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점

by 센터 posted Jul 0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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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기범



경적이 울렸다. 차머리가 2차선 안으로 들어왔다. 멍청한 빨간색 궁둥이에서 불이 깜빡깜빡했다. 눈들이 흩날렸다. “야 조심해!” “봤어요. 걱정 마세요.” 승합차는 속도를 줄였다. 운전석 오른쪽 창 앞에 놓인 플라스틱 장난감 화분의 노란 나비가 좌우로 흔들렸다. 도로 위 차들은 가다서다 반복하면서 붉은 띠를 만들었다. 차 뒤편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언제 벗어나. 제 시간에 갈 수는 있는 거야?” “괜찮을 거예요. 여기만 벗어나면 곧 고속도로로 올라서게 됩니다.”
‘웅웅’ 하는 엔진소리와 도시 소음이 뒤섞였지만 곧 귀에 익숙해졌다. 전방을 보며 멀리 차량을 살폈다. 옆에서 라디오를 켰다. 뚝뚝 끊기는 굵은 음성의 노래가 나왔다. “주파수 입력도 제대로 안 되어 있네.” 입력 버튼을 옮기고, 다이얼을 돌려도 음악은 맞춰지지 않았다.
라디오가 꺼졌다. 브레이크와 액셀이 반복해 밟혀졌다. 차도 갔다 섰다를 반복했다. 젖은 도로 위를 앞바퀴가 힘들게 뒷바퀴를 끄는 듯했다. 톨게이트를 지나자 도로는 풀렸다. 속도를 냈다. “이제 밟아 봐. 늦기 전에.” 윙 하더니 계기판이 순간 크게 돌았다. 검은색 승합차안의 노란 나비가 차량 사이를 날아 다녔다.
“잘 몰아. 바쁘지만 안전하게 몰라고, 안전하게.” 화살표는 120km에서 떨어져 100km로 내려왔다. “이러다 언제 가. 전용선 타.” 승합차는 대형 버스를 뒤따르더니 차선을 옮긴 뒤 속력을 냈다.
“얼마 전에 마포대교인가 다리를 막고 영화 촬영했잖아요. 그 영화 시리즈 정말 재밌어요. 알아요?” “그럼. 그 망치 들고 다니는 거 나도 알아. 마치 부메랑처럼 날아다니는 거.” “아 천둥의 신 토르요. 망치로 한 번 꽝꽝 치면 모든 것이 작살나요.” “난 초록 괴물인 헐크가 좋아. 흥분하면 물불가리지 않거든. 적이든 아군이든 가리지 않고 괴력을 발휘하거든.” “크크 옥의 티도 있어요. 흥분할 일도 없는데 화를 내고 괴물로 바뀌기도 한다고요.” “그래도 이 영웅들을 지휘하는 것은 아메리칸 솔저죠.”
한국에서 찍은 이유가 최근 유성과 함께 떨어진 미확인비행물체를 건져내기 위한 것이라는 괴담. 각각 캐릭터 영웅들의 장단점. 마지막 자막까지 다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면 숨겨진 장면도 볼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가 앞뒤에서 오고갔다.
차량에 햇살이 들어왔다. 단속 카메라를 피하면서 차량은 앞으로 나갔다. “좀 단축됐나?”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밥이나 먹고 가자구. 가까운 휴게소에 나오면 세워봐.” 차량 뒤편에서 인기척이 나며 “배고파요.”라는 말이 소음과 섞여 나왔다. “뭐 좀 먹고 가자구. 얼마나 더 가야돼?” “곧 휴게소가 나올 것 같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한적했다. 그쳤던 눈이 다시 내렸다. “먼저 가 계세요. 저는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갈게요.” “아직도 담배를 못 끊었나. 젊을 때 건강 챙기라구.” 한쪽 끝 플라스틱 속 연기가 가득했다.
“햄버거 좋지. 여기 콜라도 있어. 휴게소 음식은 비싸기만 하고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나마 이것을 먹어야 속지 않는 것 같다.” “그러게요. 불고기 더블버거는 놀랍게도 어디에 가나 같은 맛이에요.” “한국식 버거라고, 미국 LA에서는 다른 맛이야.”
빵 안에 상추 한 조각, 성분도 알 수 없는 패티, 불고기 소스가 입안에서 흘러들어왔다. 똑같다는 그 맛이지만 비린내가 났다.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콜라를 들이켰다.
앞뒤에 탄 이들이 아메리카노를 들고 차로 들어왔다. “출발하겠습니다.” 네비게이션 속 노란 점이 움직였다. 같은 목적지를 향해 앞뒤 좌우에 탄 이들이 좌로 가면 왼쪽으로 우로 가면 오른쪽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졌다. “이러다 늦는 거 아냐? 시간에 맞춰보자구.” “안전이 중요하니 천천히 빠르게 몰아요.” 천천히 빠르게 가자는 지침에 승합차는 움직였다. 곧 전용차선에 올라섰다. “안전벨트 매셔야 합니다.” “배불러요. 좀 이따가 하죠.”
안은 조용했다. 뒤에는 이어폰을 꼽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오른쪽은 고개를 꾸벅꾸벅 흔들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 지도상 위로 점의 속도는 빠르게 움직였다. 과속 금지 구간임을 알리는 신호음이 들렸다. 경적 소리가 났다. 나비가 날개 짓을 했다. 차는 터널 불빛을 따라 자연스럽게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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