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by 센터 posted Apr 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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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툭. 툭. 툭. 규칙적으로 초침이 움직였다. 동구는 자신의 방에서 장미꽃과 덩굴이 여기저기 그려진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천장의 기하학적으로 꼬여진 벽지 무늬를 응시했다. 마루에 놓인 어항에서 졸졸졸졸 물소리가 들렸다. 안방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잠에서 깨어난 동구의 손은 곧바로 머리맡에 놓인 스마트폰으로 갔다. 톡톡 화면을 옮겨가며 페이스북을 확인했다. 네 개의 댓글과 스물네 건의 ‘좋아요’가 보였다.

“난 밤 10시만 되면 눈이 감기는데 아직까지 야근이라니 체력 좋네 ㅎㅎ”,   “애고 저랑 같은 처지예요. 토닥토닥 힘내세요!”, “돈 많이 벌겠구먼 ㅋㅋ.” 새벽 3시에 퇴근 길 풍경을 담은 사진과 짧은 단상을 올린 글은 제법 인기가 있었다. 동구는 페이스북 친구들의 반응에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대학 시절 학보사 동기였던 판기는 노란색 꽃이 피어난 춘란을 자신을 대체하는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난초 키우는 것이 취미인 것 같았다. 졸업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그는 3년 만에 꽃이 폈다고 자랑을 하고 있었다. 동구는 상부상조의 심정으로 ‘좋아요’를 한 번 누르고, 모든 기록을 뒤로 하는 백 버튼을 눌렀다.


빛나는 액정 화면을 넘기다가 린을 만났다. 글과 사진은 이미 다 봐서 새로울 것이 없지만, 계속되는 댓글로 타임라인에 린의 글은 마치 현재 시점으로 보였다. 동구와 린은 헤어졌지만 페이스북 친구는 계속 맺고 있다. 린이 키웠던 고양이 사진과 직장 이야기를 보면서 ‘좋아요’를 눌렀다 눌렀다 했다.


‘간통죄 위헌 판결나자마자 박** 귀국’ 낚시성 기사였지만 손가락은 벌써 화면을 눌러버렸다. 정말 내용은 없었다. 공항에서 모자를 푹 눌러쓴 연예인 박**의 사진뿐 별다른 사실은 없었다. 과거 부인과 관계는 좋지 않았다는 내용만 덧붙여 있을 뿐.


손가락을 다시 튕겨나가니 구제역이 재발해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살처분이 있었고, 동물원에서 호랑이가 사육사를 물고 도망갔다가 사살됐다는 뉴스가 시선을 끌었다. 3년 전 러시아에서 건너온 호랑이 ‘잭’은 요사이 우리의 끝과 끝을 빠르게 왔다 갔다 하며 불안해 보였으며, 수의사에 따르면 갇힌 공간에서 심한 스트레스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동구는 학보사에 있을 때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아니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라는 말을 들은 바 있다. “맹수가 사람을 물면 당연히 뉴스지. 폐쇄된 공간에서 얼마나 힘들었겠어. 참, 원래 호랑이는 사람을 잡아먹는 거 아냐. 그럼 뉴스가 아닐 수도 있지.” 동구는 이불 속에서 뉴스 평을 하며 ‘좋아요’를 누를지 ‘댓글’을 달지 고민하다 손가락으로 사건을 넘겼다.


출퇴근하며 간간히 올리는 동구의 사진은 제법 인기가 있었다. 약간 과장된 글은 사진으로 사실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한 번은 교통사고 현장을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모든 것을 다 잃을 뻔한 순간’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날 밤 그를 걱정하는 댓글이 올라왔다. 심지어 알지 못하는 이들도 ‘큰 사고가 아니길 빕니다.’, ‘안전 운전하세요’라며 동구를 걱정해줬다.


세상을 어느 정도 돌아봤다고 생각한 동구는 늦잠을 청했다. 두꺼운 솜이불 속에서 눈을 감고 페이스북에서 더 올라올 반응이 무얼까 생각했다. 건너편에서 콜록콜록 늙은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글 |이기범

글과 사진, 그리고 춤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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