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쓰지 못하는 사정

by 센터 posted Jun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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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용 ‘2019 삶의 기록과 치유를 위한 글쓰기’ 수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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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글쓰기’ 강좌에서 박수정 선생님은 출판사 수준의 교정을 해주셨다. 교정 본 첨삭 글의 양이 내가 쓴 글보다 많았다. 쓰라림과 함께 반성과 배움이 후다닥 교차했다. 게다가 선생님이 소개해준 책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와 《동사의 맛》을 읽었더니 고민이 깊어졌다.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의 “흙수저의 유일한 자산은 한계선 자각에서 오는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이고, 금수저의 운명은 무지다.”는 글과 고 황현산 선생이 《당신의 사소한 사정》에서 쓴 “자신의 사소한 경험을 이 세상에 알려야 할 중요한 지식으로 여긴다는 것이며, 자신의 사소한 변화를 세상에 대한 자신의 사랑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 두 문구는 나의 글쓰기 엔진이다. 그런데 꼼꼼한 교정을 받자마자 털썩 주저앉았다. 좋은 배움이 있는데 왜 힘이 빠질까.


수업을 듣고 8년 전 쓴 〈천안문〉을 조금 수정했다. 오래 전 일은 미화하기도 좋고 괴로운 고민도 추억의 벽장에 잘 정돈해놨을 테다. 엄마 손에 붙들려 치과의사 앞에서 썩은 어금니를 뽑아야 하는 상황이 현실의 글쓰기다. 거기에 교정 검열을 추가해서 이를 뽑는 과정이 더욱 복잡해졌다. 선생님은 일단 막 써낸 후 교정을 하라는데,내게 이 방법은 생소하다. 과정은 그럴 듯한데 실제 내가 하려니 어금니 뽑은 후 꿰매는 치료까지 걱정하는 환자 꼴이다. 교정에 관한 고급 정보가 단기간에 너무 많이 들어왔다.


강좌 기간 동안 과제를 하다말고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를 재미있게 읽었다. 매력적인 책이다. 글쓰기가 괴로운 사람에게 명령하고 설명하는 모습이 아닌 조용한 방에서 귀에 속삭이듯 글을 썼다. 80퍼센트는 너 글 쓰느라 괴롭지? 이러저러해서 그래. 나도 그랬어. 이유는 이거저거야. 하지만 요만큼은 해보자. 가벼운데 결코 가볍지 않은 책. 정신과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받으면 이런 느낌일 테다.


그런데 박수정 선생님이 보는 교정의 눈으로 이 책을 보면, 이 기자 또한 많은 교정을 해야 한다.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면 오류의 글을 무수히 읽어야 하고, 머릿속에서 오류투성이 글로 정돈한 뒤 다시 오류의 글쓰기를 한다. 최종 교정할 때 편집자가 애써서 뭔가 각이 나오는 모양새다. 이 혼돈에서 벗어나려면 책도 가려 읽고 사람도 가려 만나고 등 힘들다. 일상의 삶이 아니다. 작년 정희진 선생의 글쓰기 강좌에 가봤더니 교정 관점은 아니지만 인권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애썼다. 일단 마음을 비운다. 나는 일반인이다. 이 강좌로 내 글을 바꾸려는 욕심의 10퍼센트만 쓰겠다. 그 10퍼센트 쓰는데 익숙하고 힘이 덜 들면 눈치 보며 10퍼센트 더 올려보기.


박수정 선생님에게 마지막 과제를 못해 죄송하다는 이메일을 보냈더니 수업 중에 못다 한 얘기와 더 큰 과제를 주었다. 죽지 않을 만한 교정의 돌덩이일 줄 알았는데 다행히 다큐멘터리나 인터뷰, 저널리즘에 관한 내용이었다. 여성영화제 거장의 작품도 추천받았다. 현장에서 일하는 고민을 노동, 인권 관점에 쓰려는 내게 힘을 싣는 내용이다. 


*박수정 선생님이 쓴 편지 요약


1. 프랑스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 작품 찾아보기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다른 사람 이야기에 다가갈 때 지녀야 할 태도

2. 미국 문화인류학자 엘리어트 리보우(Elliot Liebow) 《길모퉁이 남자들》 《우리를 세상에 알려주세요》

3. 위 내용을 ‘쉼표하나’에서 의견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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