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그리고 세월_이상선

by 편집국 posted Mar 0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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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은 연세대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생일이다. 5년 전 노동조합을 만들었을 때 설레고 벅찼던 기억들이 이제는 옛 추억으로 남아 있는데 그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기는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사회적 현실이다. 특히 고령의 청소, 경비 노동자들은 더욱 그렇다. 세상 풍파를 몸소 겪으면서 살아왔던지라 노동조합을 만들고 유지해가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이 만든 노동조합이 이제 만 5살이 되어 간다.

 

예전에 노동조합 조직담당 상근자로 일하면서 조직화를 위해 같이했던 처음의 학생들은 이제는 다 곁을 떠났고 나 또한 이제는 일상적인 직장인으로 살면서 그 분들과 가끔씩 만나고 있다. 요즘에는 그 중에서 유독 한분이 더욱 마음이 쓰인다.

 

2008년 노동조합 설립 초기. 학교가 워낙 넓어 각 건물로 흩어져 있던 노동자들은 300여명 이상으로만 추측되고 그 파악도 잘 안 되는 상황에 용역회사도 5개로 나뉘어 서로가 서로를 잘 몰랐다. 그 와중에 학교 측이 용역업체 변경으로 정년을 대폭 축소하는 것에 맞서 항의하고 있는 본관 농성장에 경비노동자 한 분이 노동조합 가입원서를 잔뜩 들고 찾아왔다.

 

하시는 말씀이 “내가 이만큼 가입 시켰으니 노동조합 대표를 추천하겠다” 였다. 다소 황당했다. 노동조합은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설명도 해야 하니 본인이 직접 가입원서를 들고 오시라고 하며 돌려보냈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된 분이 이후에 노동조합의 부분회장이 되시고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하셨다. 경비직으로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시면서 비번날이면 조합에 출근 하셔서 이런저런 관여도 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을 하셨던 분이 지금은 학교를 떠나셨다.

 

2012년 여름 근무지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오른쪽 반신을 못 쓰시고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경비직으로 일하시는 동안 남성들이 흔히 하는 가부장적이고 다소 폼을 잡는 성격이셨지만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겐 무조건 다 퍼주시는 따듯한 분이셨다.

 

젊은 시절 말씀을 들어보니 경찰 고위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후광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면서 대학교를 다녔고 군 시절엔 태권도 교관을 하셨던 강건한 분이셨다. 이후 사업을 하시다가 가세가 기울기는 했지만 부족하지는 않게 사시는 분이시다. 그저 노동조합이 좋아서 은퇴 후 학교에서 경비직으로 받은 월급은 한 달 용돈으로 활동하는데 쓰시면서 늘 당당하셨던 분이다.

 

때로는 자기를 못 알아준다고 삐지기도 하시고 노동조합 대표가 여자라 힘이 없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해야 될 일이 있으면 두말없이 하셨던 분이 연세대 노동조합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더욱 생각난다.

 

아프시다는 얘기를 듣고 몇 번 병문안을 갔었는데 갈 때 마다 병세가 나빠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뇌출혈로 20여년 병 치료를 하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돌아가시기 전 무척 말라가셨는데 마치 그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바로 1년 전만 해도 혈색 좋고 풍채 좋으셨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어 더욱 마음이 아팠다.

 

마 전 연말이 가기 전에 얼굴이나 한 번 더 뵈려고 노동조합 집행부 두 분과 학생, 조합 후배와 함께 병문안을 갔다. 부천 시내 끝에 있는 요양원을 찾아가면서 평소 좋아하시는 제과점 빵을 적당히 드실 만큼 사가지고 갔다. 같이 간 분들과 두어 시간 얘기를 나누는 동안 몸이 불편하여 말씀을 잘 못하면서도 연신 빵을 찾으신다.

 

병문안을 마치고 서울로 오는 버스 안에서 저분이 살아왔던 세월 중에 노동조합을 처음 했던 이전의 세월과 이후의 세월은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저분과 5년이라는 결코 짧지만은 않은 세월을 함께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세월을 살아야 할 것 인가를 고민을 했다. 이런 저런 고민 속에 가끔이나마 좋아하시는 제과점 빵 사들고 뵈러 갈까 한다.

 

글 │ 이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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