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걸음

by 센터 posted Oct 3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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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까대기.jpg

이랜드 투쟁을 할 당시,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은 노동자 투쟁 현장 속으로는 거의 발걸음을 하지 않던 때였다. 그런데 인천 민족미술협의회 노동분과 위원장이었던 김재석 화가가 상암 홈플러스 지하 주차장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걸개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은 홈플러스 벽에 걸렸고 조합원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었다. 나중에 이랜드 노동자들의 이야기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 책표지 디자인으로 쓰이기도 했다.


나비효과일까. 이후 여러 화가들이 수많은 투쟁 현장 속으로 발걸음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김재석 화가는 눈에 띄지 않게 화가들의 전시회를 지원했고, 기륭전자에서, 인천 부평 지엠대우 비정규직 천막에서 조합원들을 그려 전시회를 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후 미술 하시는 분들이 노동자 투쟁 속으로 스스럼없이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김재석 화가의 숨은 걸음 덕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동만 시인도 기억난다. 우리가 생각하는 유명 시인은 아니지만 금속노조 조합원이면서 한국작가회의 소속 시인이다. 작가들 또한 화가와 다르지 않았다. 노동자 투쟁에 발걸음 하지 않은지 오래되지 않았을까 싶다. 문 시인은 이랜드 비정규직 투쟁 관련 시를 처음으로 써와서 낭송했다. 


얼마 전 ‘노동자의 책’ 웹 사이트를 운영하는 철도 노동자가 국가 보안법으로 구속되었는데 아내가 최도은 가수다. 최도은 씨는 남편의 법정 투쟁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15년 만에 콘서트를 열었다. 이랜드 조합원들이 파업 투쟁할 때 점거 농성장에서 2시간에 걸쳐 노래와 공동체 놀이를 함께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아이가 많이 아팠는데도 그이가 환하고 밝은 모습으로 공연을 했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나는 그 당시 문화예술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강남 사랑의교회 앞에서 이랜드 조합원들이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었다. 사랑의 교회는 장로인 이랜드 박성수 회장이 다니던 교회였다. 그런데 나는 그곳을 접고 상암 홈플러스 앞에 천막을 치자고 했다. 왜냐하면 천막을 치긴 했지만 농성장을 지키는 사람도 적어 천막 사수 투쟁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역대책위원회 동지들의 원성이 없지 않았지만 상암동으로 옮기고 매일 밤 문화제를 열었다. 폭력이 난무하던 때였다. 사측 구사대에 엄청 맞고 병원까지 실려 가기도 했다. 하지만 지대위가 지역에 탄탄한 발걸음을 만든 계기가 되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첫걸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시작이었다.


김성만 문화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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