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대학

by 센터 posted Jun 0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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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보냈다. 내 많은 것을 바쳐왔던 대학을. 그 세월들은 결코 쉽지 않았기에 이 결정 또한 오래 고민해왔다. 그만두는 절차는 오랜 고민이 우습게 느껴질 만큼 간단했다. 이름, 학번, 전화번호 정도 적어주는 것으로 끝. 때는 1월 말, 한겨울이었으나 날씨는 아주 맑았고 따뜻하기까지 했다.


대학을 그만뒀다고 하면 다들 어떻게 그렇게 큰 결단을 내렸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어떤 드라마틱한 계기를 기대하곤 한다. 사실 그런 건 없다. 오랜 시간 내 삶이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온 결과일 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고등학교에 다닐 때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느낌이 대학을 그만두기에 이른 고민의 시작이었다. 책상에 앉아있는 것 외에는 그 무엇도 허락되지 않았던 그 긴 시간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답답하고 힘든 시절이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그 시절의 생각, 내 삶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대학에 2년을 다니고, 군대에 다녀오고, 마지막으로 지금 일하고 있는 청년연대은행에서 숙성 과정을 거쳤다. 풍물패와 독서동아리,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김예슬 선언, 첫 연애 등.


물론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말리기도 했다. 부모님과 친척들, 선배들과 친구들의 걱정. 충분히 이해할 만 했다. 나 역시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휴학만 해둔 상태로 군대도 다녀왔다. 그러나 다녀와서도 나는 여전했고, 그때부터 졸업장이 없어도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아무 것도 해보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그리고 과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뭘까.


하고픈 일을 찾고자 출판일도 잠깐 배웠고, 그것 말고도 이것저것 관심이 가는 활동들을 했다. 내 생활비를 스스로 벌지 않고 살 수 있는 마지막 나날을 마음껏 누리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던 중 신기하게도 청년연대은행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고, 이런 일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시작했다. 처음엔 잠깐 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보니 계속하게 됐다. 내 돈을 내가며 동참했던 만큼 하고픈 일이기도 했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보람도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우리 삶의 문제를 함께 모여 스스로 해결해나간다는 점이 멋졌다.


군대에 다녀와서 두 해를 살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재미있고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을 참 많이도 만났다. 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함께 있으니 이런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대학을 안 나와도 충분히 잘살 수 있다는 확신이 내 안에서 조금씩 자라났다. 그러면서 이 오랜 고민 또한 끝을 맺었다.


마지막 결정을 내리기 전날, 머리가 지끈거려 출근을 못할 정도로 고민을 했다. 그랬는데 다음날 아침 이불에 누워서, 이렇게 사는 것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학교에 간 1월의 그 날, 많은 우려와 걱정, 또 그것들이 섞인 응원과 축하를 받았다. 함께 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옆지기와 먹은 점심, 학교에서 마주친 동아리 선배가 손에 들려준 사과 두 개와 집주인 형님 부부가 축하한다며 사준 꿀맥주 한 잔. 이 사람들과 함께여서, 참 다행이다.


글 | 김진회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들과 마시는 맥주 한 잔, 시적인 가사에 잔잔한 노래, 친한 친구들과 피시방에서 함께하는 게임을 좋아하는 청년연대은행 이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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