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가출

by 센터 posted Jun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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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정 쉼표하나 회원



그곳은 들어가지 말라는 곳이었다. 밝은 낮인데도 컴컴했다. 두리번거리며 조심조심 한 발 또 한 발. 쿰쿰하고 축축한 냄새가 났다. 벌레냄새 같기도 했다. 나무들이 땅에서 하늘까지 서 있었다. 왜 여기 들어왔냐고 무섭게 날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옷자락이라도 걸리면 내 머리 위로 우당탕 덮칠 것이다. 무서웠다. 어쩌면 셋째 언니가 창밖으로 분명히 봤다는, 그래서 오줌 쌀 것 같은데 밤새 변소도 못가고 참고 있었다는, 달빛에 비친 그 검은 귀신이 숨어있는 곳일지도 몰랐다. 나는 밤에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도 참고 자거나, 언니를 깨워야 했다. 결국 엄마는 방에 요강을 놔주셨다. 그 이후 나는 근처라도 지나가야 할 때면 다른 곳을 보며 후다닥 뛰어서 지나쳤다. 그런데 그곳으로 내가 숨어들었다. 숨기에는 딱 알맞은 곳. 아니 사라져버리기에 딱 맞는 곳. 날 찾지 못할 것 같은 곳. 그러다 정말 날 찾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되는 곳. 그곳이었다.


“넌 주서 온 애야. 엄마가 너가 불쌍해서 데꼬 온 거야.”“아니라고?”

“너만 다른걸.”

“봐라. 넌 먹는 것도 우리보다 잘 먹지. 볼도 엉덩이처럼 통통하지. 얼굴도 똥그랗지. 눈은 밑으로 처지고 입도 작구. 거울 봐봐. 우리랑 다르게 생겼지?”

맞다. 내가 생각해도 나 혼자 덩치도 컸고 언니들이랑 다르게 생긴 것 같았다. 그래서 정말 주워 온 거면 어쩌나 걱정되면서도 큰소리로 아니라고 우겼다.


그날도 동생들은 어리다고 우리랑 말도 안하는 중학생 큰언니는 자기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초등학생 두 언니는 날 놀리기 시작했다. 날 자기들 놀이에 껴주지도 않았다. 

‘난 정말 주서 온 애인가 보다. 그렇다면··· 이 집을 나가야겠다.’

눈물이 흘렀다.

‘그런데 어디로 가지? 그래, 거기로 가서 사라지자.’

무서워 뛰어서 지나갔던 곳. 자세히 그 안을 들여다보지도 못한 곳. 내가 갈 곳은 거기밖에 없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목재소를 하셨다. 우리 목재소는 언젠가 쫒아간 언니들 학교 운동장만큼 넓은 것 같았다. 목재소 안에 우리 가족이 사는 집과 사무실이 있었다. 집 옆쪽엔 목재 절단기가 있었다. 위험해서 가까이 가면 안됐다. 아무리 큰 나무라도 절단기에 대고 밀면 둘로 깨끗이 잘렸다. 큰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톱칼. 번쩍거리는 그 톱날 한 개도 내 손바닥만 했다. 난 기계가 안 돌아갈 때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안 그러면 갑자기 날 빨아들여 내 몸을 댕강하고 두 동강 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계 주변엔 가지고 놀 작은 나무 도막과 톱밥이 많았다. 그래서 난 몸을 가능한 한 길게 뻗어 주워야 했다. 사무실 옆은 화장실이었고, 화장실 옆은 넓은 목재 저장소였다. 높고 높은 천장이 있는 그곳은 재단된 목재들을 세워두고 쌓아뒀는데, 마치 숲속 같았다. 미로 같았다. 어른들은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사무실과 화장실은 들락날락해도 나도 왠지 무서워서 들어가진 않았다. 


집이 보이는 곳까지만 들어갔다. 그래도 밖에서는 내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까?’

몸을 작게 웅크리고 소리 안 나게  입을 막고 울었다. 누가 날 보면 안 된다. 그 귀신이 내가 우는 소리를 들어서도 안 된다.

‘이제 난 어떻게 하지?’

‘엄마아··· 엄마아···.’


점점 날이 어두워졌다. 내가 숨은 곳은 더 컴컴해졌다. 어느덧 저녁밥 먹을 시간이 돼가는 것 같았다.

‘언니들 말이 맞나봐. 아무도 날 찾지 않네.’

‘흑, 흑···.’

···

“윤정아!”“윤정아!”

‘앗, 엄마다!’

날 찾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뜨고 집 쪽을 봤다. 엄마가 집 밖으로 나와 두리번거리며 날 계속 부르신다.

‘어떻게 하지?’


그냥 냅다 뛰었다. 엄마한테로, 안전한 우리 집으로.

“너 어디 있다 온 거니? 저녁밥 먹어야 하는데. 대체 어딨었어?”

난 울면서 고자질했다.

“언니들이 나보고 주서 온 애래. 엉엉~”

엄마는 내 팔 한 쪽을 잡고 등짝을 후려치셨다.

“으이고 이것아. 니가 왜 주서 온 애니?”

맞으면서도 그렇게 기쁜 적은 없었다.

‘그래 난 엄마 딸 맞아.’

내 가출은 그걸로 끝났다. 그때 내 나이 여섯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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