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얼마면 살 수 있니?

by 센터 posted Aug 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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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명  시골에서 이것저것 하는 사람



귀농하려는 사람들이 내게 물어보는 얘기 주제는 대개 돈과 관련된 질문입니다. 장수 땅값은 평당 얼마나 하는지, 한 달에 얼마면 살 수 있는지, 무슨 일을 하면서 얼마를 버는지 물어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인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촌에 살면 10만 원도 안 들이고 산다면서?”라고 대뜸 물어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지마을 장수에서 1년 반 살면서 들어간 생활비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지난해 3월, 장수 멧골로 귀촌하면서 맘먹었던 생각은 ‘한 달에 50만 원이면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용돈으로 한 달에 70만 원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요리조리 아껴 쓰고 월 20만 원을 몰래 저축해서 비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논밭이랑 산과 들에서 철마다 먹을 거 나오고, 수도세는 지하수니 낼 거 없고. 그저 월세 10만 원 내고, 자동차 기름값 10만 원 쓰고, 술값 10만 원, 보일러 난방비 10만 원, 전기·통신비 10만 원이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맑은 물과 푸른 산 바라보면서 여유작작 숨 쉬고 지리산, 덕유산을 앞산 뒷산으로 삼아 쏘다니면서 남들 부러움을 한껏 받아보는 거였습니다. 그동안 머리 아프게 싸우고 고민했던 도시의 투쟁적인 삶에서 벗어나 세상의 이치를 따지지 않고 자연 속에서 오롯이 나만의 삶과 철학을 즐기고 싶었던 거죠. 암튼 수십만 원이면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런 낙관은 며칠 만에 무너졌습니다. 


탁자.jpg

처음엔 톱으로 나무를 잘랐지만 힘들어서 나중엔 기계를 샀다.


첫날이 지나서 밥을 해먹으려고 보니 쌀과 김치, 된장, 고추장이나 양념, 전기 인덕션은 가져왔는데 정작 조리용 그릇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팬과 냄비, 보관용 그릇을 몇 개 사면서 예상치 못하게 10만 원의 지출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밥상이 없어 식탁을 만들고 차탁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집성목 합판을 샀습니다. 합판이랑 피스, 본드 사는 데도 6만 원 들어갔고요. 처음엔 낭만적으로 톱질하고 망치질해야겠다는 생각에 슬근슬근 톱질을 했는데 이것도 한 시간 만에 지쳐버렸고, 결국 스킬이라고 부르는 원형톱을 샀습니다. 또 10만 원쯤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끝날 줄 알았는데 탁자를 만들다 보니 원형이나 입체 모양, 구멍, 곡면 등을 가공할 수 없어 답답해지면서 직쏘jigsaw도 사게 되었습니다. 또 10만 원쯤 들어갔습니다. 거기에 장수의 3~4월은 추워서 보일러 기름을 38만 원이나 넣어야 했고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140만 활원이 넘게 들어갔습니다. 처음 시골서 살려고 하면 기반이 필요하니 이런 것들은 모두 기반 비용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생활비에서 제외시키고 아내에겐 “70만 원이면 살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좀 더 삥 뜯을 거리를 찾아야 했습니다. 두세 달 지나 기반이 잡혔으니 돈 들일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살다 보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들어가는 게 자동차 기름값이랑 술값이었습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읍내나 면 소재지까지 가려면 수 킬로미터를 왕복해야 했습니다. 첫 며칠은 마라톤 운동 삼아 뛰어다녀봤습니다. 그런데 ‘이게 미친 짓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냥 훅 들었습니다. 부천에서는 제주도 갈 때 김포공항까지 7~8km도 뛰어갔다 오고, 집회 간다고 광화문까지 20km 넘게도 뛰어가곤 했는데 어째 시골서는 그게 이상하고 그러지 않아도 건강할 것 같았습니다. 결국 뛰어다니는 건 포기하고 아랫집 자유한테서 자전거를 한 대 구해와 자전거로 면사무소를 다녀오고 물건을 사러 갔다가 예상 못 한 부피에 낑낑거리면서 끌고 왔습니다. 그 이후에 자전거도 처마 아래 고이 모셔 두었습니다. 결국 시골길은 자동차였습니다. 시골서는 차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100m만 움직여도 자동차를 이용했고, 한번 읍내 다녀오면 왕복 40km가 넘다 보니 기름값이며 유지비도 도시보다 더 들어갔습니다. 지금도 한 달 자동차 기름값만으로 20만 원이 들어갑니다. 


