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위원회 배석 2년, 짧고 굵다

by 센터 posted Aug 2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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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인 센터 정책부장


편집자주 :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글로, 센터 정책부장이 최저임금위원회에 배석하며 답답했던 순간들을 기록하고 소회를 나누기 위한 목적으로 썼다.


현장-전원회의.jpg

2017년 최저 임금 논의를 위해 6월 2일 개최한 2차 전원회의.


노동자위원인 센터 소장의 빽(?)으로 최저임금위원회에 배석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망설이지 않고 배석을 신청했다.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장관급이고 위원은 차관급이라던데, 사회적 지위도 높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저 아랫동네 낮은 곳 사람들의 임금을 어떻게 정하는지 궁금했다. 아마 인자한 할아버지 교수님처럼 노동계와 사용계의 입장을 반반씩 듣고, 조금 더 배려가 필요한 노동계 편을 들어주리라는 측은지심 따위를 기대했던 것 같다. 


최저임금위원회 투명성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대로, 최저임금위원회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2015년부터 양대노총 밖에 있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청년유니온이 노동자위원으로 참석하면서 위원회를 투명하게 운영할 것을 요구했다. 그 성과로 배석자가 늘어났고, 회의록이 더 구체적으로 정리됐고, 즉각 공개되었다. 최저 임금에 대해선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에 위원회 안에서 어떤 것을 결정하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고, 합의 수준도 노동계가 주장했던 것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정보 공개에 대한 세 가지 결정사항은 비교적 빠르고 쉽게 합의가 이뤄졌다. 물론 노동계는 전원회의를 텔레비전으로 생중계해야 한다는 요구를 했지만, 즉각 실현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기에 이정도 합의면 괜찮은 성과였다. 그러니까 반대로 생각하면, 이렇게 쉽게 합의될 수 있었던 위원회 투명성에 대한 논의가 양대노총만 참여하던 2015년 이전에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거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최저 임금 기사 댓글의 단상


최저 임금이 민감한 주제인 만큼, 최저 임금 관련 기사에는 댓글도 많다. 그만큼 최저 임금이 대중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의미다. 댓글을 보면 최저 임금이 너무 낮으니 올라야 한다거나, 노동계에게 힘을 내라거나, 사장님도 불쌍하다는 내용이 주로 많다. 그런데 간혹 노동계를 가리키며 ‘왜 니들 마음대로 내 임금을 정하냐’는 비난의 댓글도 종종 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워낙 낮은 탓에, 노동자위원이 양대노총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건 형식적 대표성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표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위원들은 얼굴 없는 노동자들을 위해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배석하며 지켜본 결과, 노동자위원은 열심히 싸운다. 청년·여성·비정규 노동자들의 고충, 그리고 최저 임금이 올라도 임금이 인상되지 않는 공공부문 용역 노동자를 위해 ‘감히’ 기획재정부 담당자를 전원회의장에 부르기도 했다. 물론 담당국장 대신 타부서 과장이 오긴 했지만. 그래서 노동자위원을 욕하는 댓글을 보면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건데, 모든 걸 노동자위원에게 떠맡기고 당신은 최저 임금 집회 한 번 나왔느냐고 반문한다. 못된 생각이란 거 안다. 심지어 한 공익위원은 최저임금위원회를 사퇴하며 ‘노동자위원들은 최저 임금 당사자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최저 임금 인상이 고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불명확한 주장의 연장선상이었지만, 용감하게도 이런 말을 덧붙였다. “노동조합으로 고용이 보호되는 근로자를 대표하고 있으니 편의점 알바 일자리가 줄든 말든 관심 갖지 않는 것도 일견 자연스럽다.”


억울하지만 대중의 반응과 사퇴한 공익위원의 반응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2015년 청년 대표와 비정규 대표를 노동자위원으로 함께한 건 정말 잘한 일이다. 노-사-공 각 9명인 지금과 같은 최저임금위원회 구조를 전제로 한다면, 더 많은 당사자 대표가 노동자위원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알바 대표, 여성 대표, 공공부문 대표, 영세사업장노동자 대표(일반노조?), 더 나아가 노동계 학자를 포함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최저 임금 노동자 2/3가 여성인데, 노동자위원 남녀 성비를 조정할 필요도 있다. 


현장-기자회견.jpg

최저 임금 1만 원을 요구하며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진행된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 기자 회견.


른들의 세계


나도 법적으로 성인이 된 지 한참 됐지만, 가끔 ‘어른’들의 세계가 따로 있다는 걸 느낀다. 일본사람을 만났을 때 그들의 친절이 과도한 나머지 그것이 진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혹은 그 반대의 경우는 헷갈리다 못해 혼란스럽기까지 한데, 최저임금위원회가 꼭 그렇다.


노-사-공 위원 27명이 3년마다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지만, 진짜 신입위원은 몇 명 없다. 장기집권도 이런 장기집권이 없다. 전원회의장에서는 진지하게 토론을 하지만, 서로의 입장을 너무 잘 이해하게 돼버린 것 같다. 예를 들어, 노동계 주장이 백번 옳아도 공익 입장에서 정부나 사용계 눈치도 봐야 하기에, 옳은 주장을 전부 수용할 수 없는 곤란한 입장이라는 걸 이해한 채 토론이 진행된다. 그러니 매년 비슷한 패턴이다. 이 정도 주장하면 이 정도 받아들여질 거고, 그 대신 이 정도를 양보해야 할 거라는 결론은 이미 정해졌다. 그런데도 노사는 최저 임금 1만 원(혹은 동결)이 되지 않는다면 죽을 것처럼 자극적인 언어로 언론플레이를 한다. 이미 정해진 결론을 조금이라도 바꿔보려는 절실함일까? 싸우면서 정든다고 했다. 장기집권 위원들, 이미 너무 친해졌다. 


