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누구의 언론입니까?

by 센터 posted Oct 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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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쉼표하나 3기 회원



공영방송 KBS·MBC가 파업에 들어갔다. 그것도 동시에. 파업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이 원고가 편집되고 책이 출간됐을 때 파업이 끝났으면 오죽 좋으련만 지금까지 상황으론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다. 

이 글은 추석 연휴를 앞둔 9월 29일, KBS·MBC 공동파업 26일차 되는 날에 작성됐다. 이날 조합원들은 터미널, 기차역 등 전국에서 선전전을 했고, 나는 마석 모란공원에 모셔진 성유보 선생 3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했다. 같은 시간 조합원들은 각각 만들어온 선전물을 합친 후 국민들에게 파업 상황을 알리며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수없이 반복해 말했을 것이다. SNS에는 서울역, 용산역,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대전역 등 전국 곳곳에서 선전전을 하는 모습이 속속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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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4일 전국적으로 파업에 들어간 언론노조 KBS본부와 MBC본부가 지역별 공동 문화제를 하고 있다. 사진은 대전 지역 문화제


고 성유보 선생은 언론인이자 사회운동가였다. 동아일보에서 일하다 박정희 정권에 맞서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에 동참했다. 이후 회사에서 쫓겨났고, 돌아가실 때까지 동아일보사에 들어가지 못했다. 

“우리는 교회와 대학 등 언론 밖에서 언론의 자유회복이 주장되고 언론인의 각성이 촉구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뼈아픈 부끄러움을 느낀다. 본질적으로 자유언론은 바로 우리 언론 종사자들 자신의 실천과제일 뿐 당국에서 허용 받거나 국민 대중이 찾아다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사 기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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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9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성유보 선생 3주기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이 공영방송 정상화와 파업지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자유언론실천선언은 자유언론 실천 주체가 바로 ‘언론 노동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1974년 언론 노동자들의 외침은 2017년 지금에 와서도 동일하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서도 언론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싸워왔다. 그러나 졌다. 하지만 버텼고, 지켜왔다.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은 파업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빼앗아간 공영방송 KBS를 주인인 국민의 품으로 돌려드리기 위해섭니다. 탄핵 당한 박근혜가 남기고 간 고대영 사장, 이인호 이사장 체제를 청산하고 국민을 위한 방송으로 새롭게 KBS가 출발할 수 있도록 응원해 주십시오.”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 역시 지난 9년을 ‘언론자유 말살’, ‘언론인 학살’ 시대이며 이제 이것을 끝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아직도 남아있는 ‘공범자들’ 김장겸과 고영주를 몰아내겠습니다. 저항하다 해고되고 쫓겨난 언론인들, 속히 제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이제 MBC노동조합 2천 조합원은 헌법과 법률이 공영방송 종사자들에게 부여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방송을 잠시 멈춥니다. 폐허 위에 새 공영방송을 건설하겠습니다.”


파업에 들어간 KBS와 MBC 조합원들은 삼삼오오 거리를 돌아다니며 고대영 KBS 사장, 김장겸 MBC 사장, 이인호 KBS 이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등 언론적폐 인사들의 청산을 외쳤다. 영화 〈공범자들>을 시민들과 함께 보며 토론했고,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돌마고 불금파티’에 참여해 공영방송 내부 속살을 알렸다.

“박근혜가 임명한 고대영 사장이 KBS를 망치고 있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뉴스는 축소됐습니다. 심지어 문제를 제기하면 ‘최순실이 측근 맞아?’라고 되물으며 보도를 억눌렀습니다. 선거 때마다 호전적인 북한 뉴스로 도배가 됐고, 불공정 방송을 비판한 기자들은 징계하거나 전출시켰습니다.” 

“MBC 뉴스를 사유화하고, 저항하는 언론인들을 학살했습니다. 해고 10명, 중징계 110명, 유배 157명, MBC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았습니다.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지난 9월 28일 저녁 서울 광화문 파이낸셜 빌딩 앞. ‘KBS, MBC 정상화와 언론적폐 청산을 위한 시민문화제(11번째 돌마고 불금파티)’가 열렸다. 날씨는 쌀쌀했고, 사회를 본 아나운서들이 잠시 쉴 때 담요가 필요했다. 촛불은 하나둘 켜졌고, KBS, MBC 파업을 지지한다는 손피켓이 보이기 시작했다.

허일후 MBC 아나운서가 말을 꺼냈다. 

“지난 불금 집회에서 KBS가 제작한 이탈리아 미디어 재벌 베를루스코니를 다룬 〈KBS스페셜〉을 봤죠. 빨리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와 만들어야죠. 그렇게 하기 위해 지금 KBS본부와 함께 열심히 파업하고 있습니다.” 

