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되는 빚, 빚이 되는 빛이 있습니다

by 센터 posted Jun 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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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민희 쉼표하나 4기 회원



저는 빚이 많습니다. 지금도 빚을 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겁니다.

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 설립 시 33일간의 파업 투쟁을 시작으로 노동조합 18년입니다.

 “내가 몇 월 며칠 몇 시 몇 분에 집회에 참석했고, 내가 집회에 몇 번 갔고, 내가 투쟁기금을 얼마 냈고, 내가 주점 티켓을 샀고, 내가 그때 손을 흔들고, 내가 너희 투쟁을 지지했고···.”

그동안 이렇게 알게 모르게 같은 자리에 있었고 함께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억 속에 다 담지도 못하는 지난 세월이, 순간이, 사람들이 제겐 다 빚입니다.

가끔 알지 못했던 그 순간을 말하며 “내가 그 자리에 함께했어”라고 말할 때는 정말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또 제가 가진 빚을 생각합니다. 그래도 “그때 내가 그랬으니 너도 내게 갚아야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 다행입니다. 누가 제게 그 빚을 갚으라하면 갚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엇으로도 그 빚의 가치를 측정할 수 없으니까요.


저는 제 방식으로 빚을 갚기로 했습니다. 일단 갚을 빚이 있으니 살아 있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빚의 모양을 생각하며 그 모양처럼 살려고 합니다. 그 모양만큼 따라가기가 쉽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닮으려고 노력합니다. 가끔씩 만나는 분들이 “이렇게 현장에서 만나니 좋다.” 하시면 그 모양이 닮아가고 빚이 조금씩 청산되는 것 같아 정말 좋습니다.


그 빚은 가끔은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게 합니다.

그 빚은 힘이 생겨서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합니다.

그 빚은 너무나 따뜻해서 울다가도 웃게 합니다.


한 걸음 두 걸음이 모이고 또 모여도 늘 아쉬운 곳이 투쟁 현장입니다. 한 사람이 찾아와도, 누군가 기억하고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고맙습니다.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고 있어도 그렇게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환하게 인사하고 즐겁게 웃습니다. 그리고 힘을 얻습니다. 그 힘으로 다시 하루하루 치열하고 서럽고 힘든 현장을 살아갑니다.


그 빚은 뿌리는 순간 흩어집니다. 그 빚은 머리로 가슴으로 손과 발로 흩어집니다. 실체를 찾을 수가 없어집니다. 그러니 빚을 찾아 받으려고 애쓰지 말았으면 합니다. 빚쟁이가 되는 순간 갑질로 둔갑합니다. 갑질하려고 시작한 것은 아닐 테니 갑질은 당장 멈추라고 하겠습니다. 내 편 만들고 나 알아달라고 하는 갑질도 당장 그만두라고 하겠습니다. 빚은 갚을 수가 있지만, 갑질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내 맘과 같을 수는 없기에 빚쟁이도 아니고 갑질도 아닌데 좀 섭섭할 수도 있고 알아주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얘기를 했으면 합니다. 소통을 하지도 않고 비아냥거리고 뭔가 음모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순간 빚은 갑질로 둔갑합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오늘도 거리에는 셀 수 없는 많은 빚이 뿌려집니다. 머리로 가슴으로 그리고 손과 발로 스며들 그런 빚 말입니다. 빛이 되는 그런 빚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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