장수에 살고 몇 달이 지나서 도대체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싶어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웃집 자연인과 자유에게 생활비가 얼마나 드는지 물어봤습니다. 자유는 한 달에 20만 원이 들어간다고 했고 자연인은 10만 원쯤 쓴다고 했습니다. 일 년에 서너 번 서울을 다녀오거나 일본을 다녀올 땐 좀 더 들지만 그건 예외라고 했습니다. 이거야말로 텔레비전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얘기여서 그게 가능한지 꼬치꼬치 캐물었습니다. 먼저 전기세를 얼마나 내는지 물었더니 자유는 전기를 쓰지 않아 한 푼도 내지 않는다고 했고, 자연인은 기본요금 수준으로 1,000원을 낸다고 했습니다. 나는 보통 만 원 내외 냈는데 적게 쓸 때는 8,500원도 나왔습니다. 자유는 집 지붕 위에 300w 규모의 태양광을 설치하고 그걸로 전등 두 개만을 사용했고, 자연인은 밤에 잠깐 불을 켤 뿐 거의 어둠 속에서 생활하니 전기요금이 기본이었습니다. 더구나 둘 다 냉장고도 없고 세탁기도 없고 가전제품이라는 게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자연에서 세탁기, 냉장고, 선풍기를 펑펑 돌리면서 산다는 게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하는 부끄러움이 들 정도였습니다. 또 통신비를 얼마나 쓰는지 물었습니다. 자연인은 9천 원쯤이고, 자유는 만 원 정도였습니다. 나는 처음엔 3만 원 초반이었으나 9월에 휴대폰을 바꾸면서 6만 5천 원으로 치솟았습니다. 자연인은 그것도 비싸다고 스마트폰에서 완전 공짜 3G 폴더폰으로 바꾸고 요금제도 사용할 때마다 분당 18원인 걸로 바꿨습니다. 전기요금과 통신비는 그렇다고 치고 먹고 사는 생활비를 물어보았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도 자연인은 한 달에 2만 원이 들지 않았고, 자유도 몇 만 원이 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뭘 먹고 살기에  그렇게 돈이 들지 않냐?”고 물어보니, 자연인은 하루에 두 끼만 먹으며 쌀이나 밀을 직접 도정하고, 반찬은 한두 가지만 먹는다고 했습니다. 자유는 그보다는 윤택하게 먹고 사는데 농사지은 쌀과 콩, 밀, 감자 등이 있고 반찬으로 김치와 된장, 고추장, 가끔 고기나 참치를 사서 먹는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놀러오면서 사가지고 오는 것들도 있고 마을에서 어른들이 주는 것들이 있어서 그런대로 먹고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에 비해 나는 먹고 싶은 건 다 사다 먹는 편이었고 궁색하지 않게 먹겠다고 고기와 생선 과일도 풍족하게 사다 놓고 냉장고에 넣어놓고 먹다 보니 월20~30만 원은 훌쩍 넘어가곤 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반생활비나 의류, 쇼핑은 어떤가 물었습니다. 자연인은 아예 십 년 동안 옷을 사본 적도 없다고 했고 자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히려 자연인은 나에게 난닝구를 주면서 입으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무언가를 사는 경활우가 거의 없었고 필요한 것은 주변 사람들이 안 쓰는 것을 구해다 사용하거나 직접 얼렁뚱땅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생활비로 많이 지출하는 것은 교통비였고 목욕비였습니다. 이는 자동차가 없었기 때문이었고 보일러 없이 찬물에 목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마저도 한 달에 2~3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빨래도 그냥 개울물에 담궈 두었다가 헹궈서 말리고, 설거지도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생활하고, 많은 도시인이 꼭 가입하는 보험 따위는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오해하면 자연인과 자유가 지나치게 짠돌이라 선입견을 가질까 우려되는데 실상 자신들에게는 그렇게 아껴 쓰는 삶이지만, 내게는 돈을 많이 썼습니다. 처음 귀촌했을 때 환영한다고 반찬이 열다섯 가지 나오는 식당에서 맛난 것을 사주었고, 맥주나 막걸리도 여러 번 사주었습니다. 또 자신들이 알고 있는 맛집에도 데려가고 함께 여행을 다닐 때도 온천에 갈 때도 내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었습니다. 


