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호텔, 세종

by 센터 posted Dec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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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센터 청년활동가



나에게 “호텔은 어떤 느낌이 떠오르나요?”라고 묻는다면, 비싸지만 전망이 좋고, 대우를 받으며 편하게 쉴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만큼 호텔은 ‘특별한’ 가치를 품은 곳으로 인식된다. 내가 호텔의 고객이 되면 평소에는 그냥 웃으며 넘겼던 사소한 불평도 보상받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겨 최상의 객실 상태와 전망을 원하고, 직원들은 세상 가장 행복한 미소로 응대해주었으면 한다. 한편으로 나는 비싼 숙박비를 지불했고, 직원들도 그에 응당한 급여를 받고 있을 테니까 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현장 속으로’ 인터뷰를 위해 세종호텔에 방문하기 전까지는 호텔의 특별한 겉모습에 속아 ‘특별한’ 호텔 노동자를 생각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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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명동에 위치한 세종호텔(@세종호텔노조)


‘특별한’ 호텔의 속사정


세종호텔노동조합에 방문하기 위해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소장과 함께 명동에 도착했다. 세종호텔은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최고의 접근성을 갖춘 5성급 호텔답게 휘황찬란한 로비와 미술품이 숙박객을 반기고 있었다. 우리는 호텔 입구에서 세종호텔노동조합 김상진 전 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김상진 전 위원장을 따라 노조 사무실로 향했다. 호텔 6층에 위치한 노조 사무실은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물론 호텔 노동자조차 쉽게 찾지 못하게 숨겨 놓은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의 노조 사무실이 건물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던 것과 비교해보면 세종호텔노조의 현재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느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어림잡아 두 평 남짓한 노조 사무실에서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세종호텔은 한마디로 말해서 ‘노동 탄압 백화점’이란 표현이 정확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악’의 미래가 세종호텔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세종호텔은 성과연봉제를 점차 확대해 2017년 1월 1일부터 전 직원에게 실시된다. 기본적으로 인사평가로 임금 +/- 10퍼센트를 회사에서 정할 수 있고, 특별한 경우로 판단되면 대표이사가 임의로 최대 30퍼센트까지 삭감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었다. 그동안 민주노조 조합원과 간부들은 임금 삭감이 두드러졌는데, 조합원은 평균 35퍼센트의 임금 삭감이 이루어졌다. 회사는 목표 임금 삭감에 맞춰서 인사평가를 진행하고, 내용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이 연봉제는 연장·휴일·야간수당이 포함된 포괄임금제로 노동자들의 처지는 더 악화되었다. 성과연봉제와 포괄임금제의 조합은 낮은 임금으로 밀어 넣고 노동자를 마음대로 부리겠다는 회사의 최적화 수단인 것처럼 보였다.


세종호텔은 비정규직 확대에도 앞장서고 있다. 정규직이 5년 전에 비해 50퍼센트 넘게 줄었고, 그 빈자리에 비정규직을 채우고 있다. ‘비정규직을 1년 후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단체 협약을 없애고, 2년간 비정규직으로 일해도 계약해지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세종호텔은 노동자를 일회용품 정도로 취급했고, 왜 자본가들은 법 테두리에서 벗어나도 무사태평한지 의구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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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단체들과 함께하는 호텔 앞 선전전(@세종호텔노조)


더 쉬운 해고를 위한 술책


“조합원들을 강제전보하며 조합 탈퇴를 강요했습니다. 호텔 프런트에서 일해 온 임산부를 식당 서빙 업무로, 퇴행성 관절염이 있는 사무직 조합원을 객실 청소로, 기술직에 있던 사람을 세탁물 수거 관리로 보내는식입니다. 이렇게 사측은 지난 5년간 21명을 강제전보했고 강제전보를 협박하며 조합 탈퇴를 종용했습니다.”


