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노동자들의 오아시스, 休서울이동노동자쉼터

by 센터 posted Feb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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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정 센터 인턴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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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 노동자들은 쉼터를 찾아 휴식을 하거나 정보를 교환한다.(@休서울이동노동자쉼터)


15년 전 중학생일 때였다. 당시 아버지는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를 당해 일을 찾고 있었다. 딸 셋을 키우고, 아내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에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막냇동생이 아버지를 계속 따라다니려고 고집을 부려 동생이 잠들기를 기다렸다 밤늦게 나가시던 뒷모습이 가끔 떠오르곤 한다. 나는 김민섭 작가의 《대리사회》를 읽고 난 이후 대리운전 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최근 카카오드라이버의 등장에 대리운전을 전업으로 하는 기사들은 하소연을 쏟아내고 있다. 카카오드라이버는 보험료를 전액 사측에서 부담하고 있어 대리운전 노동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편이고, 요금제를 개선하는데도 한 몫을 했다. 대리운전 노동자들의 수입 중 20퍼센트가 프로그램 사용료나 보험료, 차비 등 부대비용으로 빠져 나간다. 그러니 시간을 더 내서 일할 수밖에 없고, 건강도 해치게 된다.


이동 노동자들의 쉼터 문 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인턴을 하면서 알게 된 ‘休서울이동노동자쉼터(이하 쉼터)’를 찾았다. 이곳은 이미 대리운전 노동자들 사이에서 유명해져 있었다. 왜 신논현역 근처에 자리를 잡았는지 궁금했는데 강남 교보문고 사거리가 대리운전 기사들의 거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논현역은 네 곳의 대리운전 업체들이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탈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운전기사들은 이 곳으로 모여든다.


쉼터로 들어가니 따뜻한 조명이 공간을 밝혀주고 있었다. 왼쪽에는 간단한 검색을 할 수 있는 컴퓨터가 구비되어 있고, 기부 받은 책으로 책장은 가득 차 있다. 가운데 큰 테이블 위에는 신문과 휴대폰 충전기 여러 개가 비치되어 있고, 차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간단한 바도 있다. 쉼터는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운영한다. 아직 오픈 전인 오후 5시에 방문했는데 대리기사 한 분이 ‘명당’이라는 안마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다. 쉼터는 전신 안마기와 발마사기, 건식 족욕기를 갖추고 있다. 이 곳에 온 노동자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넓은 회의실과 운영실 옆에 여성 대리운전 노동자들을 위한 휴게 공간이 있다. 대리운전 노동자들 대부분이 남성이라 소수인 여성 휴게실을 따로 개설해 운영하는 것이다.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로 꾸며졌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방승범 간사가 만들었다는 조명은 감탄을 자아낼 만했다.


2016년 8월에 개소한 쉼터는 방문자가 1만 1,340명을 넘었다. 대리기사들은 입소문으로, 또는 언론을 통해 알고 방문한다. 이동 노동자인 대리운전 기사뿐만 아니라 퀵서비스 노동자와 화장품 외판원이나 학습지 교사들도 지친 발걸음을 멈추고 쉬다 간다. 센터에서 만난 50대 최 아저씨는 쉼터에 매일 방문한다. 대리운전 업체마다 휴게소를 두고 있지만 자사 대리운전 기사 회원이 아닌 경우 입장하는 것도 힘들고, 공간도 좁다. 매번 콜을 기다리며 의자도 없는 편의점에서 기다리는 것도 힘들다.

“사실 처음에는 쉼터에 대해서 기대하지 않았는데 직접 와보니까 시설도 좋고 깔끔해서 좋아요.”

쉼터를 찾는 이동 노동자들은 두 가지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휴식과 수면을 취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다. 그래서 올해에는 딱딱한 의자를 편안한 소파로 바꿀 계획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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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기능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休서울이동노동자쉼터(@休서울이동노동자쉼터)


쉼, 그리고 다양한 프로그램


쉼터는 휴식 공간뿐만 아니라 기초 상담과 무료 복지 연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에 치여 챙기지 못했던 건강 검진도 할 수 있고, 매주 화요일마다 법률, 금융, 건강, LH 주거 상담까지 시행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시작한 주거 상담은 인기가 높다. 퀵서비스와 대리기사는 특수고용직이다 보니 법의 사각지대에서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소속 회사가 다양하고, 콜센터도 많아 불이익을 당해도 호소할 곳이 없다. 이는 법률 상담을 통해 해결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작년에는 김민섭 작가와 함께 ‘인문학 산책’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쉼터를 관리하는 방승범 간사는 쉼터에서 ‘주민회관’을 꿈꿨다고 한다.

“쉼터를 이용하시는 분들이 박원순 시장님께 감사하다고 이야기해요. 그런 마음보다는 세금을 내는 시민으로, 주인으로, 수혜가 아닌 당연한 권리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방 간사는 쉼터라는 공간에서 당당하게 주체가 되어 연대하고 투쟁할 수 있는 대안의 공간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올 봄에 초보 대리운전 노동자를 위한 매뉴얼과 감정 노동자인 초보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사기나 폭행·위협을 예방할 방법을 담아낸 《대리운전 안내서(가제)》를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박구용 서울지부장과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의 이상국 본부장을 만났다. 박구용 지부장은 쉼터 이전에 ‘센터’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상담 서비스 덕분에 지원도 받았고, 쉼터 내 회의실 공간을 무료로 빌릴 수 있어 모임과 교육 장소로 사용하면서 노조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상국 본부장도 대리운전 노동자들을 위한 직무교육을 주말에 대관해서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대리운전 노동자만이 쓰는 은어나 빠른 길을 알려주고, 감정 노동자인 대리운전 노동자들의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노동 강도를 낮춰주는 교육도 하고 있다.


나 자신을 잃게 만드는 대리사회


올해엔 퀵서비스 노동자를 위한 쉼터도 을지로에 생긴다. 이곳엔 오토바이 정비소와 주차장이 마련된다고 한다.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잠시 눈을 붙이고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생겨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살아가기 위해 노동을 하는데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자영업자로 취급되는 특수고용 노동자가 노동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김민섭 작가의 《대리사회》를 보며 가장 통감했던 글귀는 ‘대리사회의 괴물들은 통제에 익숙해진 대리인간을 원한다’는 말이었다. 내가 주체가 되지 못하고, 타인의 운전석에서, 타인의 책상에서, 타인이 정해주는 자리에서 말하는 법을 잊고, 행동을 조심하고, 나 자신을 잃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통제에서 벗어나 앞에 있는 문제를 사유하고, 불편해 하고, 소리 높여 불만을 토해야 한다. 한 명의 대리기사, 비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내 옆의 사람, 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가가보면 어떨까? 외면하기 보다는 함께 나아갈 문제라고 인식을 바꾸고, ‘대리사회’의 괴물에 맞서기 위해 연대하고 싸워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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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범 간사와 인터뷰하고 있는 김윤정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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