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의 경험과 깨달음, 그 조각들 모두가 나를 건드린다.

by 편집국 posted Apr 1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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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지인에게서 ‘나를 건드리는 것들’이란 주제로 글을 부탁받았다. 살짝 당황스러웠다. 어! 이게 뭐지? ‘건드린다’는 게 어떤 걸 말하는 걸까? 사실 분명히 와 닿지 않았다. 구정 연휴동안 고향과 처가를 오가는 차에서 곰곰이 생각에 빠졌지만 그리 시원하게 글감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결국 소소한 일상의 경험과 깨달음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그래서 내 마음을 오랜동안 건들이는 것들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 삶의 작은 조각들을 모아봤다.

 

내년이면 팔순이 되는 어머니가 대구 모 병원에서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으신게 재작년 11월. 마침 그곳이 고향과 가까운 대도시이고, 고종사촌 누나를 통해 허리 수술로는 꽤 알려진 곳이라는 말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그게 영 잘못되었다. 1차 시술이 실패, 그날 자정 바로 2차 수술까지 하셔야했던 어머니는 지금도 그때 기억을 떠올리시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정말 그때 딱 죽는 줄 알았다.”이후 어머니는 일상적인 거동도 거의 어려우실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셨다. 연세에 비해 활동적이던 당신은 꼼짝없이 뒷방 노인 신세가 되셨고, 아버지가 삼시 세 끼를 직접 해결해야하는 상황이 일 년 넘게 계속되었다. 그사이 서울과 진주에 있는 유명한 대학병원 여러 곳을 다니며 재수술 방법을 알아보았지만 시원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다행히 작년 가을,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시술을 받으신 후 그나마 조금 나아지셨다. 그동안 들어간 돈만 해도 천 만원이나 되었다. 지난 1월에야 최초 수술을 했던 병원과 의료사고 보험처리를 마무리했다. 앞으로 계속될 고생과 비용를 생각하면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머니의 병환을 겪으며 아들로서 정말 심한 자책과 자괴감에 시달렸다. 한평생 자식들 위해 살아온 부모님께 해드린게 너무 없구나 싶어 부끄러웠다. 당시 소설가 최인호 선생이 쓴 자전 소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읽으며 얼마나 울었던지.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의 삶 속에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이 있다. 왠지 뭔가 안 풀리고, 스스로 긴장이 풀어져 의미없는 시간을 보낸다 느낄 때면 어김없이 내 눈앞에 떠오르는 그 놈은 두 해전 추석 먼저 떠난 내 친구 김00이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편하게 살아온 나와 달리 중학생 시절 부친의 사업 부도와 부고 이후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온 그는 결혼생활도 순탄하지 못했다. 결국 이혼 후 홀로 외국으로 떠나 한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에게서 결국 베트남에 정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 어딘들 어떠니, 네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으면 되지.” 그렇게 또 두세 해가 지났을까. 재작년 초여름 귀국후 만난 녀석은 몸이 좀 안좋다고 했다. 전부터 허약 체질이라 또 심해졌나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미 암세포가 위에서 간까지 넓게 퍼져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말기암 상태였다. 그렇게 내 오랜 벗은 훌쩍 저세상으로 떠났다. 이후 한동안 나는 삶의 의욕을 잃고 방황해야 했다. 다시 정신을 수습하면서 이렇게 다짐했었다.

‘그래 살아있는 나라도 00이 몫까지 열심히 살자. 그래야 나중에 하늘에서 다시 만났을 때 내 친구한테 부끄럽지 않지.’

 

지난 해 11월초, 내 유일한 중고등학교 친구들 계모임에서 2박3일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서울에서 대전, 부산까지 다들 사는 곳도 하는 일도 제각각이다보니 모이기가 어려웠다. 두어 해 전부터 나온 계획을 마침내 실행에 옮긴 터, 그나마 여섯 명중 네 명만 함께 할 수 있었다. 나로선 1994년 여름, 직장 동료들과 함께한 첫 여행 이후 제주도를 찾은건 처음이었다. 성산 일출봉을 시작으로 이틀동안 섬 곳곳을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오랜만에 맛보는 이국적 풍경에 마냥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튼날 저녁 술자리에서 친구가 꺼낸 한 마디에 내 가슴은 한없이 무너져내렸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 나도 정말 이 말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어렵게 꺼낸다. 네가 내 진심을 이해하리라 믿고(후략).” 친구의 말을 다 듣고난 나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꼭꼭 숨고싶은 심정이었다. 무심코 잊고 지냈던 두해 전 나의 치명적인 잘못을 들으며 한없이 못난 나를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내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상처받은 또 다른 한 친구가 그로 인해 여행에 같이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큰 충격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참 부끄러운 일들이 많았다. 내가 가까운 사람에게서 상처받은 기억은 별로 없는데, 정작 나는 오랜 벗들에게 적잖은 마음의 상처를 주었던 거였다. 내가 스스로 깨닫지 못했을 뿐. 아직도 나는 그 친구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다 속좁은 내 탓이다. 이번 주말 그 친구에게 마음으로부터의 사과 편지를 쓰려고 한다. 그가 내 마음을 받아주기만을 빌 뿐이다.

작년 초 우연히 신문에서 고향(경남 거창)에서 특별한 강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알고보니 집안 아제 뻘되는 분이 진행하는 인문학 강좌였다. 요즘 유행처럼 회자되고 있지만, 정작 지방 작은 시골에서 정기적인 인문학 강좌를 연다는건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리고 5월 열린 강좌에 참석해 강사로 오신 원로 언론인을 만나 인사드리는 좋은 기회도 가졌다. 지난 해 연말 부모님을 만나러 내려가 마침 열린 그해 마지막 강좌에도 참석했다. 당시 주제는 구한말 문학자 매천 황현 선생과 그가 쓴 『매천야록』에 대한 것이었다. 망해가는 조선의 현실을 기록하며 지식인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결연히 목숨을 버린 매천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막중함을 절감하는 시간이었다.
당시 강좌를 다녀온 느낌을 짧은 글로 정리하며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우리는 지난 시대를, 의롭게살다간 수많은 애국지사를 너무 소홀히 하는 건 아닐까.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결국 시간은 뒤풀이되고, 지난 시절의 모습을 통해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올바른 인간의 삶이자 역사 아닐까 싶다. 이번 강좌는 흐트러진 나를 다시 바로 세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더욱 역사 공부에 매진하리라 생각해본다.” 그리고 펼친 책이 역사학자 이덕일 선생의 『근대를 말하다』와 범우사에 펴낸 『만해 한용운』.두 책에도 매천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민족과 역사 앞에 떳떳하게 살다간 위인들의 발자취를 통해 올바른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였다.


글을 쓰면서 부탁한 분의 의도에 맞나 하는 고민을 했다. 선뜻 글을 내놓기가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래도 결국 스치는 삶의 순간들에 대한 느낌은 저마다 다르고, 그 다름으로 인해 저마다 삶의 색깔도 다를거라는 나름의 생각으로 부족한 글을 띄워 보냈다.

 

글 │ 푸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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