세종호텔은 더 쉬운 해고를 위해 멋대로 조합원을 강제전보하고 저성과자로 낙인찍고 있다. 호텔 프런트에서 일하던 임산부를 식당 서빙 업무로, 퇴행성 관절염이 있는 사무직 조합원을 객실 청소로, 기술직으로 일하던 노동자를 세탁물 수거 관리 업무로 보내는 식이다. 또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퇴사를 강요하고, 부당전보를 거부하는 직원들은 징계해고로 쫓아냈다. 지난 5년간 21명이 강제전보를 당했고, 강제전보를 협박하며 노동조합 탈퇴를 종용하기도 했다. 2016년에도 세 명이 부당전보를 거부하고 투쟁하다 징계해고를 당했다.


그 중 한 명이 25년 동안 근속한 김상진 전 위원장이다. 현재 부당해고로 인한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2015년 1월 1일, 노조 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현장에 복귀하자마자 노조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9명에게 배치전환 명령이 내려왔다. 노조 탄압을 위한 부당전보로 판단되어 이를 거부했다.

“부당전보를 거부하고 원래 일하던 홍보팀으로 출근을 하니, 회사에선 발령지로 가라고 명령하다가 기어코 제 책상을 없애고 사무실 열쇠마저 바꿔버리더군요.”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이야기했지만, 회사는 이마저도 탄압으로 무마시켜버렸다. 2015년 2월부터 호텔 앞에서 계속 시위를 진행했고, 올해 4월 19일 징계위원회가 열려 징계해고가 되었다. 현재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재심 신청이 들어간 상태이다.


이 어렵고 힘든 투쟁을 시작한 이유를 물었다. 김상진 전 위원장은 “나의 문제만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멋대로 자행한 부당전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요즘처럼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에서 쉽사리 듣기 어려운 답변이었다.


세종호텔 노동자의 속사정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국민이 목소리를 내어 국가 문제를 풀어내고 있듯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모아 세종호텔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세종호텔노조 조합원은 현재 해고자를 포함해 15명이다. 그에 반해 2011년 7월 1일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된 날 만들어진 친 사측 연합노조에는 회유와 압박으로 110명 정도 조합원이 가입되어 있다. 또한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로 인해 교섭 대표 권한을 연합노조가 가진 상태다. 법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김상진 전 위원장이 담담한 어투로 뱉는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부터 아찔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세종호텔이라는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에 답답해졌고, 무서운 영화를 보는 듯 숨어버리고 싶어졌다. 불현듯 호텔경영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는 친구의 얼굴이 떠올라 던졌던 몇 가지의 질문은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요즘 들어서는 모든 호텔의 정규직 비율이 10퍼센트가 채 안 된다는 것, 정규직 신입사원 채용은 없다시피 하고, 파견이 안 되는 중요한 업무임에도 불법 파견업체와 계약을 맺고 알바나 임시직을 채용한다는 것. 내가 호텔에서 만나왔던 세상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는 직원들은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광대의 가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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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부터 매주 목요일 저녁 세종호텔 앞에서 진행하고 있는 목요집회(@세종호텔노조)


그래도 희망


“힘든 상황은 있었지만, 도망갈 생각을 한 적은 없습니다. 세종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이 당장은 회사의 공격이나 탄압 때문에 움츠려 있고 자신감이 없어 자신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고 있지 못하지만,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믿음, 그리고 기대가 아직 남아있기에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그만두고 싶은 순간은 없었냐”라는 질문에 돌아온 답변이었다. 쉽지 않은 길을 묵묵히 헤쳐 나가는 이유이기도 했다. 세종호텔노조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지속적인 투쟁으로 작년 성과연봉제보다 연봉 삭감 폭을 낮추는 값진 결과를 만들어냈다. 자본주의에 노동자들이 부품처럼 이용당하는 현실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잇닿는 믿음과 기대에서 희망이 보였다. 또한 ‘우린 안될 거야’라고 쉽게 포기하고 체념하기 급급했던 문제들에 대해 시민들의 촛불로 이루어낸 변화를 보며, 처음으로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잊고 있었던 믿음, 기대, 그리고 희망은 세종호텔에도,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도, 나 자신에게도 앞으로 계속 나아갈 충분한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영화처럼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영화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이 세상에 가끔 놀라곤 한다. 이제 그 기적이 세종호텔에서부터 우리 사회 곳곳에 번져나갈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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