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인상률, 그러나 갈 길은 멀다

by 센터 posted Aug 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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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위원회 참관기


김세진 센터 활동가



2017년 7월 15일 늦은 밤,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최저임금이 정부세종청사에서 결정되었다. 최저임금 인상에 관련한 이슈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커졌지만, 국민들의 관심은 그 어느 때와 달리 더 높게 달아올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1년 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촛불시민혁명, 박근혜 탄핵, 적폐 청산 요구, 문재인 정부 탄생 등이 최저임금에 대한 관심을 더욱 끌어올렸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반대로 그동안 보수정권 하에서 최저임금 대상 노동자들이 얼마나 대우를 받지 못했는지, 영세중소상공인들이 얼마나 벼랑 끝에 몰려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최임회의.jpg

최저임금위원회 회의 시작하기 전 회의장 모습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장 분위기


2017년 6월 15일, 최저임금위원회 3차 전원회의가 열렸다. 노동계 위원들은 2016년에 최저임금위원회의 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전원 사퇴결의를 했다. 그리고 올해, 박근혜 정부가 무너지고 적폐 청산 요구가 무르익자 노동자위원들이 복귀를 선언하고 참여한 첫 회의였다. 사실상 첫 번째 전원회의인 만큼 언론의 취재 열기가 상당히 뜨거웠다. 각 위원들이 악수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는데, 그때 한 사용자위원이 “여기서 악수하는 사진이 찍히면 이상하게 나간다”고 하면서 노동자위원이나 공익위원의 악수를 거부하기도 했다. 긴장한 태도를 여지없이 드러내버린 사용자위원들은 회의에 들어가서도 초조하고 긴박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심지어 필자가 회의시간에 노트북으로 속기록을 작성하고 있었는데, 타자 소리마저도 시끄럽다면서 항의를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만큼 ‘기울기가 바뀐 운동장’에서 사용자위원들은 적응하지 못하고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노동자위원들은 사용자위원들보다 의연한 태도로 회의에 임했다. 4차 전원회의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피해를 볼 수 있는 영세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한 대책을 담은 〈영세자영업자-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 관련 개선 건의안〉을 제출했다. 소상공인 대표라고 하는 사용자위원들이 내놓지 않은 제안을 노동자위원들이 먼저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전원회의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오히려 영세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반겨야 할 사용자위원들이 극렬하게 반발한 까닭이다. “지난 선거 때 이미 소상공인 단체에서 제기했던 내용”이라는 의견부터 시작해서 “최저임금 1만 원을 가리기 위한 하나의 물타기”라는 폭언까지 거침없이 쏟아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큰 영향을 받을 사람들이 노동자들과 영세자영업자들인데 그저 노동자위원들이 의견을 내놓았다는 이유로 ‘물타기’라는 막말까지 하는 사용자위원들을 보면서 저들은 과연 누구를 대표하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위해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쟁점1. 업종별 차등 적용


이번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가장 쟁점은 임금 수준의 문제보다는 ‘업종별 차등 적용’에 관련한 내용이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기 때문에 사용자 측은 올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예상하고 업종별 차등 적용을 관철시키려고 한 것 같다. 사용자위원들은 택시, 미용실, PC방, 주유소 등 8개 업종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주장했다. 사용자 측의 주장으로는, 분류되어 있는 업종 중에 8개 업종이 가장 최저임금 적용 미만율이 높기 때문에 정해진 최저임금보다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해 미만율을 낮춰야 한다는 논리였다. 업종별이나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다른 국가들도 실시하고 있다는 근거를 토대로 주장을 하였지만 사용자 측 논리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업종별,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하는 국가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전국적 수준의 최저임금을 정하고 그것을 넘는 수준의 업종별 또는 지역별 최저임금을 정하고 있다. 최저임금 적용 미만율이 높다는 이유로 전국 최저임금보다 적은 수준을 적용하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하는 국가는 없다. 노동자위원들은 이와 같은 이유와 노동자 간의 양극화를 촉진시킨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반대했지만 사용자 측은 “8개 업종에 대한 시범 적용일 뿐이다. 이것이 문제된다면 협의를 통해 시범 업종 개수를 줄일 수 있다”며 마치 귀를 막은 듯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주요 논거 중에 ‘노동 생산성이 가장 낮은 업종이 8개 업종’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그것에 대한 데이터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노동자위원들과 공익위원들의 공감을 거의 얻어내지 못했다. 


