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빨래하는 노동자

by 센터 posted Dec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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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를주마-낡은 작업복.jpg

용광로를 만든다 하면 어마어마한 일을 하는, 어마어마한 사람들 같지만 제철소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다. 현대제철소 내에 축로 노동자라는 분들이 있다. 철을 사용해서 배를 만드는 노동자들을 조선소 노동자라 부르듯 용광로 내부와 쇳물이 흐르는 길을 만드는 노동자들을 축로 노동자라 한다.


축로에는 여러 자재가 쓰이지만 그중 대표적인 게 내화 벽돌과 내화 모르타르이다. 내화 벽돌은 열에 잘 견딜 수 있도록 고온에서 점토를 구워낸 것인데 가깝게는 찜질방과 서양식 벽난로에서 볼 수 있다. 그 크기가 1톤이 넘는 것부터 우리가 흔히 보아온 작은 벽돌 크기까지 다양하다.


축로 노동자들은 국내에 아주 극소수 인원만 종사하는 특수직종의 노동자들이다. 석유화학, 시멘트, 소각로, 발전소, 제철소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다양한 형태의 내화물을 유지, 보수, 시공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 강도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하기 때문에 열 명이 입사하면 단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대부분 그만두고 현장을 떠난다.


현대제철에서 일하지만 현대제철 노동자가 아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한마디로 사장이 누구인지 정확치 않은, 사장이 여럿인 회사이며 주야간 교대로 일한다. 노동 강도가 워낙 세서 10명이 축로 노동자로 취업하면 일 년 안에 9명이 떠나간다.


내가 만난 노동자들은 충남 당진 현대제철 내에 40여 개의 용광로가 있고 그곳마다 고로, 제강, 연속주조로 이어지는 모든 공정의 내화물을 관리하는 분들이다. 워낙에 노동 강도도 세고, 현장 온도 자체도 50도를 넘어서고, 재해 발생률과 사망사고 또한 빈번히 발생했다(2013년에만 6명이 목숨을 잃었고, 재해자 또한 많이 있었으나 은폐, 회유 등으로 통계 자료조차 없음). 그런데 이들의 삶은 노동조합을 만들기 이전과 이후로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평균 근속년수가 5년으로 늘었고, 현장 재해건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휴식권이 보장되고 자율적인 의사 표현이 가능해지면서 작업 능률도 월등히 향상되었다. 힘겹게 일만 하던 노동자들에게 자부심이 생기고 근로 조건에 조금이나마 변화가 생기면서 나타난 무언 무형의 자산이 급속도록 증가했다.


어느 날 작업을 마치고 퇴근 무렵 목욕탕에서 한 분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이를 본 노조 간부가 “곧 퇴근 버스가 올 시간인데 왜 여기서 작업복을 빨고 있는 거죠? 집에 세탁기가 망가졌나요?” 하고 물었다.


옛날엔 엄마들이 빨래를 싸안고 목욕탕에 간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목욕탕 입구에 ‘빨래 반입금지’라고 쓴 팻말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지금이 1970년대도 아니고 좋다는 세탁기가 천지인 2000년대에 남성 노동자가 왜 공장 목욕탕에서 자신의 작업복을 빨고 있어야 하는지 궁금했다.

“OOO님 사실은요. 우리 작업장이 온통 발암 물질 천지잖아요. 발암 물질이 묻어있는 작업복 차림 그대로 집으로 들어간다는 게 제 애들한테도 그렇고 아내에게도 늘 마음에 걸리고 그러다 혹시라도 애들이나 아내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제가 조금 힘들어도 작업복을 목욕탕에서 빨게 되었네요.”

이 얘기를 나에게 전해준 노조 간부는 더 위로해줄 말도 위로받을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고 한다.


축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회사 측에 열악한 작업 조건을 조금만 바꿔달라고 요구했지만, 최순실에겐 수십억을 갖다 바칠 돈은 있었지만 노동자들을 위해 쓸 돈은 없었나보다. 축로 노동자들은 분노하고 있다.


김성만 문화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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