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인지 생시인지

by 센터 posted Jul 2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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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만 | 문화노동자


오거리 해장국집.jpg

쉬는 날 잠깐 잠이 들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저희 옥산봉제예요.”

옥산봉제, 아~ 기억에 남아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 그런데 내가 내뱉은 말은 퉁명스럽게 “근데요” 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쪽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아~ 우리 옥산봉제라고요” 하는 게 아닌가. 그제야 30년 간 잠자고 있던 내 추억 속 한 켠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 그래···.”

“사람들이 성만 오빠가 보고 싶데요~”

나는 꿈속에서 전화를 받고 있는 듯한데 상대는 계속해서 ‘나 옥산봉제 누구예요’ 한다. 성남 은행동 쪽에 모여 있는데 사람들이 내가 보고 싶다며 빨리 오라고 성화란다. 기쁨과 흥분보다는 비몽사몽하며 “너희들이 어떻게 모여?”하고 물었더니 작년부터 헤어졌던 사람들을 한 명씩 찾아다니며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모이기로 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란다.


85년 2월경 낮에 걸려온 전화 한 통.

“옥산봉제가 노동조합을 만들었는데 사장이 조합원들을 길거리로 내쫓았데요.”

겨울비가 차갑게 내리는 길에서 20여 명의 어린 미싱사 시다 여성 노동자들이 성남 상대원 공단 입구 주택가 골목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았다. 일단 흩어져 있는 조합원들을 모아서 노래를 함께 부르며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흐르는 물줄기를 웃음으로 바꿔 놓았고, 싸움의 전열을 다듬어 세웠다. 그리고 긴 싸움의 길에 함께하는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옥산봉제 투쟁은 수천 명씩 하는 공단 노동조합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20여 명의 미싱사 시다들이 모인 작은 노동조합이었다. 그러나 성남 노동 운동사에 길이 남을 성남노동조합연합(성노련)을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무려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이들이 느닷없이 전화를 해서 “옥산봉제예요” 하니 놀라움도 아니고 감흥도 아닌 무뚝뚝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게 되었다.


투쟁 당시 자기들끼리 공장 안에 모여서 연대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모의투표를 했는데 내가 두 번이나 일등이 됐다는 것이다. 연애하고 싶은 사람 1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도 1위로···. 처음엔 “와~ 내가?” 하며 기뻐했다. 그런데 두 번째 일등 발표를 들으니 “에 ~이게 뭐야? 연애만 하고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는 건 뭐야” 하며 대꾸했다. “만날 투쟁 현장에 쏘다니면서 노래만 하니 누가 결혼을 하고 싶겠어요?” 하며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그 후 참 많은 시간이 흘렀고 나는 비정규직 철폐 연대가를 쓰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구로공단에 있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자 길거리로 쫓겨났을 때, 나를 이십여 년 전 옥산봉제 노동자들을 다시 만나게 하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어쩜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흘러왔는데 노동자들의 모습은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악다구니 지르는 모습도 그대로였다. 20여 년 전 성남 상대원 공단 입구 골목 옥산봉제 투쟁에 매일 출근하던 발걸음이 멀고먼 서울 구로공단 기륭전자로 바뀌어서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투쟁에서 승리를 하고 옥산봉제 노동자들은 다시 미싱사 시다로 돌아갔다. 나는 나대로 또 다른 투쟁 현장에서 열심히 살아가며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 때 옥산봉제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우리가 반가운 소식 하나 알려줄게요. 우리가 일하다가 점심시간에 모의투표를 했는데 성만 오빠가 1위로 나왔어요.”

“또 뭔데?”

 “투쟁에 연대했던 사람들 중에서 다시 보고 싶은 사람 1위요.”

우리가 웃으면서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내게도 다시 보고 싶은 사람 1위인 옥산봉제 노동자들을 만난다. 꿈인지 생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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