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불편한가, 이 광고?

by 센터 posted Aug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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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하 쉼표하나 회원



노란 양복을 차려입은 건장한 사내가 근엄한 표정으로 햄버거 패스트푸드 종업원 앞에서 주문을 한다.


종업원: ○○킹입니다.

남자: 햄버거 세트.

종업원: 세트 하시면,

남자: 사딸라. (큰소리로)

종업원: 더블 패틴데…

남자: 사딸라. (더 큰소리로)

종업원: 이거 세트 메뉸데…

남자: 사딸라. (엄청 더 큰소리로)

종업원: 4,900원으로 하시죠.

남자: 오케이. 땡큐!


작년부터 인기를 끈 햄버거 광고다. 옛 드라마 〈야인시대〉 속 인물과 대사를 그대로 불러와 만든 광고라고 한다. 이 광고를 패러디한 영상이 150만 뷰를 넘고 모델의 인기 또한 올라갔으니, 소위 제대로 빵 터진 광고다. 그래서인지 일명 이 ‘사딸라 세트’라고 불리는 햄버거 세트는 시중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이 팔렸다고 한다.


그런데 남들은 재미있다고 하는 이 광고가 난 볼 때마다 불편하다. 누가 봐도 어린 여성 종업원을 상대로 덩치 크고 나이 많은 남자 손님이 큰소리로 막무가내 갑질을 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종업원은 친절히 매장에 온 손님을 응대하는데, 손님은 첫마디부터 반말로 계속 “사딸라”만 외쳐대고 있다. 광고 속 종업원은 사내보다 나이도 어리고, 여성이며, 체격 조건 또한 사내보다 왜소하다. 실제 상황이라면 이런 강압적이고 위험한 손님이 종업원 입장에선 얼마나 무섭겠는가? 당장 경찰이라도 불러야 할 판이다.


게다가 이 패스트푸드의 주 고객층은 주로 청소년 내지는 젊은 세대이다. 광고의 타깃이 이들임을 고려했을 때 광고가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본다면 심히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기우일 수도 있겠으나 아직 가치관이 채 형성되지 않은 이들이 봤을 때 ‘약자를 상대로 강압과 폭력으로 억지를 부리면 저렇게 싸게 물건을 살 수 있구나.’라는 그릇된 사고를 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사회 영향력은 나날이 커지고, 광고는 그중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히트 친 광고들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든 SNS나 패러디를 통해서든 그 전파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기에 광고를 만드는 이들은 제작에 신중을 기하고 자기 검열에 누구보다 더 엄격해야 하는 것이다. 


예전과 비교해 가부장적인 문화가 점점 그 힘을 잃어가고, 남녀평등과 인간존중의 가치 등 사회의식도 점점 변하고 있긴 하다. 아직도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고는 할 수 없으나 어느 정도 공감대도 형성되고 사회 전반의 의식 변화가 소리 없이 일어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런 광고가 공중파 방송에서 버젓이 나오고, 설상가상으로 히트까지 치다니. 방심한 사이 뒤통수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인권감수성이 사회 구석구석까지 스며들기엔 아직 역부족임을 이 광고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절실히 느꼈다. 광고는 히트 쳤을지 모르나 요즘 사회 갑질을 넘어 직장 내 갑질 근절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마당에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광고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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