사용자위원들 내부에서도 이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정회시간에 사용자위원 대기실에서는 큰소리가 종종 터져 나올 정도였다. 경총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 대표위원들과 소상공인 대표들의 의견 대립이 극심했다. 특히 차등 적용 문제에 대해서 소상공인 대표들이 거의 목숨을 걸었다고 볼 만큼 굽히지 않았다. 민주노총 추천위원이 중소기업청 데이터를 근거로 소상공인들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인식이 너무 부풀려져서 주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자 소상공인 추천위원 중 한 명은 그것은 ‘민주노총 소속 소상공인 단체’에서 파악한 것이라고 억지주장을 펼쳤다(5차 전원회의). “저임금 근로자들은 핸디캡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8개 업종에 몰려있어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고용이 불안해진다.”, “저임금 근로자들 성향은 저학력, 비전문, 저신용, 비정기 근로의 특성을 가진다.”(6차 전원회의)라는 폭언에 가까운 막말을 내뱉기도 했다. 8차 전원회의까지 이 문제를 질질 끌었고, 결국 업종별 차등 문제는 찬성 6표, 반대 17표, 기권 1표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되었다. 이에 반발해 사용자위원 중 소상공인 대표 위원들이 퇴장하기도 했다.


쟁점2. 최저임금 산입범위 


9차 전원회의부터 본격적인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협상에 돌입했다. 최초 요구안은 8차 회의에서 제시되었지만, 업종별 차등 적용 무산으로 인해 사용자위원 대다수가 퇴장했기 때문에 심도 있는 논의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제대로 된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문제를 논해야 하는 자리에서 사용자위원들은 최저임금 범위에 상여금 등을 포함시킬 것인지에 관한 산입범위 적용 문제를 들고 나왔다. 최저임금 당사자가 책임져야 할 가구원 수가 2~3인에서 3~4인으로 늘고 있어 맞벌이가 아니면 가정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불가능하고, 오히려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 역시 6~7년 전부터 퇴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산입범위를 상여금까지 확대하자는 것은 제대로 된 임금을 주지 않겠다는 것과 같았다. 공익위원들 역시 이 문제에 대해 “한국 노동법의 모델이 되는 일본 노동법에서도 산입범위에 상여금과 같은 수당이 빠져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포함되면 노동자의 생계가 어려워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라고 밝혀 이러한 논의를 조기 차단할 수 있었다. 


표결로 결정된 2018년 최저임금 


법정시한을 하루 앞둔 11차 전원회의는 임금 수준에 대한 토론보다 정회시간이 길었다. 2차, 3차, 최종요구안이 연속해서 제시되었기 때문에 노동자 측과 사용자 측이 각각 그 수준에 대한 논의가 필요했다. 밖에서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바라는 집회를 열고 있었다. 밖에서 울려 퍼지는 ‘최저임금 1만 원’ 노래는 오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밤이 되자 양측 모두 최종요구안을 내놓았다. 노동자 측 7,530원, 사용자 측 7,300원이었다. 양측 모두 예상치 못했던 상대 요구안에 놀라는 눈치였다. 이전에는 어느 한쪽이 퇴장하여 파행된 상태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올해는 협상 끝에 표결로 정해지는 자리여서 더 의미가 있었다. 결과는 간발의 차로 노동자 측 안이 15표, 사용자 측 안이 12표였다. 회의장은 오묘한 기운이 돌았다. 사용자위원들은 서둘러 퇴장하거나 노동자위원 측에 대해 악담하며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동자위원들은 최저임금 1만 원에 준하는 대폭 인상을 끌어내지 못해 아쉬워하며 미안한 모습을 보였다. 오랜만에 노동계 측의 안이 받아들여지고 16.4퍼센트라는 사상 최고 인상률을 얻어냈지만 위원 모두의 얼굴에 내려져 있던 아쉬움과 미안함은 이 회의가 얼마나 중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느낄 수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불과 1년 전까지는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정해진다’라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만 알고 있던 내가 최저임금이 정해지는 현장을 함께해 공부가 많이 되었다. 하지만 최저임금 적용 대상자는 500만의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점에서 과연 27명의 위원들이 비공개 상태에서 정하는 최저임금이 과연 적절한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또한 영세중소상공인들도 이런 자리와 협의 상태를 모르는 상태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충분히 오해를 살 소지도 있다. 최저임금은 그저 어느 한쪽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기본임금이다. 따라서 적용 대상자들의 의견을 최대한 포함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방청, 토론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회의 공개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매우 아쉬웠고 갈 길이 멀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회의장 밖 국민들의 첨예한 대립을 보면서 촛불혁명의 기본이 되었던 ‘기득권층과 비기득권층의 대결’이 아니라 ‘을과 을의 싸움’으로 비화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까웠다. 어느 한쪽의 의견이 매우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반대를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설득과 협상을 통해서 내편을 만드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절차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일방적인 의견으로 상대편의 의견을 묵살하거나 막말이나 기본적인 조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나오는 정제되지 않은 주장은 오히려 민주주의적 가치와 거리가 멀다. 지난겨울 촛불혁명이 어떻게 터져 나오게 되었고, 그 과정을 살펴본다면 최저임금 결정에 있어서도 충분히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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