2006년 공채로 MBC에서 일해 온 허일후 아나운서는 지금 MBC본부 파업 집회를 매일 맡고 있다. 170일 파업 후 아나운서에 대한 탄압은 집요했다. 프로그램을 주지 않는 거였다. 결국 동료들은 정든 회사를 떠나야 하고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갔다. 이번 파업 프로그램 중 야구 경기장에서 피켓팅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이후 기사 출고에서 아나운서들이 모자이크로 처리되는 일도 있었다. 그만큼 방송 현장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집회는 토크쇼 형식으로 파업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나갔다. “공영방송 정상화가 되면 어떻게 달라지나요?”라는 질문에 오태훈 KBS본부 부본부장은 “9년 동안 KBS의 진짜 언론인들은 방송 현장보다는 투쟁 현장에 있었습니다. 공영방송이 정상화되면 이런 언론인들이 다 방송으로 돌아가, 〈6시 내 고향〉에서도 노동자 투쟁을 볼 수 있고 영화 〈공범자들〉 내용을 〈출발 비디오여행〉이나 〈영화가 좋다〉에서 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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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4일 파업에 들어간 언론노조 KBS본부와 MBC본부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공동집회를 열고 있다.


“임기가 남은 사장이나 이사장들을 나가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임명현 MBC 기자는 공정방송이 썩어버렸다면 아무리 유통기간이 남았더라도 버려야 하지 않느냐고 비유를 들었다. 

“아무리 유통기한이 많이 남아있어도 우유가 상했다면 버려야 하는 것처럼 공정한 방송을 해야 할 공영방송이 그렇지 못하다면 바꿔야죠.”

임명현 기자는 최근 함께 일해 온 동료들을 인터뷰해 ‘잉여와 도구’라는 책을 썼다. 책 속에는 잉여적 기자와 도구적 기자가 있다고 말한다. 즉 2012년 파업 이후 보도국에서 쫓겨나 비제작 부서로 가게 되거나 해직된 ‘잉여적 기자’, 그리고 파업 후 보도국에서 일하지만 억압된 구조 속에서 ‘도구적 기자’로 되어 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도구적 기자’에 파업 당시 시용기자로 입사한 이들과 파업 이후 경력직으로 입사한 이들이 포함된다. 이들은 각각 파편화돼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통제당하면서 ‘언론 노동자의 길’을 걷지 못하고 있었다.


언론 노동자들의 단결을 보다 치밀하게 막아온 것은 청와대와 국정원, 그리고 공영방송을 권력의 방송으로 만들어 버린 내부 공범자들이었다. 프로그램 개입뿐만 아니라 무단협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국정원장의 지시로 2010년 3월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이 만들어졌고, 여기에는 신임 사장 취임에 맞춰 공영방송 잔재 청산, 고강도 인적 쇄신, 편파 프로그램 퇴출 등 근본적 체질 개선을 추진한다고 되어 있다. 실제 이와 같은 계획은 잔인할 정도로 촘촘히 이행됐다.


국민들 역시 KBS, MBC 사장 사퇴 요구에 대한 지지가 높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9월 22일부터 24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KBS, MBC 구성원들의 사장 사퇴 요구에 60.3퍼센트는 찬성을, 19.6퍼센터는 반대한다고 했다. 또 국정원 문건과 관련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를 76.2퍼센트가 찬성하고 있다.1)


고 성유보 선생 3주기 행사 사진에 ‘날씨는 따뜻해 성묘하기 좋은 날’이라는 답이 왔다. 서명준 언론소비자주권행동 공동대표는 성유보 선생의 약력을 말하면서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언론은 육하원칙이 중요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사건을, 사물을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자본의 눈으로 보느냐 권력의 눈으로 보느냐. 아니면 국민의 눈으로 보느냐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저는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언론단체, 노동단체, 평화단체, 시민사회단체, 옛 동료들이 차례로 성유보 선생에게 인사를 했다. 한 선배가 다가와 “성유보 선배가 주는 술 한잔 먹어야 남은 기간 잘 싸우지”라고 말한다. 

지금 이 시간 언론 노동자들은 파업 선전전을 마쳤을 것이다. 이 글이 나올 때 ‘국민의 눈으로 보는 언론 노동자들’이 방송에 복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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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디어오늘 에스티아이 여론조사 9월 22일~24일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 대상 진행. 응답률 6.2% 휴대전화 RDD 자동응답 방식,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 +- 3.1%P (미디어오늘 2017년 9월 27일자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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