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종혁명(易種革命)

by 센터 posted Feb 2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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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세계에는 역성혁명이란 것이 있다지요. 하나의 성이 계속해 나라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성을 바꿔내는 운동이라고 들었습니다. 가령 이 씨가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을 계속해 밭과 시장을 관장하게 되면 적폐가 생겨 이 씨 성이 아닌 이들은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이지요. 한 맺힌 기운이 하나 둘 모여 힘을 키워나가 몇 백 아니 몇 십의 결사대를 이끌고 궁으로 들어가지요. 벽을 차고 올라 어도를 밟으며 근정전으로 향한 거죠. 성난 칼 앞에서 무뎌지고 썩어빠진 병들의 창과 병장기들은 하나 둘 쓰러지지요. 그렇게 해서 왕에게 칼을 겨누며 ‘니 죄를 알겠느냐’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요. 이는 당신들의 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도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도 진행 중인 혁명이 있기에 알려드립니다. 우리는 이를 역종혁명(易種革命)이라고 부릅니다.

높은 하늘에서 도토리가 떨어지는 때였습니다. 다람쥐, 토끼가 나무 밑에 모여 수다를 떨었습니다. 주변에 먹을 거 투성이야 오늘도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식량을 모아야겠어. 열매는 맛있는지 모르겠지만, 풀맛은 별로야. 봄철이 제일 좋은데 보드라운 잎들이 입에서 사르르 녹거든. 후드득 나뭇가지가 흔들렸습니다. 다람쥐 눈이 커졌고, 토끼 귀가 종긋 섰습니다. 다행히도 참새였습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 짹짹. 매인 줄 알았잖아. 미안해. 멀리서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하는 것 같아 궁금해서 날아왔지.

참새야. 너 어제 대단하더라. 어떻게 장수하늘소와 싸운 거야. 토끼는 킁킁대며 궁금해 했습니다. 참새는 깃을 세우며 장수하늘소와 결투를 말했습니다. 일전에 하도 배가 고파서 하늘소를 건드린 적이 있어. 뿌리로 쪼았는데 놈은 큰 뿔로 되받아치더군. 별반 소득도 없이 힘만 뺐지. 하지만 어제는 달랐어. 나만 당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친구들이 합세해 싸웠거든. 나무에 기어오르는 장수하늘소에게 함께 날아가 날개 짓을 해대고 부리로 쪼며 바닥으로 떨어트렸지. 뒤집혀 버둥버둥 거리자 배면이 드러났어. 등껍질만 단단했지. 배는 약해 빠졌더라구.

참새는 흥이 올라 짹짹 거리며 무용담을 이어갔습니다. 이야기에 빠져있던 토끼는 두려움에 떨며 지내는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숲 속에서 토끼를 노리는 이들을 많았습니다. 여우, 매, 뱀이었고, 이들을 피해 토끼는 항상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다람쥐 역시 매, 올빼미 등 무서운 이들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참새의 영웅적인 투쟁을 들은 토끼와 다람쥐는 연신 박수를 쳤습니다.

우쭐해진 참새는 깃을 부리로 매만지며 함께 천적을 제거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피하면서 지낸 거 아니야. 참새, 토끼, 다람쥐는 우선 공통의 제거 대상을 고르기로 했습니다. 고민 끝에 뱀이 지목됐습니다. 땅과 나무를 오고가는 뱀은 그 모양이 기괴해 악의 상징이기에 충분했습니다. 흉악한 생김과 낼름낼름 내보이는 혓바닥도 기분이 나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뱀은 날지 못했고, 뛰어다니지도 않았고, 몸집도 그리 크지 않았기에 첫 번째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작전에 앞서 참새와 토끼 그리고 다람쥐는 체력 비축과 훈련에 들어갔습니다. 참새는 지렁이를 대상으로 발톱과 부리를 강화시키는 실전 훈련을 했고, 토끼는 억센 풀을 질근질근 씹어대며 육중한 몸을 더 놀렸습니다. 다람쥐는 폴짝폴짝 나뭇가지 사이를 뛰면서 기동성을 높였습니다.

결전의 날이 왔습니다. 살이 올라있던 토끼는 미끼가 되기로 했습니다. 수풀 아래 그늘지고 축축한 곳에 자리 잡고 토끼는 잠든 척하고 누웠습니다. 나무 위에 참새가, 바위 뒤에 다람쥐가 숨어 뱀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뱀은 오지 않았습니다. 기회는 쉽게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혁명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순간 하늘에서 빙빙 매가 돌고 있었습니다. 결국 다람쥐는 킁킁 철수하자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매복이 쉽지 않자 토끼, 다람쥐, 참새는 뱀을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붉은 석양으로 숲이 물들 때 나뭇가지 위에 쉬고 있는 흑적색을 띤 뱀을 찾아냈습니다. 다람쥐와 참새는 뱀 주위로 천천히 이동했습니다. 토끼는 뱀이 땅에서 떨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짹짹 짹짹 날개를 곧추세운 뒤 사방으로 흔들던 참새는 부리로 뱀의 머리를 찍었습니다. 공격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참새는 정신없이 발톱으로 뱀의 몸통을 찢어냈습니다. 이 때 다람쥐는 나뭇가지를 갉아댔습니다. 크응 크응 콧소리를 내던 토끼는 털을 세웠습니다.

툭! 나뭇가지와 함께 뱀이 떨어졌습니다. 얽혀있던 몸을 풀고 나가는 뱀의 앞길을 토끼가 막아섰습니다. 재빨리 날아온 참새가 다시 뱀을 쪼았고, 다람쥐는 몸통을 물어댔습니다. 토끼는 껑충껑충 높이 뛰며 발로 뱀을 쳐댔습니다. 뱀의 몸 여기저기서 상처가 났고,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이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흰털과 갈색 털 그리고 깃들이 흩날렸습니다. 하늘에서 이 기괴한 싸움을 보며 빙빙 돌던 매가 순간 내려와 뱀을 낚아채 갔습니다.

전리품은 없었지만, 토끼와 참새 그리고 다람쥐는 승리의 기쁨을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음지에서 슬그머니 나와 자신들을 괴롭혔던 뱀을 몰아냈기 때문입니다. 이후 이들은 매일매일 숲의 진정한 주인인양 뱀 사냥에 나섰습니다. 지상에서 뱀을 몰아내는 것이 목표가 된 것입니다. 매번 뱀을 손쉽게 얻게 된 매는 당분간 토끼와 참새 그리고 다람쥐를 노리지 않았습니다.

뱀의 개체 수가 줄면 행복해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공포감은 커졌습니다. 그들이 모이기만 하면 윙윙 하늘 위로 매가 날아다녔습니다. 배가 채워지지 않는 매에게 다음 사냥 대상은 토끼, 참새, 다람쥐이기 때문입니다.낙엽이 우거진 도토리나무 밑으로 가보세요. 뱀 사냥을 마친 토끼와 다람쥐, 그리고 참새는 매 사냥을 이야기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직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매 사냥이 끝나면 다음 제거 대상을 선정할 것입니다. 매 다음에는 누구일까요?




글 | 이기범

글과 사진, 그리고 춤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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