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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터 posted Mar 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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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이 깨졌다. 아니 깨지고 있었다. 주번인 영철이는 3학년 2반 교실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연신 하품하며 문을 열었고, 저벅저벅 자신의 책상으로 향하다 깨진 거울을 확인했다. 하얀 벽에 걸려 있어야 할 거울은 교실 바닥에 눕혀 있었다. 금이 간 거울 사이사이로 영철의 얼굴이 여기 저기 쪼개져 보였다. 파편들은 쓰레받기에 모여져 있었고, 그 옆에 전자 손목시계가 놓여 있었다. 영철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드르륵 미닫이 문 소리가 났다. 반 아이들이 왔다. “안녕. 어, 거울이 깨졌네?” “처음부터 깨져 있었어….”“음…누가 깼지?”“모르겠어….”등교를 한 아이들은 한 마디씩 했다. “거울 깨졌네.” “최초 목격자는 누구야?” “선생님이 화내실 텐데. 자수해.” “너 같으면 하겠냐.” 아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그때마다 영철이는 “깨져 있었어.”라고 말했다. 영철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자신을 지목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깨져 있었어.”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갈라지거나 막히기도 했다.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야 해. 아이들은 나를 믿어주지 않을지도 몰라. 내가 맨 처음에 왔고, 어제 제일 늦게 나갔는데. 어떡하지?’ 거울과 쓰레받기, 빗자루 등에 남아있을 손자국과 지문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영철은 교실 앞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아무도 그의 행동에 주목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시끄럽고 어질어질한 잡담소리는 더 크게 귀를 울렸다. ‘땡땡~ 땡땡~’ 교탁 위에 놓인 작은 종이 울렸다. 순간 수많은 눈이 영철에게 쏠렸다. “아침에 왔을 때 뒤에 있는 거울이 깨져 있었어. 뒤쪽으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칠 수도 있고 해서….”아이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거울이 깨졌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누가 깼지?” “어떡해, 거울 봐야 하는데.” “근데 영철이가 왜 말하는 거지?” “저 거울 비싼 걸 텐데.” “참, 교육감이 준거라는데.” “단체로 혼나는 거 아니야?” “주번이 책임져야 하는 거 아냐?” 거울이 박살 난 사건은 이제 반 전체로 확산됐다. 의심의 눈초리가 영철에게 쏠렸다. 영철은 앞에 나선 것을 후회했다. 의문이 커지는 사이 수업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 ‘즐거운 나의 집’이 학교를 울렸다. 아이들은 모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얌전하게 앉아 있는 척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회초리와 출석부를 든 담임이 왔다. “차렷, 경례!” “안녕하세요.”“응 좋은 아침이야. 추운데 감기 조심하고, 그렇다고 창문 닫고 있지는 말고. 쉬는 시간에 환기 좀 해 먼지가 난다, 먼지. 옆자리에 오지 않은 사람 있나?”뒤편에서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민호가 안 왔습니다.”“혹시 민호에게 연락 받은 사람?” 순간 교실에 침묵이 흘렀다. 영철은 순간 민호 자리와 깨진 거울 위치가 상당히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민호를 언제 봤지?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나?’ 영철은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머릿속이 더욱 하얘졌다.“주번! 주번!” 담임의 소리가 났지만 영철은 듣지 못했다. 옆에 짝이 손을 툭 쳤다. “예, 선생님.” “칠판이 엉망이다. 다시 한 번 닦아.”“예.”조회를 마치려는 순간 담임은 거울이 깨진 것을 알았다. 영철은 손을 들고 말했다. “선생님, 오늘 아침에 와보니 거울이 깨져 있었어요.” 담임은 아이들 모두에게 눈을 감으라고 했다.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거울을 깬 사람은 조용히 손을 들어.” 영철은 두둑한 바지 주머니 위로 손을 꼬옥 쥔 채 실눈 뜨고 주위를 살폈지만 앞과 옆에서는 움직임이 없었다. 하지만 뒤에 누군가 손을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자, 다시 한 번 말한다. 깬 사람 손들어.” 법정의 심판관 같은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교실의 공기는 한층 무거워졌고, 침묵의 시간이 더디게 지나갔다.“알았다. 이제 눈 뜨고. 주번 저쪽 뒤편 조각들 치우고. 이상 조회를 마친다. 다들 힘찬 하루를 보내자”과연 누가 거울을 깼을까. 담임만 알고 있을 것이다. 영철은 바지 주머니 속 전자시계를 만지작거렸다.

 

 

글|이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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