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 집 딸내미

by 센터 posted Mar 1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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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만 | 문화노동자


악보-먹튀자본 박살내자.jpg

우리 집은 이천 시장통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이천에서 오래된 시장통이라 2.7장으로 오일장이 서는 장통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골목 시장통에서 아동복 가게를 하고 있다. 성남에서 청년기를 다 보내고 결혼 후 이사 와서 줄곧 이 시장통에서 아동복 가게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왔다.

가게 바로 맞은편에는 ‘OO 칼국수’ 집이 있다. 시장통 길이 하나이기에 칼국수 집은 배달하는 종업원까지도 오며가며 늘 인사를 나누는 맛난 이웃이다. 면 음식을 좋아하는 나는 장날이면 여러 번 동생들과 칼국수를 시켜 먹었다. 그 칼국수 집이 몇 년 전에 한 50미터 위로 이사를 갔다. 실상은 한 열 집 위인 듯하다.


어느 날 투쟁 중인 이천의 택시 노동자들이 투쟁가를 가르쳐달라며 물어물어 내게 찾아왔다. 먹고살기에 바빠 가게 일만 하고 있었는데 그 일로 다시 노동자 투쟁 속으로 걸어가는 시작이 되었다. 먹고사는 문제가 있으니 아동복 가게를 그만둘 수는 없어 이천 민주노총에서 비상근으로 십 년 동안 문화 담당자 일을 겸했다. <비정규직 철폐 연대가>를 쓰면서 본격적으로 노동가수의 길로 접어들었고 전국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을 문화로 함께했다.


이천 민주노총을 그만두고서는 지역 일은 거의 쳐다볼 틈도 없이 나름 바쁘게 살았는데 하이디스 일이 터지고서야 지역 투쟁에 다시 걸음을 시작했다. 서울 상경 투쟁을 하면서 하이디스 노동자들과 둘러 앉아 얘기를 나누던 중에 우연히 칼국수 집 얘기가 나왔다. 그때 한 친구가 불쑥 “제가 그 칼국수 집 딸이에요.” 하는 것이다. 어~ 그러고 보니 그이의 엄마하고 거의 같은 몸집에 닮은 모습이었다. 사실 덩치가 좀 있는 친구인데 투쟁 중에 몸짓패를 한다며 열정을 사르고, 여름엔 대만 원정 투쟁을 다녀온 멋진 친구였다.


연말을 앞두고 혹한을 마다하지 않고 행진하다 불쑥 호된 감기에 걸렸다. 이틀째 집에 누워 있는데 칼국수 집 딸내미에게서 문자가 왔다.

‘저를 많이 아껴주시고 챙겨주시고 이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생계 때문에 끝까지 하이디스 투쟁을 함께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열이 펄펄 끓는 몸살 위로 파업기금, 연대기금, 투쟁기금 등 수많은 기금의 이름들이 공중에 떠돌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천막 하나 치지 못하게 하는 탄압에 맞서 투명한 비닐을 둘러치고 혹한에 맞서고, 먹튀 자본에 맞서 싸우고 있다.      ‘지못미’라며 때늦게 눈물 흘리며 후회하기 보다는 한걸음에 찾아가 따스한 손 내미는 발걸음이 이어져 하이디스 동지들에게 힘을 실어주었으면 좋겠다. 〈먹튀 자본 박살내자〉 이 노래는 하이디스 동지들과 함께하면서 그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만든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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