나는 주위 산과 들에서 나는 온갖 계절나물이나 꽃잎, 산야초를 채취하고 오래 보관하기 위해 욕심을 부렸습니다. 그냥 때되면 돌아오는 것을 먹고 즐겨야 함에도 너무 사랑하는 마음에 또 주위에 자랑하고 싶어 장아찌를 담고 효소, 술을 담는데 많은 열정과 돈을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리병도 수십 개를 샀고, 그에 따라 설탕도 일 년에 수십 킬로그램을 사야 하고, 담금용 소주도 수십 리터를 사곤 했습니다. 


시골살이는 한 달, 얼마에 살 수 있다, 라는 정답이 없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50만 원만 가지면 넉넉하게 살 수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돈으로는 숨만 쉬며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50만 원으로는 정말 숨만 쉬며 살아야 했습니다. 매월 뭔가 새로운 기구나 도구를 사곤 했는데, 첫 달이 지나서도 디월트 임팩드릴 34만 원, 리큅 가정용 건조기 30만 원, 예초기 38만 원, 농기계 자격증 수강료 55만 원 등 목돈이 들어가는 때가 많았고 보통 100만 원 이상은 쓰곤 했습니다. 이건 순전히 나만의 용돈이었고, 아내와 떨어져 살면서 고정비는 모두 아내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상 내 경험만 가지고는 얼마로 살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기엔 부족합니다. 이건 그냥 내 시골놀이에 불과했으니까 말이죠. 


지금은 아내가 합류하면서 한 달 돈 씀씀이가 더 커졌고 복잡해졌고 정확해졌습니다. 주요 고정비로 보험료와 전기 통신비, 자동차 유지비, 생활비가 있습니다. 보험료는 아내와 나의 운전자보험, 실손보험, 암보험, 부모님 보험과 용돈 등으로 43만 원이 들어갑니다. 전기통신, 수도세도 매월 20만 원을 차지하는데 이건 휴대폰을 바꾼 지 2년이 되지 않아서 더 큰 편입니다. 자동차 유지비도 기름값으로 20만 원과 보험료 및 자동차세, 부품 수리비로 평균 10만 원을 합하면 월평균 30만 원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장수의 겨울은 길고 추워서 보일러 난방비로 월평균 10만 원, 노동조합이나 단체에 후원금이 15만 원, 경조사비도 한 달에 두건 정도 해서 10만 원을 쓰고 있습니다. 또한 농사를 짓다보니 쟁기를 사거나 종자를 사거나 농자재를 사면서 농사비로 월 5만 원은 들어갑니다. 여기까지 고정비를 합해보면 133만 원. 그리고 마지막 생활비. 이건 정말 뜰쑥날쑥한 편인데 주로 지인이나 가족들이 놀러 오거나 명절을 맞거나 해서 많이 차지할 때가 있습니다. 적게는 40만 원에서 많게는 130만 원까지 널뛰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널뛰기 비용에는 술과 고기가 가장 많은데 이런 기회에 영양보충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사람이 찾아올 때가 가장 즐겁고 살아 있는 것 같아 좋습니다.


제가 살면서 느낀 시골살이 비용에 대해 적어보았습니다. 여러분이 꿈꾸는 귀촌살이에서 얼마면 살 수 있을지 감이 잡히나요? 자연인이나 자유처럼 산다면 20만 원으로도 살 수 있지만, 저처럼 살려고 하면 도시와 거의 차이가 없네요. 환상을 버리고 버는 만큼 쓸 수 있으면 그게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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