보이지 않는 손


노-사-공이 모이긴 했지만 최저 임금을 누가 정하는지 모르겠다. 노동계는 거의 매년 최저 임금을 결정하는 순간 퇴장했고, 사용계는 일부 퇴장, 일부 반대를 한다. 결국 공익위원의 영향력이 가장 큰데, 10여 차례 전원회의 중 말 한 마디 안 하는 공익위원이 있을 정도로 공익위원들은 말을 아낀다. 귀를 활짝 열기 위해 입을 닫은 것 같지도 않다. 공익위원이 제시한 심의촉진구간이나 최저 임금 수준에는 노사가 주장해 왔던 생계비나 노동 생산성 등이 반영되지도 않는다. 그럼 노사는 도대체 왜 치열하게 자기주장을 한 걸까? 최저 임금 정하라고 모아 놓은 27명의 위원 뒤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걸까.


보이지 않는 손이 최저 임금을 정하게 만든 데는 노-사의 책임도 크다. 노동계는 올해 1만 원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최초요구안을 고수했다. 노동자의 생계가 달린 문제고 1만 원은 최소한의 요구라는 점에 동의하지만, 노-사가 합의해야 한다는 현실을 고려하면서 설득력 있는 교섭전략은 아니었던 것 같다. 더구나 심의촉진구간이 3.7퍼센트에서 13.4퍼센트로 넓게 나온 것을 감안하면, 최대한 상한에 가깝게 결정될 수 있도록 수정안을 냈어야 했다. 물론 노동계는 비공식적 경로를 통해 결정 수준을 미리 타진했고, 수정안 제출이 의미 없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당시 수정안을 내지 않았던 것에 대한 평가는 갈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불균형


솔직한 표현으로, 형편없는 위원들도 많이 앉아 있다. 사용계 간사인 경총과 영세사업장 대표로 온 한 위원을 제외하고는 사용자위원들은 공부도 안 하고 준비도 안 하고 그냥 몸만 오는 것 같을 때도 많다. 최저 임금 인상만 일단 막겠다고 오는 것 같다. 논리와 열정으로 보면 노동계가 압승인데, 사용계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건가? 역시 가진 자는 여유롭고, 갖고자 하는 자는 절박하다. 자본주의가 내재하고 있는 노사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노동3권도 있고 노동법도 있고, 최저임금법도 있는 건데,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누군가는 최저 임금은 복지가 아니니 저임금 노동자에게 복지를 늘리자고 했다가, 복지를 늘리려고 하면 일 안 하는 사람에게 왜 혜택을 주냐고 한다. 코에 걸어도 노동자 쥐어짜기고 귀에 걸어도 노동자 쥐어짜기다.


전원회의에서 사용계는 최저 임금과 낙수효과, 실업에 대해 줄곧 이야기한다. 마치 최저 임금이 동결되면 기업이 살고, 기업이 살면 일자리가 늘고, 일자리가 늘면 우리 모두 행복할 것처럼 말이다. 실소가 새어 나올 수밖에. 때로는 이런 식의 논의가 의미 없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최저임금위원회는 소중하다.


현장-빈자리.jpg

노동자위원들이 퇴장한 전원회의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고 한다. 그만큼 노동자가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닌 것 같다. 한강대교에 매달려 해고가 부당하다고 소리쳐도, 높은 광고탑에 올라 자기 존재가 노동자라고 소리쳐도 노동자는 불법점거에 대한 진압의 대상일 뿐이다.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인데, 노동자 목소리에 귀 기울이거나 노동자를 대변하는 제도적 장치는 별로 없다. 여태 최저임금위원회에 문제가 많다는 소회를 밝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위원회는 민주적이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고군분투하는 노동자위원이 9명이나 앉아 있다. 노동자위원의 발언은 최저임금위원회 회의록이라는 공식적인 문서가 된다. 아스팔트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더 절실하고 생동감 있지만, 공식적인 자리가 갖는 힘도 분명히 있다. 노동계는 이 구조를 잘 활용하면 된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배석하며 발견한 사실이 있다. 최저 임금은 새벽에 결정된다. 노동계는 퇴장했기 때문에 마지막 전원회의 분위기를 모르겠지만, 남아 있던 공익위원과 사용자위원들은 발걸음 가볍게 서울행 기차를 탔을까? 밤늦게까지 핸드폰 붙잡고 검색 창에 ‘최저 임금’ 네 글자를 써놓고 수십 번도 넘게 새로고침을 하다 잠이 들었다. 최저 임금이 결정되고 중앙일보는 최저 임금이 새벽에 ‘기습통과’됐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다.


전원회의장에 앉아 적(?)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감정노동이다. 세종시에 다녀온 날이면 몸과 마음은 녹초가 된다. 그래도 적(?)의 실체를 직접 보고 관찰하는 건 흥미진진한 일이다. 정책국 일도 일종의 사무직인지라 몸이 근질근질할 때가 많은데, 최저임금위원회는 일상에 짜릿함을 주는 짧고 굵은 경험이었다. 그렇지만 작년에는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면, 올해는 재밌었지만 힘이 들었다. 노동계의 대표성을 보완하고 최저임금위원회가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내년에는 더 시원하고 짜릿하게 싸워볼 수 있지 않을까. 대중의 관심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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