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어

by 센터 posted Sep 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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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윤 센터 사무국장



혜순은 집에서 나오자마자 골목길로 들어섰다. 날렵한 혜순이는 좁은 골목길을 그보다 더 날렵하게 뛰기 시작했다. 경사진 골목은 조금만 뛰어도 가속이 붙어 속도 조절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혜순의 출근시간은 늘 이 모양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마시는 술 덕분에 8시 출근이 항상 빠듯했다. 지각을 면하려면 큰 도로가 나올 때까지 뛰어야했다. 큰 도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30미터만 가면 정문이다. 경비실에 들러 8시 전에 출근카드를 찍으면 된다. 손목시계를 볼 겨를도 없이 혜순은 계속 뛰었다. 그러다 문득 어제 퇴근할 때 골목에 핀 목련꽃이 생각났다. ‘골목 어디쯤에 목련꽃이 피었던 것 같은데···.’ 혜순은 뛰는 걸 멈추었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좌우로 고개를 돌려가며 목련꽃이 핀 나무를 찾았다. 그러다 막 지나친 왼쪽 골목에서 뭔가 이상한 걸 본 것 같아 발걸음을 뚝 멈추었다. 뒷걸음질로 몇 걸음 걸어 골목으로 고개를 빼꼼히 들이밀었다. “씨발” 자기도 모르게 욕이 툭 튀어나왔다. 아침부터 차마 못 볼 걸 봤다는 듯 혜순은 부르르 몸서리를 쳐댔다. 그새 목련꽃도 잊은 채 출근길을 재촉했다.


“자세히 봤어?”

“아, 그걸 못 봤네. 봤어야 했는데. 히히.”

“아침부터 진짜? 진짜로? 그 새끼 똘아이네.”

“멀쩡한 새끼면 아침부터 그러고 다니겠어. 빙신새끼.

”“나도 보고 싶다. 아잉~”“한 번도 못 봤다고? 설마?”

“바바리맨은 아직 한 번도 못 봤어. 호호호.”

“복 많은 년. 크크크.”

출근길 있었던 일이 공장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삽시간에 소문이 돌았다. 바바리맨의 출몰지역, 시간, 심리, 대응까지 아침 내내 컨베이어벨트는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2년 전 어느 봄 혜순이와 미영이는 저녁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둘은 친구 집에 놀러가던 길이었다. 노래 부르기를 즐겨하던 혜순은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젖어 노래를 흥얼거렸다. 자기 흥에 취해 혜순이가 노래를 부르는 사이 미영의 발걸음이 갑자기 빨라졌다. 목적지도 가까워졌는데 미영이 왜 저러나 싶었지만 화장실이 급해서 그런가하는 생각에 혜순은 계속 노래를 불렀다. 누군가 혜순이의 등을 툭툭 건드리는 그 순간까지 혜순은 노래 부르기를 계속했다. 고개를 돌리자 낯선 남자가 혜순의 코앞까지 와 있었고, 영문을 모른 혜순은 “누구세요?”라고 물었다. 남자는 눈짓으로 아래를 보라고 했으나 혜순이는 “누구냐니까요?”를 두어 번 더 물어보았다. 두어 번 물어보는 그 짧은 시간에 혜순이는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수많은 경험자들이 무경험자들에게 들려주었던 마치 전설 같은 얘기가 혜순 앞에 펼쳐진 것이다. 스물세 살의 혜순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 그리고 혜순은 그 남자와 정면으로 섰고, 벌거벗은 아랫도리를 몇 초 동안 쳐다보았다. 이윽고 혜순은 “왜 그래? 왜 홀딱 벗고 밤에 나와서 이 지랄이야”라고 친구에게 말하듯 물었다. 바바리맨들은 ‘꺄악~, 엄마야!’ 이런 식의 반응을 좋아하고 그것에 흥분하기 때문에 밖으로 나온다는 거였다. 정반대의 반응으로 그들을 무안하게 하라고 유경험자들은 조언했었다. “하고 싶어서 그래요”라는 남자의 대답에 당황한 기색 없이 “번데기 같이 쪼그라들었는데 뭘 하겠다는 거야? 진짜 좆만하네”라며 쏘아붙였다. 그 사이 미영이는 친구들을 끌고 우르르 골목길로 뛰어나오고 있었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바바리맨의 뒷모습을 보며 그제서야 혜순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목련꽃잎이 봄바람에 살랑거리며 떨어졌다. 친구들은 붉게 물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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