들어 무력화 시키겠다는 의도로도 볼 수 있다. 또한 상생회사라고 하는 ‘해피파트너스’의 사업목적은 인력 공급업과 용역업이다. 이전의 협력회사와는 전혀 다른 점이 보이지 않는다.

제빵기사들이 자발적으로 쓴 동의서?

제빵기사들에게 받았다는 동의서도 문제가 된다. SPC그룹은 3,000명의 제빵기사들이 동의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자의에 의한 동의서 제출이라고 보기에 어렵다. 많은 제빵기사들이 전국화학섬유노동조합연맹 파리바게뜨 지회에 그 동의서를 자신의 의지로 쓰지 않았다면서 철회서를 제출했다. 협력업체와 본사는 “직접고용을 해도 어차피 불법이다”, “직접고용되면 근속을 쳐주지 않는다”, “직고용되면 계약직으로 될지 모른다”, “동의서 써도 직접고용 판결 나면 무용지물이니 서명해도 상관없다”, “상생기업 못 가면 다른 곳으로 배치하겠다”라고 말하면서 관리자가 확인서를 계속 달라고 요구하고 바로 옆에서 사인할 때까지 기다리는 등 압박을 통해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압박을 통한 동의서 제출은 당연히 법적으로 효력이 없다. 

12월 2일,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열린 제빵기사들이 보내온 직접고용 포기각서에 대한 철회서 전달 기자회견에서 재밌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철회서를 전달하기 위해서 노동 담당자와 연결을 시도했으나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며, 두 번째는 기자회견장 뒤 SPC 건물 앞에 붙어서 협력업체 사원으로 구성된 사람들이 ‘직접고용 반대한다’, ‘제빵기사 이용하지 마세요’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영혼 없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기자회견 중에 세 번 정도 외치고 조용히 있었다. 철회서를 전달받지 않기 위해서 노동 담당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지만 협력업체 직원들로 구성된 사람들이 영혼 없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는 것은 모두 생각지 못했다. 추운 날 마스크를 쓰고 SPC 본사 건물 앞에 붙어 서 있는 그들을 보면서 재미있다는 생각과 짠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협력업체.jpg
영혼 없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 중인 협력업체 직원들.

과연 제빵기사들을 이용하는 자는 누구인가? 정말로 제빵기사들을 위한 일을 했더라면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에 따르든가 아니면 최소한 노조와 협상을 시작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도 없이 노동자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고 상생회사를 빙자하거나 또 하나의 파견회사를 스스로 만들고 갖은 압박을 통해 제빵기사들이 직접고용 포기 동의서를 제출하게 만든 것은 SPC그룹 자체가 노조, 더 나아가 정부와 타협할 생각이 전혀 없음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협력업체 직원들의 구호를 들으면서 느꼈던 것은 ‘자신들이 불법을 저질렀고 앞으로도 저지르겠다. 정부와 노동자와 끝까지 싸워 직접고용을 막아내겠다’고 선언하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파리바게뜨 문제는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고용노동부는 동의서 진위를 분석한 결과 상당수의 동의서가 자의적으로 쓰이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장기화되면서 SPC본사-협력업체와 노조의 구도였던 싸움은 가맹점주와 노조의 구도, 노-노 갈등으로 변화하고 있다. 본질은 사라지고 함께 힘을 합쳐야 할 을들이 서로 갈등을 벌이는 ‘을과 을의 갈등’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지속된다면 제빵기사들의 직접고용은 협력회사 직원들의 영혼 없는 구호처럼 실패할 것이 뻔하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채로 실패하게 되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게 될 것임이 자명하다. 어찌 보면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인 지금, 이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다시 새로 고쳐내야 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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