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노래

by 센터 posted Mar 03,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Files

아버지의 노래.jpg


기타를 배우거나 노래를 배울 때 가수들이 부르는 악보를 그대로 가져와서 어려운지 쉬운지를 평한다. 왜들 그러는지? 안 맞는 옷이나 다 쓴 현수막으로 손수 가방을 만드는 등 변형시켜서 생활에 용이한 여러 가지를 만드는데 어째서 노래는 자신에게 맞게 바꾸려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샵;sharp: 반음 올림표)


‘참좋다’ 노래패와 〈벽〉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 어느 부분의 솔 음에서 자꾸 샵이 되었던 적이 있다.

“선생님 이 부분이 계속 샵이 돼요.”

“악보 좀 갖고 와 봐요.”

가만 보니 코드도 E코드이고 솔샵으로 부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워서 샵 해서 부르라고 하니 한쪽에선 굉장히 당황스런 눈치이고 또 한쪽에서는 환호성이다. 당황스러워 하는 쪽에서 작곡자의 의도가 있는데 그렇게 해도 되는지 물었다. 나는 작곡자의 의도보다 부르는 사람의 의도가 더 중요하며 작곡자가 실수로 샵을 넣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 우리가 넣어 부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티브로드 케이블 비정규직 합창단을 만들어서 〈어머니〉라는 노래를 가르칠 때의 일이다. ‘사람사는 세상이 돌아와’부분 중 ‘아’에서 계속 샵이 되었다. 왜 자꾸 샵이 되냐고 물으니 단원들이 샵으로 부르는 게 편하다고 했다.

 “그래요. 그럼 거기 샵을 넣어 줄테니 여러분 편하게 부르세요.”

이후 우리는 우리만의 화음과 악보를 만들어서 샵을 넣어 부르고 있다.



아름다운 세상, 샵을 얹는 것에서부터


난 음표 하나 바꾸고 가사 하나 바꿨다고 노래를 망가뜨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망가뜨려서 새로워 질 수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사람 사는 길이라고 본다.

노래는 작곡자가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르는 사람들이 완성 시킨다는 믿음으로 지금까지 노래를 불러왔다. 구전으로 내려오던 노래들은 듣는 사람의 귀에 따라 음이 조금씩 달라지는 현상을 많이 볼 수 있다. 저마다의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바꾸고 싶은 대로 바꾸어 부를 수 있어야 노래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바꾸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입맛에 맞지 않는 노래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는 꼴과 다르지 않아 오래가지도 않는다. 입맛에 맞지 않는 음표 하나 바꾸지 못하면서 어울려 사는 삶을 등한시한 채 사람을 꽉꽉 쥐어 눌러 짜내는 세상. 이 썩어빠진 세상은 어찌 바꿀지 생각해 봐야 한다.

자신의 생각과 의도는 사라진 채 누군가 해놓은 것을 잘 따라 해야 잘하는 것이 되는 세상. 자본과 정권이 정해준 대로 길을 가야하고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하면 범죄자가 되는 세상.

개인의 일기장까지 뒤져 읽고 꿈속에서 가고 싶은 세상까지도 통제하는 나라에서 내 입맛에 맞는 샵을 찾아가는 길은 험난하다. 이전과 다른 세상을 찾는 길은 발상의 샵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샵은 필요하다 .


〈아버지의 노래〉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이 즐겨 부르는 〈애수의 소야곡〉 노랫말을 첫머리로 하여 조혜영 시인의 시를 넣고, 〈애수의 소야곡〉에 샵 하나 얹었다는 생각으로 작곡하였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